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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bu Mar 01. 2024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명화를

초딩을 위한 비상식량, 컵라면

셋째 날

내셔널 갤러리 - 시내 워킹 투어


체크포인트

내셔널 갤러리도 가이드 투어, 런던 패스 포함 시내 워킹 투어는 신중히 고려해 주세요.




 셋은 일찍 숙소를 나섰다. 오늘 오전 투어는 내셔널 갤러리다. 이제는 제법 런던 지하철도 익숙해졌다. 첫 날은 아이들과 셋이서 우왕좌왕 하고 있으면 런던 청년들이 다가와서 도와주었다. 그들은 지하철에서도 아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기도 했다. 친절하고 잘생긴 런더너들 같으니라고. 내셔널 갤러리 근처 지하철역에서 내려 아침 먹을 장소를 찾아본다. 흠, 조금 걸어가면 서브웨이가 있네. 오늘 아침은 서브웨이 샌드위치다. 누구 하나 배가 고프면 안 된다. 우린 움직여야 하니까.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가이드 선생님을 만나러 내셔널 갤러리로 갔다.

 

 아이들은 어제 한번 해봤다고 가이드 투어도 익숙한가 보다. 오늘 가이드 선생님은 몇 시에 어디서 만나는지 물어본다. 팁도 얻었다. 오늘은 미술관에 들어가서 간이의자가 보이면 들고 다니겠다고 한다. 혹시 몰라 스스로 들고 다녀야지 중간에 엄마한테 들어달라고 하기 없기다라고 미리 이야기해 두었다. 말을 하면서도 둘째의 의자는 결국엔 내가 들게 되리란걸 알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들어줄 수는 없다. 아이들도 다 아는 반고흐의 해바라기를 입장하자마자 가장 먼저 보러 갔다. 동선을 짜는 가이드님의 센스에 칭찬을, 토마토 수프를 뿌린 사건을 가이드가 설명해 주자 아이 둘이 어쩜 그럴 수 있냐며 소곤거린다.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 그림은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램브란트의 자화상, 쇠라의 아니에르의 수욕,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 존 컨스터블의 풍경화를 관람했다. 그리고 종교, 신화와 관련된 그림들도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들으니 훨씬 그림에 잘 볼 수 있었다. 아이둘은 의자까지 들고 다니며 여유롭게 미술관 관람을 하고 나왔다.


 뜨거운 햇볕에 무척 더운 날씨. 걸으면 땀이 줄줄 흐른다. 흠,, 오후에 런던패스에 포함된 무료 시내 워킹 투어를 예약해 두었는데,, 아이들이 걸으면 금세 지칠 거 같은데,, 걸어 다니며 명소들을 찍고 가던데 걷는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는 나와있지 않고 신청할 때는 스웨덴 날씨만 생각했다. 런던이 이렇게 덥다면 그리고 오늘은 어제보다 더 더운데 이일을 어쩌지 했지만 엎질러진 물이다. 점심이나 든든하게 먹여야지하고 미리 예약해 둔 팬케이크 집으로 갔다. 고칼로리 음식은 죄다 시켰다. 아이들은 소시지 해쉬브라운 팬케이크 등을 싹싹 비웠다. 물도 다시 한 병씩 샀다. 그리곤 투어 약속 장소로 갔다.


 나이 지긋하신 영국 할아버지가 투어가이드로 나와 계셨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대략 16명 정도 모였다. 영어 가이드지만 런던 패스에 포함되어 있기도 했도 건물 보면서 설명 들으면 그래도 대에충 알아들을 수는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뿔싸, 영국의 역사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배경지식이 있지 않으면 하나도 들리지 않는 이야기였다. 걸으면서 지나가는 명소들은 모두 왕실과 연관된 장소들이었고, 어느 왕이 어떤 용도로 지은 건물들은 누가 누군지 모르는 우리에겐 알아듣기 매우 어려운 내용이었다. 둘째는 듣기를 포기했고, 첫째와 내가 대충 알아들은 이야기를 둘째에게 해 줬다. 하지만 더운 날씨에 걸어가며 설명을 들으니 셋은 무리에서 점점 뒤처졌다. 의욕적으로 제일 앞에서 시작했는데 어느새 뒷무리와 합류했다.


 첫째와 나도 집중력을 잃기 시작했다. 어느 왕이 어쩌고 저쩌고,,, 가이드와 조금 떨어지니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그나마 위안인건 미국에서 온 가족의 아이들도 집중력을 완전히 잃고 우리 옆에서 한껏 부루퉁한 얼굴로 걷고 있었다. 엄마 아빠의 잔소리를 들어가며.


 한국 가이드분들은 만나면 일단 이어폰부터 나눠 주시는데, 런던패스에 포함된 무료 가이드라 그런가 보다. 뿐만 아니라 워킹 투어답게 걷는 거리가 엄청났다. 런던 시내를 다 둘러볼 모양이다. 큰애가 나중에 이야기하기를 자 여기 보셨죠? 또 걸어갑시다. 자 여기도 보셨죠? 이제 또 앞으로 걸읍시다의 연속이었다고...


 아이들 얼굴이 찌그러졌다. 셋은 연신 물병에 물을 마시며 결국엔 투어팀에서 낙오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는데 의미를 두었다. 하지만 그것도 다시 생각해 보면 나 혼자만의 의미부여였다. 마지막 도착지인 빅벤 건너편 잔디밭에 다다랐을 때 우리 애들은 마무리 인사고 뭐고 잔디 위에 털썩 주저 않아 고개도 들지 않았다. 영어 워킹 투어는 실패다. 너무 힘들다. 내 다리도 감각이 없긴 마찬가지다. 


 둘이서 항의하는데 딱히 할 말이 없다. 

"너무 다리가 아파서 더 이상 걸을 수 없어. 숙소로 못 돌아가."

"일단 가자. 여기 봐봐. 바로 앞에 지하철 역 보이지?"

"몰라. 저기까지도 못가."

 안되겠다. 비장의 카드를 꺼내야겠다.


 "그럼 숙소가서 저녁으로 컵라면 먹자. 왜 너네 알지? 혹시 몰라서 컵라면 싸온거 있잖아? 그거 먹자. 컵라면 먹잖아? 그럼 집까지만 가면 다시 나오지 않아도 된다~"

 컵라면이란 말에 둘 다 기분이 조금 풀리는 거 같다. 이때다. 

 "그래. 그럼 너네 힘날때까지 여기 잔디밭에 계속 앉아서 쉬다가 가자. 어짜피 저녁은 숙소에서 먹으면 되니까~" 


 천만 다행이다. 혹시 몰라 챙겨 온 컵라면이 오늘 나를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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