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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bu Apr 06. 2023

느긋한, 매우 느긋한 오후


와이프분 심심하지 않으시데요? 뭐 하고 지내신데요?

라는 질문을 남편 동료가 했단다.

뭐?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 남편은 말한다.

응? 매일 청소하던데요.라고 했는데?


그래 이삿짐이 왔으니까. 한국에서 보낸 이삿짐이 왔다.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매우 반갑지 않은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이삿짐을 정리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타령이 시작되었다. 아! 한국이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가. 포장이사는 물건을 다 넣어주는데 착! 착! 착!

물건 정리를 스스로 해야 한다는 건 이미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정리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남편은 주말에나 도와줄 수 있고 애들은 정리 중인 자기 물건을 발견하면 더 어지르기 바쁠 뿐,

이삿짐 정리는 나의 몫이었다.


맞아~ 그래~ 내가 요즘 매일 이삿짐 정리를 했지. 남편이 한 대답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 배알이 꼬이는 느낌은 뭐지. 난 청소하는 사람이야?

직장동료의 와이프분 심심하지 않으시데요? 는 내가 정말 심심한지 묻는 것이 아니지 않겠는가.

11월까지 회사 다니다 갑자기 12월 중순부터 완전히 다른 하루를 보내고 있는 와이프분이 괜찮으신가요?

적응은 잘 되신데요?라는 의미일 텐데. 청소하던데요라니.


난 조금 소심해졌나 보다. 남편과 내가 더 이상 동등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그전엔 나도 돈을 벌었다. 아니 심지어 회사를 간 남편은 애들일은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난 회사에서도 신경 써야 했다. 애들이 배가 아파 학원을 못 가겠다. 친구랑 놀다 싸웠다. 이런 사소하지만 그들에겐 매우 중요한 시시콜콜한 사건들은 사흘 건너 있었다. 회사에 있는 동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일들을 나는 듣고 판단해야 했다.

내가 얼마나 바빴는데. 아슬아슬하게 하루하루 일과 육아의 사이에서 마치 꽈악 눌린 쥐포처럼 난 메마르고 지쳐있었다. 음 아니 아귀포, 좀 더 고급스럽게, 아귀포는 그리고 쥐포보단 더 촉촉해. 이렇게, 애들이 투정 부리면 예의 엄마의 헛소리로 응대하던 힘들지만 힘든 줄 모르고 지나간 나날들. 다독이다 다독이다 나도 짜증이 나서 화도 내던 순간들.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힘들지라고 누가 이야기하면 아뇨~! 괜찮은데요 씩씩하게 응수했던 날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난 매우 힘들었다. 잘 모르고 있었을 뿐.


그러던 내가 매우 힘들어서 일과 육아 두 가지를 함께 하는 게 괜찮은 걸까라고 생각하는 계기가 있었다. 그때는 둘째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처음 맞은 겨울방학이었다. 그 겨울을 지내고 나선 난 다음 겨울 방학이 돌아오는 게 두려웠다. 아이 한 명이라도 유치원을 다닌다는 건 그 아이가 집에 늦게 온다는 뜻이다. 방과 후까지 한 유치원생의 하원은 4시 이후다. 그리고 유치원 방학은 2 주남짓이다. 그런데 둘 다 초등학생이 되니 이 긴 겨울을 두 아이가 봄방학 때 열흘 학교 가는 거 말고는 12월 말부터 3월 개학이 올 때까지 집에 있는다. 얼마나 길고 긴 겨울인지. 이 긴 시간을 할머니와 외할머니 그리고 시터님의 스케줄을 짜가며 겨울방학을 버텼다. 한 사람이 모두 봐줄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세 분의 스케줄을 조정해야 했다. 시어머님께 온전히 맡길 수도 없어 친정엄마에게도 부탁했고 파트타임 시터님과도 이야기해서 아이들을 종일 봐주시길 부탁했다. 내가 집에 없다는 이유로 세명의 여인들이 아이 둘을 케어해 주셨다. 방학 스케줄은 그렇게 프린트되어 언제나 냉장고 옆에 붙어있었다. 언제 누가 와서 봐도 잘 알 수 있게. 얼마나 고되던지, 내 성격이 얼마나 느긋했는데. 지난겨울 방학에 난 질려버렸다. 달달달 안달복달 종종종 좌충우돌. 큰 아이가 12살이니 첫째 둘째 다 해서 고작 15개월의 육아휴직을 쓴 나는 알고 보면 10년을 그렇게 살아왔던 거다. 아이들은 크기 전엔 어른의 손이 더 필요했고 더 자주 아팠고 그때마다 난 느긋하게 애들 옆에서 나을 때까지 돌봐줄 수 있는 엄마가 아니었다.


난 청소하는 여자가 아니다. 이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이었던가. 비록 지지고 볶더라도 그저 내 손이 필요한 아이들 옆에 있을 수 있는 것. 이번 겨울이 가장 좋았던 건 그저 아이들이랑 밥 해 먹고 뒹굴거리고 누가 하나 헛소리를 시작하면 그 흥에 서로 더 크게 웃기 대결이라도 하듯 웃을 수 있었던 것. 학원도 없는 이곳에서 만화책이던 동화책이던 실컷 보고 싶은 만큼 책을 읽고 지겨워지면 마당에서 이제껏 만들었던 눈 사람 중 제일 큰 눈사람을 만들고 나지막한 경사에선 눈썰매를 탔던 것,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내 초등학교 시절, 하교 후 내 방에 할 일 없이 누워 창밖에 지나가던 구름을 보던 그 순간이 느껴지던 그날, 12살의 내가 느끼던 무료하지만 따뜻하고 나른했던 그 순간이 42살의 내 안에서 잠깐 스쳐 지나갔던 그 순간. 찰나지만 다시 맛본 그 순간은 세상 근심 하나 없이 순수하고 평온했다. 그래. 우리 아이들도 그런 순간을 누리길. 안정감 있는 평온한 순간, 이건 분명 나중을 살아가는 힘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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