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톡 까톡
경쾌하고 경박스럽기도 한 카톡 울림에 들어가 보면 한국친구들이 올린 벚꽃 사진들,
아아아!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해도. 한국의 3월 말에서 4월은 그야말로 꽃으로 만개하는 시기인데,,,
부럽다 부럽다 해봐도 난 거기 없다. 부럽다고 아무리 말해봐도 내 눈앞에 보이는 마당엔 아직도 덜 녹은 눈이 쌓여있다. 눈이 계속 오는 날이면 그래 여긴 강원도야. 라며 날 위로했는데. 뭐야. 지금은 강원도도 꽃으로 만개했을 거야. 아... 꽃놀이...
언젠가부터 한국의 봄은 갑자기 왔다. 온난화 때문인지 목련이 피고, 개나리가 피고 그리고 벚꽃이 피던 순서 따윈 모두 잊고 봄이다 싶으면 모두 함께 얼굴을 들이미는 꽃들 덕분에 얼마나 즐거웠나.
게다가 예전 같으면 노란색과 분홍색이 함께 하는 건 너무 촌스럽지 않니?라고 했지만, 지금은 그저 모두 이쁘다. 모두 새로 태어난 아가 같아. 그러다 꽃이 지고 작은 새싹들이 나뭇가지에서 모두 한꺼번에 나오기 시작하면 그건 또 얼마나 이뻤나. 새싹색이 하루하루 짙어져 가는 걸 보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둘째에게 항상 엄마는 니 생일쯤인 이때가 일 년 중에 가장 좋아. 모든 나무에서 아주 연한 수채화 물감색의 작은 잎들이 나오면 너무 이쁘다. 그 새로 나온 반짝반짝한 잎들은 또 얼마나 빨리 자라는데 매일매일 쑥쑥 자라나. 이런 진부하지만 진지한 말들을 하면 둘째는 사실 듣지도 않는다. 그저 4월이 되면 아침에 일어나 매일 자기 생일이 며칠 남았나 계산이나 할 뿐.
단톡방에 너도 나도 올리는 벚꽃 사진이 이렇게 부러운 일이 되다니. 서로 경쟁이나 하듯 나도 꽃 놀이 했어 혹은 여기 진짜 이쁘다 다녀온 꽃놀이의 감상을 말한다. 인스타를 열어도 온통 벚꽃 사진들. 그래 부럽다 부러워! 나도 서울에 있었으면 석촌호수든 과천서울랜드든 아니 하물며 우리 아파트 단지에 벚꽃이라도 구경했을 거야. 카톡이고 인스타고 단체로 날 약 올리기로 결심한 거지? 이렇게 생각해 봐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친구들 벚꽃놀이에 라이크를 누르거나 와 너무 좋겠다 부럽다고 말하는 일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누가 남편 보고 그랬다지, 와이프분 3월 되면 우울증 올걸요? 겨울은 그래도 한국도 겨울이니 견딜 수 있어요. 그런데 3월에 한국은 꽃피고 봄이라고 다들 난리인데 그때 괴리감이 더 커져서 우울해요. 그 말을 들으면서 난 정말 호기롭게 생각했다. 무례한 여자구만. 날 알지도 못하면서 저런 충고를 하고 가네. 난 괜찮을 거야. 남걱정은. 하지만 지금 그 이야기를 해주신 분에게 지금 감사하다. 그래 그런 말을 들었으니 내 지금 심정이 여기서 봄을 기다리고 있는 다른 한국인들도 다 느끼는 그런 거구나 위안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 부러운 마음을 어찌했으리오.
스웨덴의 봄은 언제 오는가. 들은 바로는 땅속에 있던 구근식물들이 꽃을 피운다던데. 그래서 길가에서 피어난 튤립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언제. 대체 언제. 애타게 꽃을 기다리는 날 위해 언제나 너네 이쁜 얼굴을 보여줄 거니. 애타는 내 마음을 알았을까. 스톡홀름 관광청에 뭐 최신 이벤트라도 있나 싶어서 들어가 봤더니 오! 스톡홀름도 벚꽃을 볼 수 있단다. 4월 중순이면 시내 공원에 벚꽃이 핀다는 사진이 올라와있다. 벚꽃색이 한국은 아주아주 연한 미색의 분홍이라면 그것보다 분홍색을 한 5방울 정도 더 넣은 색깔이지만 벚꽃이 있단다. 나 저기 가서 인증숏 찍을 거야! 그래서 단톡방에 올릴 거야! 갑자기 당당해진 난 카톡방에 이렇게 쓰기까지 했다. 여기도 벚꽃이 있데. 꼭 찍어서 스웨덴 벚꽃 공유해 줄게. 친구들이 말한다. 오? 스웨덴도 벚꽃이 있어? 그래, 그래 보여줘~
하지만 난 안다. 이미 꽃놀이를 실컷 즐긴 그들에게 내 벚꽃 사진은 그저 한발 늦은 뒤늦은 꽃놀이 사진이란 걸. 스웨덴에도 벚꽃이 있나 확인을 위한 그런 사진이겠지. 타이밍이란 게 이런 거구나. 꽃을 못 봐 안타까운 나, 그리고 이미 다 한물간 꽃놀이를 하고 있는 외국에 있는 친구를 둔 내 친구들, 맞지 않는 타이밍에 김이 새 버리는 흥이 돋궈지지 않는 지나간 타이밍.
난 내가 어디든 가면 내 생체리듬을 바로 적응시키고 완벽 적응한 현지인처럼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사실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생각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 그동안 한국에선 어디든 가서 적응하고 지냈는데 세 도시에서나 살아봤단 말이다. 하지만 그건 한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적응할 수 있었나 보다. 내 생체리듬을 새로운 곳에 적응시킨다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한없이 짧은 해가 당혹스러웠던 12월도, 해가 조금 길어지나 했더니 내리 내리던 눈도, 그리고 서머타임이 시작된 후 한 시간이나 시간을 앞으로 당겼음에도 8시가 넘었는데도 어스름한 길어지고 있는 스웨덴의 해도, 40년을 한국에서만 살던 나에겐 낯선 모습이다. 일 년이 지나고 또 일 년이 지나면, 스웨덴의 날씨와 기후와 절기에 익숙해지겠지. 그때가 되면 한국에 돌아가서 스웨덴을 그리워하게 될까. 과연, 어떤 마음일까. 알 수 없는 나중의 마음은 그때 알기로 하고, 지금은 4월 중순에 스톡홀름에 벚꽃이 피면 인증샷을 남기는 게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