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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bu Apr 27. 2023

로드 트립, 덴마크.


여기 온 이후 첫 여행이다.


아이들은 출발하기 일주일 전부터 들떠있다. 특히 둘째가 들떴다. "우리 여기 와서 첫 번째 여행이야~ 엄마, 게다가 자동차 타고 갈 거잖아~ 신난다 신나!"


듣고 보니 그랬다. 스웨덴 온 이후 첫 번째 여행이구나. 그리고 차를 타고 다른 나라로 간다니 신기하네. 내 마음도 살짝 몰랑해졌다. 여행이라.. 설레겠군..


하지만 어른의 입장에선 신나지만은 않았다. 차를 몰고 6시간 30분은 가야 덴마크 코펜하겐에 다다른다. 시내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고 다음날은 다시 차를 몰고 2시간 30분 거리에 빌룬드에 위치한 레고랜드를 갈 예정이었다. 저녁까지 레고랜드에서 놀고 다시 2시간 30을 운전하고 코펜하겐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음날 코펜하겐 근교의 미술관과 티볼리 놀이공원을 갔다가 다시 차를 타고 돌아올 예정이다. 내가 짠 계획은 그렇게 북유럽 여행책자에 들어있는 관광지 몇 곳, 아이들을 위한 레고랜드, 미술관, 또 티볼리 놀이공원 간단하고 건조했다. 입장시간을 체크하고 부활절 연휴에 휴관이 아닌지 확인, 이동 수단은 자동차, 숙소는 남편이 이미 예약 완료. 설렘 없이 바쁜 남편을 모시고, 게다가 애들은 부활절이라 열흘이나 방학이다. 다시 한국에 돌아갈 그때를 생각하면 다닐 수 있는 여행은 8번에서 10번 지나치면 후회할 거 같아서 짠 계획이라 설렘이 빠져있었다.


드디어 출발하는 날,

아침 새벽 6시에 출발해서 덴마크에서 점심을 먹고 싶었지만 아침을 샌드위치로 싸서 차에서 먹기로 하고도 출발은 8시가 다 되어서 가능했다. 일단 요이땅 차를 몰고 길을 나섰다. 차가 밀리는 일은 없었다. 연휴 시작에 서울은 서울 빠져나가는 데만 해도 한참 걸리는데, 차들은 질서 정연하게 속도를 내며 쭉쭉 나아가고 있었다. 스톡홀름에서 말뫼까지 스웨덴 아래로 쭈욱 내려가는 길은 차선이 넓진 않지만 경사라고 하기엔 평지가 아닌 정도의 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쭈욱 내려갔다. 북유럽의 키 큰 나무숲과 초원 그리고 붉은색의 작은 집들을 지나치며 그렇게 두 시간쯤 가니 옆에 바다가 펼쳐졌다.

'수평선이어야 하는데,, 건너에 땅이 있는 거 같아. 하지만 이건 강은 아닌 거 같아... 바다야.. 우리가 해안선을 따라 내려가고 있는 건가?'


아이들은 바다다! 바다! 하면서 처음으로 각자의 핸드폰을 들고 온 여행이라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물을 보니 좋았다. 날은 흐렸지만 슬슬 배가 고프기도 하고 화장실도 갈 겸 해서 휴게소와 식당, 주유소 간판이 보이는 곳으로 빠졌다. 우린 고속도로 바로 옆에 붙어있는 휴게소를 기대했지만 그런 건 없었다. 길을 빠져서 조금 들어가면 조성된 단지에 휴게소도 주유소도 식당도 있었다.


한국이랑 다르네, 우린 빠지면 바로 고속도로인데, 저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좀 더 들어가 보자. 살짝 길을 따라가니 중세 시대 여관 같은 호텔이 나왔다. 뒤에 몇 층짜리 고풍스러운 숙소 건물을 뒤로하고 있는 본관은 나무로 지어진 단층에 지붕에는 이끼인지 덩굴인지 모를 푸른색 잎이 군데군데 덮여있는 호텔이었다. 그 호텔 본관을 뒤로 돌아가니 저 바다를 보는 뷰 포인트가 있었다. 바다다! 바다! 애들은 신이 나서 또 한 번 사진을 찍었다.

저 너머 수평선이 아닌 게 이상했지만 설마 덴마크가 보이는 건가 싶었다. 아직 4시간은 더 가야 하는 데라고 생각하며 차로 돌아와서 구글 맵을 켰다. 어디로 얼마나 더 내려가 스웨덴 국경을 지나는 걸까 싶어서 본 구글맵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저건 바다가 아니야. 호수야........ 베테른이란 호수래!! 우린 다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이렇게 큰 호수는 생전 본 적이 없으니. 기다랗게 생긴 호수는 그 이후에도 한참을 운전해서 내려가야 했다. 이렇게 큰 호수라니. 이런 큰 호수는 빙하로 인해 생긴 스칸디나비아의 전형적인 호수란다. 긴 호수의 끝에 아주 작은 도시를 빙 둘러서 우린 다시 길을 따라 내려갔다. 와 태어나서 본 중에 제일 큰 호수였어. 호수 안에 섬도 있다니 얼마나 큰 호수인가. 바다 건너 땅이 보인 건 그래서였다. 호수라서 건너에 보인 땅도 여전히 스웨덴이었네. 베테른보다 더 큰 스웨덴 제일의 호수 베네른 호수도 있단다. 인터넷에서 본 베네른은 우리가 본 호수보다 훨씬 더 큰 호수였다. 거기도 바다 같겠구나. 베네는 호수는 유럽에서도 세 번째로 큰 호수란다. 얼마나 크길래ㅎㅎ


그리고 다시 이어진 긴 운전.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고 아이들은 생각보다 자동차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너네 많이 컸구나. 이제 함께 여행 다닐만하네. 음악 듣는 게 지겨워지면 오디오북을 들었다. 셜록 홈스 단편 하나면 30분이 후딱 지나갔다. 그렇게 또 한참을 가 다들 앉아 있는 게 지겹기도 하고 배도 고파 다시 주유소 간판을 보고 빠져 주유소에 딸린 편의점 같은 곳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했다. 그리고 또 두 시간, 그렇게 한참을 달려 말뫼 표지판이 보였다. 말뫼는 스웨덴 남부에 있는 제법 큰 도시로 말뫼를 지나면 이제 코펜하겐에 닿을 수 있다. 우리는 출발부터 스웨덴에서 다리를 건너면 덴마크가 된다는 사실에 기대를 하고 있었다. 얼마나 긴 다리일까 그래서 다리가 나오기만 기다렸다. 드디어 바다가 보이고 다리에 진입했다. 다리는 너무나 길었다.


2000년에 개통된 외레순 다리는 말뫼와 코펜하겐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어주고 유럽 본토와 스칸디나비아반도를 연결해 무역 역시 활기를 띠게 해 준 다리라고 한다. 다리를 건너는데 15분도 넘게 걸리는 느낌이었다. 직선이 아닌 살짝 구부러진 모양의 다리라 이쪽에서 바라본 다리 저쪽에 큰 주탑이 여기서도 보였다. 영종도나 건너본 우리는 이 긴 다리가 신기했다. 다리가 끝날 즈음 덴마크 쪽으로 들어갈 땐 해저터널로 이어져 있었다. 다리를 건너면 국경을 지난다는 것에 살짝 긴장했다. 국경을 지나면 검문이 있나 싶었지만 아무것도 검사하지 않았다. 톨게이트 창구마다 군인들이 서 있는 게 다였다. 하지만 아무도 나의 위치를 파악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국경을 통과하자마자 핸드폰 통신사에서 웰컴 덴마크 어쩌구 문자와 영사관에서 지잉 지잉 영사 콜센터 문자가 왔다. 아무도 날 보고 있지 않은 건 아니구나 그렇게 덴마크로 들어왔다.


덴마크는 너무 이뻤다. 역시 디자인의 나라구나 싶었다. 제일 먼저 방문한 디자인 박물관에서 아니 대체 얼마나 예전부터 이 나라 사람들은 이쁜 그릇들을 만든 건가 싶었다. 아니다. 여긴 그냥 처음부터 이쁜 그릇을 만들었구나 싶었다. 예전의 화려한 그릇들에서 점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모던한 덴마크 디자인의 그릇으로 바뀌는 걸 볼 수 있었다. 디자인 박물관이라 텍스타일도 전시되어 있었다. 역시나 화려하고 컬러풀한 무늬에서 여전히 알록달록한 색감이지만 모던한 문양으로 바뀌는 천을 구경했다. 그리고 의자들. 나무를 깎아 톡톡 조립한 덴마크의 의자들의 디자인은 하나같이 모던하고 자연친화적인 의자들이었다. 여기가 정말 유럽이네,,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덴마크는 디자인 전공에 화통을 매고 다니는 키덜트 감성 가득한 오빠라면 스웨덴은 자동차에 관심 많은 나사 가득한 공구박스를 가지고 다니는 우직한 오빠 같단 생각을 했다. 혼자 열심히 덴마크 남자랑 스웨덴 남자 상상에 실실 웃고 있는데 남편이 다가왔다. 앗 여기 전형적인 한국 남자.ㅎㅎ


다음날 방문한 레고랜드는 이 사람들은 레고로 못 만드는 게 없겠구나 싶었다. 레고로 만든 공항, 부르즈 칼리파, 스웨덴 마을, 독일 마을, 뉘하운 운하 그중에 가장 많고 공들인 건 덴마크의 마을과 성들. 미니어처 광장은 보고 또 봐도 못 본 게 있었다. 오전에 들어가면서 구경하고 오후에 나오면서 구경해도 또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놀이 기구도 어린이 놀이 기구부터 어른들이 즐길 놀이 기구까지 다양했다. 당연히 아이들은 개장시간에 들어갔다가 폐장시간에 레고 기념품을 손에 쥐고 기쁘게 나왔다.


다음날은 아침에 전날보다 늦게 일어나 준비하고 근교로 나갔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이라는 책에 나온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미술관과 자연과 하나 되어 멋진 풍경을 이루는 바다 앞에 지은 미술관이었다. 코펜하겐에서 40분 정도 운전해서 가야 했지만 도착해서 힘듦이 다 잊힐 정도로 바다로 향한 큰 조형물 앞에 앉아 햇빛을 즐기는 사람들 속에 함께 있으니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미술관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다시 코펜하겐 시내로 돌아왔다. 그리고 방문한 티볼리 놀이공원, 시내 중앙역 바로 옆에 위치한 티볼리는 원조 놀이공원이란 이름에 걸맞게 한눈에 보기에도 역사를 자랑할 것처럼 고풍스러운 느낌이었다. 여기서 있은지 100년은 족히 넘을 거 같은 2층 회전목마를 탔다. 분명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로운 부품 새로운 기구로 교체하고 수리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냥 보기엔 백 년은 되어 보일 거 같단 느낌이 들었다. 아마 처음 만들었을 때 그 고유함을 잊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것만 고치고 또 고쳤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나이 든 노인들은 아기자기한 정원에 분수 쪽으로 의자를 둔 카페에 앉아서 햇볕을 쬐고 있고 아이들은 놀이 기구를 타고 꺄악꺄악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저녁이 되자 놀이동산 안에 곳곳의 레스토랑에서 조명을 밝히고 저녁식사를 하는 연인이나 가족단위가 보였다. 그렇게 코펜하겐에 사람들 생활 속에 티볼리가 함께하고 있었다. 회전목마와 범퍼카만 타겠다던 약속은 금세 잊고 15개는 족히 되는 놀이 기구를 탄 아이들은 또한 번 덴마크 최고를 외치며 8시쯤이 되어서야 티볼리를 나설 수 있었다.


일정이 다 끝났다. 이제 스웨덴으로 출발하자. 밤새 운전해서 새벽에 집에 도착할 예정인 우리는 숙소에 들어가 씻고 아이들은 잠옷을 입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남편에겐 줄 커피는 사약같이 진하게 타서 보온병에 담았다. 그리고 11시 반쯤 모든 짐을 싸서 다시 차에 탔다.

다시 돌아오는 외레순 다리는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수평선과 하늘이 맞닿아 있는 부분이 어슴푸레하게 무지갯빛을 내고 있었다. 대학생 때 호주 여행을 떠올리게 했다. 9시간 걸리는 호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자다 일어나 내다본 밖은 하늘이 무지갯빛이었다. 빨주노초파남보를 수평으로 그어놓은 하늘을 다시 덴마크 외레순 다리에서 만났다. 비록 땅과 맞닿아 있어 어둠 속에서 무지갯빛을 찾아야 했지만 수평선과 맞닿은 깜깜한 하늘에서 빛이 부린 마법같이 어둠 속에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갯빛을 찾아낼 수 있다. 갑자기 내 존재가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바다에 떠있는 작은 나는 하늘과 바다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 기나긴 다리로 연결된 국경과 국경을 넘나드는 와중에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다니. 삼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에서 살던 나는 갑작스러운 이 풍경에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도주하듯 갑자기 한밤중에 출발해서일까. 집 떠나 여행 온 날 밤에 다시 집에 돌아가고 싶은 낯설고 외롭고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눈가가 살짝 촉촉해졌다. 국경에서 느끼는 기분이란 이런 것일까. 박완서 작가의 읽어버린 여행 가방에 나왔던 국경을 마주한 이야기 혹은 박연수 작가의 연변에서 국경을 넘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런 느낌이 이런 것일까.


전혀 다른 세계에서의 나는 한없이 작았고 세상은 한없이 컸다. 덴마크가 즐거웠지만 외레순 다리를 건너 스웨덴으로 들어왔을 때 나도 모르게 아 이제 스웨덴이다. 괜스레 안심이 되었다. 비록 몇 개월이지만 이제 내가 돌아갈 나의 집은 스웨덴이었다. 그렇게 밤새 운전해서 아침 7시에 도착한 스웨덴 우리 집에선 현관 옆 잔디에 며칠 사이 핀 보라색 꽃들이 우리 넷을 환영해 주고 있었다. 드디어 집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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