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1일에 여기 온 이후에 눈이 생각보다 많이 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2월, 3월에 계속 눈이 오고 있다. 오기 시작하면 눈은 금방 쌓인다. 눈발은 아주 작아서 눈보라 같은 느낌이다. 한국에선 보통 눈이 오면 눈송이가 보이는데, 여긴 눈발이다. 눈보라 느낌이다. 이 작은 눈은 어찌나 또 빨리 쌓이는지 두세 시간만 와도 금세 하얗게 쌓인다. 내가 사는 곳이 시내가 아니어서 그런진 몰라도 세 시간이면 3센티는 쌓이는 느낌이다. 그러니 밤새도록 눈이 온다 치면 아침엔 10센티 이상의 눈이 쌓여있다. 집으로 들어오는 입구가 경사진 우리 집은 눈 온 날 아침에 차를 빼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제 아침에 결국 내 차를 빼지 못하고 아이들은 아빠 차를 타고 등교를 했다. 3월 초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그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3월 초에 눈이 많이 오고, 그 눈이 다 녹기도 전에 날이 따뜻해져서인지 비가 온 날 난 생각했다. 아, 날이 따뜻해서 비가 오니 비가 눈을 녹여주겠구나. 하지만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다음날 아침 차를 타고 경사면을 올라가는데, 아뿔싸! 완전히 얼어있었다. 스케이트장이 따로 없다. 비와 눈이 만나 물이 되고 밤사이 기온이 내려가서 완전히 매끈하게 얼어버린 것이다. 전진으로 경사를 올라가던 내 차는 힘을 쓰지 못하고 하염없이 미끄러졌다. 그것도 그냥 뒤로 가는 것도 아니고 점점 옆으로 밀리는 것이다. 결국 길 옆에 있던 나무들 사이에 끼었다. 옆집과의 경계에 있는 둥치가 그렇게 굵지 않은 나무들 사이에 차 뒷면이 끼고 말았다.
울고 싶었다.. 전진을 해도 후진을 해도 내 차는 점점 더 나무 사이에 낄 뿐이었다. 아이들이 내리면 무게가 줄어드니 차가 힘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아이들에게 내리라고 했다. 저런, 내린 아이들은 바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제야 이 길이 완전히 스케이트장처럼 얼었구나라고 깨달았다. 남편은 출장 중이었고, 전화를 해서 일단 보험회사를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언제 올진 모르지만 이 상태로 두면 뒷집 차가 길을 지나갈 수 없을 테니까. 남편은 전화를 받더니 뒷집 아저씨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했다. 음, 그래, 그래야겠지, 하필 넌 출장이구나, 뒷집 벨을 눌렀다. 어쩔 수 없었다. 상황을 설명했더니 아저씨가 나오셨다. 운전석에 앉아보셨으나 차는 점점 더 나무 사이에 끼일 뿐. 아저씨가 보험사에 전화했냐고 물어보셨다. 네, 남편이 전화할 거예요. 아저씨가 보시더니 자갈을 가져와서 뿌려야 한다고 했다. 자갈은 어디 있어요? 저기 위에서 자갈을 가져오겠단다. 네,, 나는 그다지 도움 되지 않았지만 옆에서 아저씨를 도왔다. 이 미끄러운 길에 자갈을 어떻게 뿌릴 것인가. 나이도 많으신 아저씨가 넘어지시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아저씨에게 다치시면 안 된다고 했더니 걱정 말란다. 여기서 12년이나 살았단다. 길은 그냥 스케이트장이나 다를 게 없다. 눈 있는 부분을 밟아가며 아저씨는 자갈을 삽으로 뿌리고 나는 그 자갈이 든 수레를 잡았다. 학교를 가지 못한 아이들은 집에 들어가서 핸드폰으로 내 차 사진을 찍어서 주변에 보내고 있었다. 학교를 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 조금, 혹은 엄마 차는 과연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걱정 조금, 창가에 서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자갈을 뿌리는 와중에 집 앞을 지나가던 제설차가 멈춰 섰다. 창문을 열더니 아저씨와 스웨덴어로 대화했다. 걱정돼 보였나 보다. 하지만 한참 대화하더니 왠지 잘해보라고 하는 말을 남기고 가는 거 같았다. 아저씨가 궁금해하는 날 보더니 줄에 매서 차를 끌어내야 할 텐데 제설차는 줄이 없지라고 하며 다시 자갈을 뿌렸다. 자갈을 다 뿌린 아저씨가 본인이 차를 운전해 보겠다고 하셨다. 난 네 그렇게 해주세요.라고 했다. 붕~!붕~!붕!! 바닥에 뿌려진 자갈을 밟고 차가 경사면을 올라갔다. 하아! 천만다행. 난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했고 아저씨가 너네 애들 학교 갈 수 있겠다고 하셨다. 그래. 학교를 보내자. 남편에게 보험회사에서 오지 않아도 된다고 전화했다. 아이들을 등교시켰다.
아저씨는 경사면을 나갈 때 말이야~ 하시며 항상 후진으로 경사를 빠져나가던 이유를 알려주셨다 우리는 항상 전진으로 경사면을 빠져나가는데 아저씨는 항상 후진으로 나갔다. 후진으로 나가는 이유는 후진으로 가다가 경사를 올라가지 못해도 똑바로 내려와서 후진으로 다시 올라가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전진으로 나가면 오늘처럼 차가 옆으로 돌아버리면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단다. 아하 그래서 항상 후진으로 나가셨구나. 그리고 길이 너무 미끄러울 거 같은 날은 길가에 주차해. 그래도 돼. 네,, 그럴게요.. 감사해요.. 처음으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날이었다.
3월 29일.
어제도 눈이 많이 왔다 일어났더니 30센티는 와 있는 거 같았다. 오늘은 남편이 있어서 다행이지. 경사면을 빠져나가려 시도했으나 실패한 내 차를 두고 아빠 차에 애들을 태워 보낸 후에 난 집 앞에 눈을 치웠다. 큰 삽으로 눈을 떠서 양옆으로 밀어냈다. 그래 오늘은 내가 눈을 다 치워야겠어. 눈을 다 치운 뒤 차에 쌓인 눈도 털어내던 중에 차 뒷바퀴에 눈들이 뭉쳐져서 큰 덩어리로 붙어있는 게 보였다. 아마 눈을 밀고 올라가려다 생긴 눈 뭉치 같은 것인가 보다. 뒷바퀴가 헛도는 것에 이것도 한몫하는 거구나 싶어서 눈 뭉치를 발로 차서 떼어냈다. 떼어내고 생각해 보니. 지금 가능하면 차를 빼는 게 좋겠다 싶었다. 눈은 계속 오고 있고 그럼 눈이 또 쌓일 테니까. 용기를 내어 후진으로 차를 몰아봤다. 두 번의 실패 끝에 와! 빠져나왔다 길가에 대고 있다가 애들 데리러 가면 되겠다.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하니 집 앞 현관의 눈도 치워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삽으로 열심히 퍼서 옆으로 던졌다. 그렇게 강원도로 군대 간 남자들이 눈 치운 이야기를 들었던 게 생각났다. 눈 치우고 오면 또 치우고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다던 그 이야기. 이해할 수 있네, 그래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었겠다. 나 지금 북극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구나. 그래 여긴 북유럽이었지. 겨울만 되면 눈과의 사투를 벌여야 하는 4년이겠네. 4월까지도 눈이 온다니 일 년의 반은 눈과 사투를 벌여야겠구나. 그래, 여긴 북극과 가까운 곳인가 봐.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은 북위 62도의 스웨덴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