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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타누키 차차 Apr 24. 2018

내 이름이나 제대로 불러줘

뭐 그렇게 다를 게 있을까요 우리 인생?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을 꼭 보라 말해준 친구는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여자도 좋아하는 여자. 혼란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주인공 엘리오처럼 아직은 왔다 갔다 하는 상태인 거 같은 친구다. 여하튼 그녀의 추천으로 개봉일이 꽤 지나 몇 남지 않은 상영관의 시간을 어렵게 맞춰 보러 갔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끼리의 관계는 차마 불편해 못 보겠다는 남자친구를 굳이 끌고서는.


 영화를 본 후 남자친구에게 킬링 파트를 물으니 아버지가 동성애자인 아들을 소파에 앉혀놓고 이야기하던 장면이란다. 오, 웬일로 같은 의견이람. 아버지에게 이 대사를 읊조리게 하기 위해 엘리오와 올리버는 그렇게나 서로의 이름을 바꿔 부르며 뜨거운 여름밤을 지새웠나 보다.


이거 하나만 기억하렴
우리에게는 몸과 마음이 단 한번 주어지지
마음은 갈수록 닳아 헤지고 몸도 똑같아
시간이 흐를수록 다가오는 사람이 없어져
지금 너의 그 슬픔 그 괴로움을 모두 간직하렴
네가 느꼈던 기쁨과 함께.


 지금의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꼭 듣고 싶은 말이었던 것 같다. 나와 내 남자친구의 사정이 다르지 않아 아마도 같은 말에서 같은 위로를 받았나 보다. 그렇게 많고 많은 명장면들 중에서도 어쩌다 보니 주인공의 부모가 우리 이야기의 주제가 되었다.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없는 주제에.


 "나도 저런 아버지가 되고 싶어. 근데 그럴 수 있을지는 잘 모르다. 영화에서나 가능한 얘기겠지?


 "아니, 실제로도 있어. 여기에 없어서 그렇지."

남자친구의 물음에 난 단언했고 내가 만났던 현실 속 엘리오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첫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다. 당시 만나던 영국인 남자친구가 크리스마스라 영국에 계신 부모님께 다녀와야 한다 했다. 나도 퇴사 후에 영국에 사는 친구를 보러 갈 계획을 세우던 차라 그럼 며칠 너네 집에서 신세 좀 지겠다 하였다. 무슨 깡이었는지 그때는 친구네 가족과 지내야 한다는 불편함보다 여행 경비를 줄일 수 있다는 생각에 그저 신나기만 했다.  


 간단히 관광도 하고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도 만나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금방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그날은 영국인 친구 집에서 열리는 홈 파티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들에겐 우리나라 설날만큼 큰 명절이고 또 생면부지 동양 여자를 흔쾌히 받아주시고 재워주신 감사에 대한 의미로 뭐라도 도와야겠다 싶었다.


 청소를 하고 테이블 세팅을 하고 와인잔을 닦으며 손님들을 기다렸다. 영국인 친구네 집은 우리나라로 치면 큰 집 같은 곳이어서 친척들이 다들 이리로 모인다 했다. 그곳에서 나는 잊지 못할 세 커플을 만나게 되었다.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사랑을 만나게 되었다.


 첫 번째 손님은 영국인 친구의 고모였다. 4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그녀는 이혼을 했는데 사귀는 남자친구를 데리고 왔다. 그것도 자신의 16살 아들과 함께. 내년에 재혼을 한다며 나에게 자신의 결혼식을 어떻게 할 것인지 자세히 설명하며 꼭 오라고 하였다. 두 번째이기는 하나 예비 신혼부부답게 어찌나 애정표현에 에너지가 넘치시던지 나는 조금은 부담스러워 그 커플을 피해 열여섯 살 그녀의 아들에게 갔다. 말을 좀 붙여볼까 싶어 먼저 아는 척을 하니 이 십대 사춘기 소년이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엄청 틱틱거리는 거다. 나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가족들에게 십 대 특유의 반항기로 노려보거나 짧게 대답하는 게 전부였다. 아, 어딜 가나 십 대는 무섭구나. 나는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구나 생각하며 멘탈을 다잡았다.


 두 번째로 도착한 손님은 두 명의 남자들이었다. 사촌 동생이란다. 그리고 사촌 동생의 남자친구란다. 그것도 중국인 남자친구. 그러니까 내 영국 친구의 사촌은 게이이며 현재 중국에서 영어선생님을 하고 있단다. 현지에서 만난 이 중국인 남자와 사귀고 있는 사이이며 크리스마스는 큰 명절이라 안 올 수가 없어 함께 방문했다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그 커플을 이상하게 여기거나 처음 보는 중국인을 낯설어하지 않았다. 잘 왔다며 따듯하게 맞이해주는데, 와...난 이때부터는 모든 걸 내려놓았다. 무슨 상황이 닥쳐도 허허 웃으며 대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담배를 피우러 나가길래 쫓아가서 한 대 달라하니 무뚝뚝하게 말없이 있던 중국인 청년이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나에게 이것저것 수다스럽게 말을 거는 게 아닌가. 따지고 보면 그 중국인은 나와 같은 처지였다. 모두가 영국인이 이곳에 유일한 동양인. 우리 둘은 맞담배를 피우며 금세 친해져 서로의 동아줄이 되어 꼭 붙어 다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우리 둘이 애인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마지막 커플은 영국인 친구의 친누나였다. 그녀는 와이프와 함께 왔다. 그것도 임신한 채로. 알고 보니 내 친구의 누이는 레즈비언이었고 그래서 여자와 결혼을 했단다. 둘 다 아이를 간절히 원해 정자 기증을 받아 누이가 임신을 한 것이라 했다. 나는 이게 지금 꿈인가 생시인가 어떻게 한 가족에게서 이런 일이 말이 되나 한국이었으면 상상도 못해 봤을 텐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누이의 와이프는 만삭인 아내의 배를 연신 쓰다듬으며 여느 부부와 다름없이 몸이 무거운 아내를 대신에 물이며 음식을 알뜰히 챙기고 보살폈다. 그런 그녀들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그 관경이 조금 익숙해지자 정말 희한하게 나도 아무렇지 않아졌다. 그냥 그렇구나 저들은 저런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사람이 많아지자 여기저기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짧은 영어 실력이 탈로나 반 토막 되어서 내 귀에 전달되는 단어들을 억지로 조합해가며 어설픈 대화를 이어가고 있을 때였다. 누이의 와이프가 슬쩍 내게로 와 귓속말을 하고 갔다.     


 "걱정하지 마. 나도 여기선 너랑 똑같은 이방인이야. 사실 나도 별로 편하지 않거든. 크크."

아, 그녀에겐 지금 이곳이 시월드인 건가. 그리 생각하니 진짜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다 싶어 마음이 편해지다 못해 웃음이 났다.  


 그리고서는 할머니와 몇몇 친척들이 더 모여들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만찬을 거의 세 시간을 즐기고 거실에 둘러앉아 낱말 맞추기 게임을 하고 와인을 들이붓다시피 마시며 놀았다. 술에 취하자 게이고 레즈비언이고 이혼녀고 동양인이건 할 거 없이 흥분을 해가지고 흡사 올림픽 같은 열기로 게임에 몰입했다. 내가 잘 되지도 않는 초딩영어로 네이티브들을 이겨보겠다고 아무말 대잔치를 하자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한껏 술에 취한 영국인 친구 아버지의 눈엔 흐뭇함이 그득히 배어있었다. 언젠가 본 적이 있다 저런 눈. 6남매 자식들과 줄줄이 딸려온 손자들, 그리고 처음 인사하러 온 손자며느리와 함께 생신잔치를 하던 날의 우리 외할아버지의 눈과 꼭 닮아 있었다. 내가 헛되이 살지 않았구나 부지런히 열심히 살아 이런 날을 맞이하는구나. 그런 어르신들의 눈. 자식들만 잘 되면 더 바랄 게 없다는 부모의 눈동자였다.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도,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도, 동양인을 좋아하는 서양인도 그저 그의 부모 눈엔 똑같이 귀하고 똑같이 중한 자식이고 가족인 것이었다. 중간중간 혹시 내가 소외감 느낄까 다정히 말을 걸어주고 신경 써주신 그분의 배려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너네 아버지 진짜 멋있는 분인 거 같아."

 작지만 어떤 곳보다도 커다란 세계 같던 그 집을 떠나면서 나는 영국인 친구에게 말했다. 그리고 이 어마무시한 지구촌 사건을 겪고 동성애에 대한 내 생각은 확고해졌다. 사실 처음부터 편견이 있던 사람은 아니었으나, 지금의 내 남자친구처럼 마냥 편치만은 않던 사람이었다. 찬성 편에 섰지만 무엇을 찬성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이 날을 계기로 알게 되었다. 내가 만났던 그들은 결코 이상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나는 더 이상 그들의 사랑이 가슴 아프거나 슬프지도 않다. 그런 마음이 들 필요도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한테 가질 수 있는 감정을 키우고 지켜가는 사람들일 뿐이다. 이런 당연함이 찬성하고 반대해야 하는 일인 지조차 의심스럽다. 누구에게 그럴 자격이 있느냐 말이다.    


 "만약에 우리가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어느 날 너에게 고백하는 거야. 아버지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남자입니다. 그러면 너 어떻게 할래?"

 지구촌 이야기를 마치고 불쑥 남자친구에게 물었다. 좀 고민을 하는가 싶더니 또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내놨다.


그래서 나도 모르겠다고 했다.

"아버지 저는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그랬더니 너희 아버지가 안된다 아들아 그것은 사회에서 돈이 안되니 기술이나 배우거라. 이렇게 말하는 것과 게이인 아들의 고백에 안된다 아들아 그것은 사회가 용납하지 않으니 여자나 만나거라. 이렇게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지 나는 모르겠어."


 "듣고 보니 진짜 그렇네."

음악 하는 자신의 상황으로 비유하니 한 번에 와닿은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고민이 좀 더 깊어진 듯했다. 괜스레 분위기가 무겁게 된 거 같아 나는 장난을 치며 내 이름을 남자친구에게 불러 보았다. 영화 속 엘리오와 올리버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자 남자친구는 너는 어딘가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다며 치를 떨며 저만치 달아났다. 이런 낭만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놈. 왜 그렇게 싫으냐고 콜미 바이 유어 네임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며 따지자 꽤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네가 불러주는 내 이름이 제일 듣기 좋으니까. 그러니까 그냥 내 이름으로 불러."

 생각했다. 어쩌면 이건 네 말이 더 옳은 건지도 모르겠다고. 나를 그 자체로 온전히 이해한 채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몇이나 있다고. 우리 부모님도, 세상 누구도 못하는 일을 네가 하고 있는데 너 자신처럼 나를 사랑해달라는 건 욕심이지.


 그래, 네 이름으로 불리는 것 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내 이름이나 제대로 불러줘라. 네 옆에서는 누구도 아닌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게. 내가 나라는 것에 죄책감 들지 않게.  


 여기에도 그런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당신의 이름이 제대로 불릴 수 있는 날이.        



왜 무조건 안된다는 걸까, 그 사람들 이름 한 번 제대로 불러준 적도 없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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