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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타누키 차차 May 02. 2018

선인장 연쇄 살생 사건

뭐 그렇게 다를 게 있을까요 우리 인생?

 사건은 언제나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다. 어찌 손써볼 새도 없이 뜻밖의 이유들로. 그렇기에 그런 사건에 있어서 나는 언제나 수동적인 입장이 되고야 만다. 무력하고 또 무력하게.

 

 선인장이 또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사건이다. 이걸로 여섯 번째. 내가 키우던 선인장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하나 둘 차례대로 죽어 갔다. 연쇄 사건이다. 오늘 죽은 이 선인장은 마지막 남은 생존자이자 희망이었다. 일은 이미 벌어졌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무력하게 쪼그리고 앉아 죽은 선인장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창문 밖에선 이 아이만큼은 절대 잃을 수 없다 다짐했던 지난날들을 닮은 가느다랗고 나약한 빗줄기들이 바람에 휘청거렸다.  


 이사를 하고 집들이를 할 때면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한 손에 선인장 하나씩을 들고 왔다. 레옹의 마틸다라도 되는 것 마냥. 아무리 원룸이어도 초록 식물 하나쯤 있어야 한다며, 아무리 네가 똥손이라도 사막에서 살아남는 생명력이라며.


 자, 보아라 너희의 예견은 틀렸다. 나는 똥손 중에서도 금똥손임이 비로소 분명해졌기에.


 말 못 하는 미물이라 할지라도 작은 단칸방에 옹기종기 모여 숨을 붙이고 살던 녀석들이 아닌가. 내가 그러하듯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생존하기 위해 용을 썼을 녀석들이 일 년 동안 여섯 놈이나 죽어가는 걸 지켜보는 일은 생각보다 끔찍했다. 어떤 녀석은 말라죽었고 어떤 녀석은 썩어 문드러졌다. 도대체가 물을 줘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바싹 말라 톡 건드리면 툭 으스러질 거 같은 녀석을 떠나보내며 다짐했다. 더 잘해줘야지. 푹 썩어 축 늘어진 녀석을 떠나보낼 때에도 다짐했다. 더 신경 써줘야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두 녀석은 내가 가장 아끼는 놈들이었다. 아마도 그것을 선물해준 두 녀석이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들이기에 그럴 터였다. 선물이란 건 원래 그렇게 되지 않던가.  


 둘 중에 먼저 세상을 저버린 건 다섯 개가 한 화분에서 뾰족뾰족 송곳처럼 서 있던 선인장 있었다. 이전 집에서 살 때 남자친구가 선물해준 선인장이었다. 얄상하게 빼빼로 같던 녀석들이 야금야금 두 해 동안 햇살을 갉아먹고선 시가 한 대 굵기만큼 꽤 도톰히 자라났었다.


 상태가 안 좋아진 건 이사를 하고 나서부터였다. 어느 날 보니 다섯 개 중 한 대가 노랗게 변해 자글자글 쪼그라들어 있었다. 생명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노인의 손가락처럼. 인터넷을 뒤져보니 흙에 수분기가 많아서 그렇다며 죽은 건 뽑아내고 햇빛을 쐬어주라 하였다. 나는 한 개의 노인 손가락을 뽑아 들고 화분을 볕 좋은 베란다로 옮겼다. 제발 나머지 네 손가락이라도 청춘을 잃지 않기를 바라면서.


 내 바람과 달리 몇 개월 단위로 한 번씩 나는 노인의 손가락을 뽑아 들어야 했다. 어떤 이는 노랗게 변한 부분만 잘라 주면 된다 하기에 썩어가는 손가락 윗부분을 댕강 절단도 해보았으나 그것들의 노화를 막을 순 없었다.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야 했던 화분은 다섯 개의 손가락을 모두 잃고 나서야 바싹 마른 흙을 토해낼 수 있었다.   


 마지막 여섯 번째의 이 녀석은 친구에게 받은 선물이었다. 통통하고 푸짐한 몸매에 고슴도치처럼 따끔거리는 가시를 달고 있는 선인장의 표본 같은 놈이었다. 다른 녀석들이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선인장이라는 이름값을 하고 있었다. 그런 녀석이 한없이 축 처져서는 옆으로 쓰러질 듯 위태롭게 제 몸 하나 가누기 벅찬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어제 물을 주었다. 오늘은 비가 왔다. 밑으로는 갑작스레 젖어온 축축한 토양을 견디고 위로는 한가득 물기 머금은 습하디 습한 공기를 이겨내야 했으리라. 기운이 다한 남자의 성기처럼 축 처져 꼬꾸라진 녀석은 다시 일어날 생각을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실을 부정하며 그 상태로 며칠을 지켜보니 머리 꼭대기로 영혼이 빠져나간 듯 하얀 곰팡이가 서렸다.


 너무 빨리 찾아온 봄을 책망하듯 서럽게 내리던 사흘간의 비는 벚꽃과 함께 나의 마지막 남은 선인장을 그렇게 앗아갔다. 화분에 있던 흙을 집 앞 화단에다 유골 뿌리듯 털어냈다. 이제 녀석이 있던 곳은 텅 빈 회색빛 화분만이 비석처럼 남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나는 노인 한 명과 장정 한 명을 죽인 것 같은 죄책감으로 두 개의 비석 앞에 서서 묵념하듯 말없이 그것들을 바라보곤 했다.   


 사건이 종결되고 얼마 후 방 한가득 햇살이 들어차는 날이었다. 산책이나 하며 마음을 달래러 한강엘 갔다. 항상 가던 길인데도 이곳이 이리도 푸른색 울창한 녹색지대였나 싶고, 관리하는 사람들이 따로 계시는 걸까 대단하다 느껴졌다. 죽어간 선인장에게 미안한 마음이면서도 나는 또 살겠다고 금똥손인 부끄러운 손모가지를 호주머니에 찔러 숨기고 초록 식물의, 파란 강물의, 노란 햇살의 기운들을 한껏 흡수했다.  


 돌아오는 길목에서 그동안은 있는지도 몰랐던 작은 꽃집이 눈에 띄었다. 구둣방만 한 비좁은 컨테이너 박스에 간판도 제대로 없었다. 평소 눈 주변이 어두운 나이기에 이번 사건이 아니었다면 아마 평생 모르고 살았어도 이상하지 않을 위치와 형태의 꽃집이었다. 뭐에 홀린 사람처럼 발길이 멈췄다. 혹시 키우던 선인장과 닮은 놈들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사람 하나 들어차기도 벅찬 내부라 오래 살필 것도 없이 모든 종류의 식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내가 키우던 선인장의 종류도 단박에 보였다. 살까 말까 멀뚱멀뚱 고민하는 내게 주인아주머니가 뭐 찾는 거 있으시냐 물어 왔다.


 "아주머니, 선인장은 왜 죽는 걸까요?"

나는 꼭 알아야 했다. 그래야 내가 지금 저기 보이는 죽은 우리 아이를 닮은 저 선인장을 데리고 갈지 말지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집 선인장이 계속 죽는다고 물도 잘 주고 해도 잘 쬐어주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도 죽어갔다고 오늘 처음 와 본 꽃집에서 처음 보는 아주머니에게 제발 그들의 죽음이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달라 간청하듯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아주머니는 그 꼴이 우스웠던지 콧방귀를 몇 번 뀌시고는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 볼 일을 보시며 시크하게 말했다.   


"선인장은 내깔려두면 지가 다 알아서 살아요 아가씨."

딱 그 한마디였다. 구구절절했던 내 하소연과는 달리 내깔려두라는 그 한 마디. 그러니까 나는 내 선인장들을 너무 구구절절하게 대했던 것이다. 방금 늘어놓았던 하소연처럼. 그냥 내깔려두고 무심히 대하면 알아서 잘 커나갈 녀석들이었을 텐데, 그 아이들이 감당하지 못할 관심을 쏟는 바람에 결국 모두 내 곁에서 떠나가게 만든 것이다. '더 잘해야지 더 신경 써야지' 그 호의에서 생겨난 마음과 행동들이 선인장에겐 독약이고 사형선고이었으리라. 아마 이렇게 들리지 않았을까. '더 죽여야지. 더 완벽하게 죽여야지.'  


 쓸쓸한 인사를 남기고 꽃집을 나왔다. 선인장은 사지 않았다. 도저히 내깔려두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지금은 무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또 잃게 될까 봐 보고 또 보고 매일매일을 신경 쓸 거 같았다.


 관심이라는 이름 아래 사랑이 집착이 되어 끝나버린 연인들이 있다. 관심이라는 이름 아래 충고가 잔소리가 되는 줄 모르는 꼰대도 있다. 관심이라는 이름 아래 보호하고 또 보호하다 자식을 우리 안에 갇힌 짐승처럼 사육하는 부모도 있다. 그런 관심이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그래야 살 수 있다고 하늘로 떠난 선인장들이 내게 말해주었다.  


 결국은 다 내 탓이었다. 불필요한 관심을 너무 가져 버린 내 탓. 혹여 내 곁에서 선인장처럼 말라 버린 이가 있을까, 썩어 문드러진 마음이 있을까 불안해졌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주는 일도 선인장에게 물을 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것처럼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이었다. 산책으로 괜찮아졌던 마음이 다시금 무거워졌다.     


 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인생은 매번 너무나도 어렵고 까탈스럽다. 집으로 돌아와 좋아하는 예능과 드라마를 잔뜩 받았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오늘만큼은 내가 선인장이 되어야 했다. 누가 건들기만 해봐라 가시를 잔뜩 세우고 쏘아줄 테다. 화분처럼 네모난 침대에 포근히 안기자 보이지 않는 경고 푯말 하나가 세워졌다.


'절대 관심 주지 마시오.'


                   

이 물 저 물 다 주다 내 이럴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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