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그렇게 다를 게 있을까요 우리 인생?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창의'라 한다면, 초파리는 단연 창의적 생명체다. 그의 탄생은 언제나 무에서 유.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곳에서 왜인지 어째서인지도 모르게 태연히 태어난다. 그 작은 몸짓으로 마음껏 자신의 존재를 뽐내는 녀석을 외면할 수 있는 인간이 몇이나 될까. 하찮은 인간은 인식할 수도 없는 아주 작은 양의 당분이 머문 자리가 그들의 자궁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1미리가 될까 말까 한 미세한 초파리. 툴툴거리는 버스 안 창틀에서 배를 뒤집어까고 왕왕거리는 이 초파리는 과일을 좋아하는 한 소녀의 바나나 껍질, 혹은 그 소녀의 밑에 층 사는 청년이 방치한 쓰레기봉투, 그것도 아니라면 그 청년의 옆집 사는 노년의 아저씨가 활력을 위해 마시다 떨군 복분자주 한 방울이 그의 고향임이 분명하다. 어째서 제 고향을 떠나 이런 위험천만한 여행을 시작한 것일까.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책을 펼치려다 말고 녀석을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한다.
몸이 뒤집힌 녀석은 여섯 개의 발을 부지런히 허공에 허우적거린다. 추락한 날개도 날개라고 힘겹게 어깨에 둘러메고 선 파닥거려본다. 창틀 바닥으로 부딪히는 의미 없는 날갯짓은 핸드폰 진동 소리처럼 왕왕거릴 뿐. 그 모습이 어찌나 처량하고 절박해 보이던지 하마터면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하늘에다 굿을 올리는 무당같이, 방바닥에 뻗어 떼쓰는 갓난쟁이같이, 제발 전화 좀 받아달라 사정하는 전남친의 전화같이 녀석은 사정없이 왕왕 거리고 또 윙윙거리다 징징댄다.
10여 분이 넘게 보고 있자니 녀석의 퍼포먼스는 이제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댄서 같았고, 그런 댄스는 이미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왈칵 눈물을 쏟을 것 같은 마음이 생긴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금세 지루해진다. 손에 쥐고 있던 책을 펼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서너 장 책장을 넘기자 백색소음처럼 주기적으로 반복되던 윙윙 거림이 잠잠하다. 고개 들어 바라보니 어찌 된 영문인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여섯 다리로 꿋꿋이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느라 당이 떨어졌는지 어떠한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몹시도 지친 여섯 개나 딸린 다리들. 두 다리 이끌고 다니기도 벅찬 나는, 너는 오죽할까 싶어 가련히 녀석을 응시한다. 어디 이제 날아가 보거라. 썩은 바나나 껍질 위 너의 고향으로 돌아가 네 운명을 다하거라 나름의 응원을 하고선 다시 책을 서너 장 읽는다.
윙윙, 왕왕. 또 한 번 굿판이 벌어진다. 갓난아이는 떼를 썼고 전남친의 전화는 끈질겼다. 아니 녀석아, 왜 또 배를 뒤집어 까고 그러고 있는 게냐. 그러니까 아까 정상적으로 다리가 바닥에 와 닿았을 때 쉬지 않고 날아갔으면 얼마나 좋으냐 이 등신아. 너의 처지가 그리된 것은 네가 게을렀기 때문이다. 감히 쉬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만났을 때처럼 배를 깔고 뒤집어져 발버둥 치는 그 고구마 답답이를 바라보게 되자 나는 슬슬 짜증이 난다. 책을 집어 든다. 서너 장 넘긴다. 놈이 잠잠해진다. 다시 앉아 있다. 아까보다 더 지쳐 있는 몰골을 하고선. 시선을 돌린다. 책을 서너 장 넘긴다. 놈이 소리를 낸다. 또 배를 깔고 누워서 앵앵. 다시 책으로. 서너 장 넘기고. 놈은 또다시 잠잠.
참다못한 나는 책을 완전히 덮어 버리고 가방에 쑤셔 넣는다. 곧 내릴 정류장도 다 와가기도 하거니와 이놈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하길래 이리 배를 뒤집어 까고 앵앵 거리는 건지 꼭 확인해야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한동안 정자세로 앉아 쉬던 녀석을 집요하게 바라본다. 그는 서서히 걸음을 옮긴다. 엉금엉금 천금처럼 무거운 여섯 다리를 이끌고 수직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시커먼 창틀을 지나 투명한 유리창에 딱 붙어 중력을 거슬러 올라간다. 여섯 다리가 등반한다. 창문 쪽으로 세상 쪽으로.
덜컹, 신호에 멈춰 선 버스가 그대로 그를 떨궈낸다. 그가 자빠진다. 배를 깔고 뒤집어진 채로...
파리는 이것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는 익숙할 법도 한데 그는 마치 처음 겪는 일인 양 고통스럽게 진동한다. 다리를 허공에 휘저으며 윙윙. 그제야 나는 그 여섯 개의 다리가 여섯 개의 손으로 보인다. 윙윙대는 것이 아니라 빌빌대는 거였다. 어서 살려달라고 어쩌면 어서 죽여달라고. 여섯 개의 손은 공손히 빌고 또 빈다. 비록 초파리의 운명일지라도 고장 난 날개를 가졌더라고, 태어나 찾아야 할 게 썩은 과일이나 쓰레기 더미일지라도, 세상에 초대된 적은 처음부터 없었을지라도, 밖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빌고 또 빈다. 윙윙, 왕왕, 징징. 어서, 제발, 부디.
삶의 허무를 본다. 삶의 의지를 본다. 초라한 미물을 본다. 위대한 크리에이터를 본다. 최후의 발악을 본다. 최초의 파동을 본다. 그름을 본다. 옳음을 본다.
버스 안에서 뒤집어진 파리를 바라본다.
나는 나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