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너나 나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타누키 차차 Jun 06. 2018

구태여 더 나은 삶을 빌어본다

뭐 그렇게 다를 게 있을까요 우리 인생?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창의'라 한다면, 초파리는 단연 창의적 생명체다. 그의 탄생은 언제나 무에서 유.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곳에서 왜인지 어째서인지도 모르게 태연히 태어난다. 그 작은 몸짓으로 마음껏 자신의 존재를 뽐내는 녀석을 외면할 수 있는 인간이 몇이나 될까. 하찮은 인간은 인식할 수도 없는 아주 작은 양의 당분이 머문 자리가 그들의 자궁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1미리가 될까 말까 한 미세한 초파리. 툴툴거리는 버스 안 창틀에서 배를 뒤집어까고 왕왕거리는 이 초파리는 과일을 좋아하는 한 소녀의 바나나 껍질, 혹은 그 소녀의 밑에 층 사는 청년이 방치한 쓰레기봉투, 그것도 아니라면 그 청년의 옆집 사는 노년의 아저씨가 활력을 위해 마시다 떨군 복분자주 한 방울이 그의 고향임이 분명하다. 어째서 제 고향을 떠나 이런 위험천만한 여행을 시작한 것일까.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책을 펼치려다 말고 녀석을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한다.


 몸이 뒤집힌 녀석은 여섯 개의 발을 부지런히 허공에 허우적거린다. 추락한 날개도 날개라고 힘겹게 어깨에 둘러메고 선 파닥거려본다. 창틀 바닥으로 부딪히는 의미 없는 날갯짓은 핸드폰 진동 소리처럼 왕왕거릴 뿐. 그 모습이 어찌나 처량하고 절박해 보이던지 하마터면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하늘에다 굿을 올리는 무당같이, 방바닥에 뻗어 떼쓰는 갓난쟁이같이, 제발 전화 좀 받아달라 사정하는 전남친의 전화같이 녀석은 사정없이 왕왕 거리고 또 윙윙거리다 징징댄다.


 10여 분이 넘게 보고 있자니 녀석의 퍼포먼스는 이제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댄서 같았고, 그런 댄스는 이미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왈칵 눈물을 쏟을 것 같은 마음이 생긴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금세 지루해진다. 손에 쥐고 있던 책을 펼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서너 장 책장을 넘기자 백색소음처럼 주기적으로 반복되던 윙윙 거림이 잠잠하다. 고개 들어 바라보니 어찌 된 영문인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여섯 다리로 꿋꿋이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느라 당이 떨어졌는지 어떠한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몹시도 지친 여섯 개나 딸린 다리들. 두 다리 이끌고 다니기도 벅찬 나는, 너는 오죽할까 싶어 가련히 녀석을 응시한다. 어디 이제 날아가 보거라. 썩은 바나나 껍질 위 너의 고향으로 돌아가 네 운명을 다하거라 나름의 응원을 하고선 다시 책을 서너 장 읽는다.  


 윙윙, 왕왕. 또 한 번 굿판이 벌어진다. 갓난아이는 떼를 썼고 전남친의 전화는 끈질겼다. 아니 녀석아, 왜 또 배를 뒤집어 까고 그러고 있는 게냐. 그러니까 아까 정상적으로 다리가 바닥에 와 닿았을 때 쉬지 않고 날아갔으면 얼마나 좋으냐 이 등신아. 너의 처지가 그리된 것은 네가 게을렀기 때문이다. 감히 쉬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만났을 때처럼 배를 깔고 뒤집어져 발버둥 치는 그 고구마 답답이를 바라보게 되자 나는 슬슬 짜증이 난다. 책을 집어 든다. 서너 장 넘긴다. 놈이 잠잠해진다. 다시 앉아 있다. 아까보다 더 지쳐 있는 몰골을 하고선. 시선을 돌린다. 책을 서너 장 넘긴다. 놈이 소리를 낸다. 또 배를 깔고 누워서 앵앵. 다시 책으로. 서너 장 넘기고. 놈은 또다시 잠잠.


 참다못한 나는 책을 완전히 덮어 버리고 가방에 쑤셔 넣는다. 곧 내릴 정류장도 다 와가기도 하거니와 이놈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하길래 이리 배를 뒤집어 까고 앵앵 거리는 건지 꼭 확인해야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한동안 정자세로 앉아 쉬던 녀석을 집요하게 바라본다. 그는 서서히 걸음을 옮긴다. 엉금엉금 천금처럼 무거운 여섯 다리를 이끌고 수직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시커먼 창틀을 지나 투명한 유리창에 딱 붙어 중력을 거슬러 올라간다. 여섯 다리가 등반한다. 창문 쪽으로 세상 쪽으로.


 덜컹, 신호에 멈춰 선 버스가 그대로 그를 떨궈낸다. 그가 자빠진다. 배를 깔고 뒤집어진 채로...

파리는 이것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는 익숙할 법도 한데 그는 마치 처음 겪는 일인 양 고통스럽게 진동한다. 다리를 허공에 휘저으며 윙윙. 그제야 나는 그 여섯 개의 다리가 여섯 개의 손으로 보인다. 윙윙대는 것이 아니라 빌빌대는 거였다. 어서 살려달라고 어쩌면 어서 죽여달라고. 여섯 개의 손은 공손히 빌고 또 빈다. 비록 초파리의 운명일지라도 고장 난 날개를 가졌더라고, 태어나 찾아야 할 게 썩은 과일이나 쓰레기 더미일지라도, 세상에 초대된 적은 처음부터 없었을지라도, 밖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빌고 또 빈다. 윙윙, 왕왕, 징징. 어서, 제발, 부디.    


 삶의 허무를 본다. 삶의 의지를 본다. 초라한 미물을 본다. 위대한 크리에이터를 본다. 최후의 발악을 본다. 최초의 파동을 본다. 그름을 본다. 옳음을 본다.


버스 안에서 뒤집어진 파리를 바라본다.    

나는 나를 바라본다.  



The Originality Of Wi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