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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타누키 차차 Jun 20. 2018

그곳엔 아직 털이 자란다

뭐 그렇게 다를 게 있을까요 우리 인생?

 털의 소임은 자라나는 데에 있다. 그것을 어떻게 관리할지는 인간의 소임이다. 나에겐 이 털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 하나가 있다.


 2010년, 한국이 싫어서 대학교를 휴학하고 무작정 호주로 떠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학연수를 했는데 어학원은 분명 호주였지만 전부 나와 같은 동양인들 투성이었다. 일본, 중국, 홍콩... 그중에 한국인과 일본인의 수가 가장 많았다. 예외적으로 브라질과 콜롬비아에서 온 아주 소수의 서양인들이 반에 한두 명씩 있을 뿐이었다.  


 동양인은 수적으로 우세했으나 서양인은 성질적으로 우세했다. 말도 적고 질문도 없고 숫기 없는 동양 친구들에 비해 서양 친구들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말도 많고 웃음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어학원의 분위기는 소수의 서양인이 주도하는 모양새였고 자연스레 동양파와 서양파가 나뉘어 움직였다. 점심시간이 되면 분위기 좋은 테라스는 서양 친구들의 차지였고 동양 친구들은 실내에서 서로의 도시락을 나눠먹곤 했다.    


 나는 그게 한국보다 싫었다. 아니, 한국 같아서 싫었다.


 용기를 내어 도시락을 들고 테라스로 향했다. 같은 반이었지만 굿모닝 인사 외에 말을 섞어 본 적 없는 브라질 친구에게 점심을 같이 먹어도 되냐 물었다. 나보다 어렸지만 한참은 어른의 윤곽인 그는 비슷한 윤곽이 도드라진 서양 친구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친구는 앉은자리에서 몇 초간 나를 올려다보더니 "Sure"하고 내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뭐가 많거나 컸다. 남자들은 털이 그득하거나 키가 컸다. 여자들은 머리숱이 풍성하거나 가슴이 컸다. 그들에 비해 대체적으로 뭐가 없거나 작은 나는 난생처음 서양인에 둘러싸여 어색한 한 끼를 채웠다.


 긴장한 티가 났는지 내 오른편에 앉은 얄상한 체격에 턱수염이 조잡하게 나 있는 브라질 남자애 한 명이 먹잇감을 찾았다는 표정을 하고선 얌생이처럼 물었다.


"너도 밑에 머리카락이 있니?"

함께 앉아 있던 서양 친구들이 또 시작이다 싶은 표정으로 킥킥거렸다. 응?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상황을 파악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러니까 굳이 올바르게 번역해보자면 '너도 그곳에 털이 있니?' 정도가 된다. 이게 초면에 할 소리인가 싶었지만 당황한 모습을 보이면 이 턱수염 얌생이에 놀아나는 꼴이 될까 봐


"당연하지, 너는 없나 봐?"

아무렇지 않다는 듯 깐족거리며 되받아 쳤다.


 "응, 우린 없어. 다 밀거든"

 얌생이 턱수염은 호탕하게 웃으며 나를 살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이때, 요새 유행한다는 브라질리언 왁싱에 대해 처음 접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현지인에게서 직접.   


 "그게 무슨 말이야. 이해가 잘 되지 않아. 왜 그곳의 털을 없애는 거지?"

 내 눈은 그 순간만큼은 그들의 눈처럼 커졌다.


 "첫째, 위생적이고. 둘째, 관계를 할 때 촉감이 달라. 셋째, 보기에도 좋지"

 턱수염 얌생이 녀석은 손가락까지 꼽아가며 굉장히 합리적인 근거를 내세우는 듯하였으나, 나에겐 첫째 건 둘째 건 셋째 건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이유들이었기에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조차 불가능이었다. 문화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한 나는 그 자리에 있던 서양인 친구들 모두에게 믿을 수 없다는 듯 따지기 시작했다.  


 "너도 없니? 너도 없어? 정말이야 너도 없어?"

 일면식도 없는 그들에게 그곳에 정말 털이 없냐며 한 명씩 짚어가며 일일이 확인을 해댔고 대부분은 크하하핫 소리를 내며 웃었고 몇몇은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이 자리에 있는 동양인이 나 혼자라는 사실보다 지금 그곳에 털이 난 사람이 나 혼자라는 사실에 나의 그곳은 순간 서늘해졌다.  


 도저히 상상이 안된다고 한국에서 그런 사람은 만나본 적이 없다 하니 그 턱수염 얌생이 녀석은 잔뜩 흥이 올라서 굳이 사이트에서 털이 없는 서양인들의 사진을 잔뜩 보여줬다. 나는 그걸 또 굳이 두 눈으로 스캔하며 연신 오 마이 갓을 외쳐댔다. 그런 나에게 턱수염 얌생이는 혼자서도 손쉽게 그곳의 털을 정리하는 방법까지 세심히 알려주었다.


 "나, 오늘 가서 해봐야겠어. 후기는 내일 점심시간에 알려주지."

 사뭇 결의에 찬 나의 선언에 턱수염 얌생이는 감격한 듯 일어나 환호 섞인 박수를 보냈다. 당시에는 저 턱수염 얌생이는 살짝 조증이거나 애정결핍임이 틀림없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의 털은 턱수염 얌생이가 동양인을 짓궂게 놀리는 패턴 중 하나였다고. 보통 얼굴이 빨개지거나 화를 내며 자리를 뜨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Unusual Korean!"

 그 사건 이후에 그들은 나를 그렇게 불렀다. 나는 그 녀석들과 절친이 되었고 덕분에 내 어학원 생활은 한층 다이내믹해졌다. 수업이 끝나면 바다로 달려가 바비큐 파티를 하고 주말이 되면 수영장이 딸린 쉐어 하우스에서 브라질리언식 파티를 즐겼다. 시끄럽다는 신고에 몇 번이나 경찰들이 들이닥쳤고 우리는 몇 번이나 없는 척을 하거나, 반성하는 척을 하거나, 뒷문으로 도망치거나 했다. 그곳에서 나는 몇 안 되는 동양인 소수파였지만 그런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우리들은 똑같이 축구를 좋아했고, 골을 못 넣으면 똑같이 욕을 했다. 똑같이 파티를 즐겼고, 술이 떨어지면 똑같이 욕을 했다.


 서양인은 개인적이고 이기적일 거란 나의 편견을 그들이 깨주었고, 동양인은 소심하고 부끄럼쟁이라는 그들의 편견을 내가 깨준 셈이다. 뭐든지 처음이 힘들지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된다. 그들과 나의 사이가 그랬고 털을 남김없이 밀어버린 나의 그곳이 그러했다. 나의 세상은 종종 새로웠고 그래서 의도치 않게 즐거웠다.


 어느새 서른, 어느새 어른. 가끔 저 바닥으로 가라앉은 기억의 우물을 퍼내다 보면 그때의 생기로움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러면 나는 그때의 내가 부러워진다. 뭐든지 알고 싶고,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그 시절 나에게로 뛰어가 벌러덩 드러눕고만 싶다.

 

 세상에 질문이 없어진다는 것은 알아가기 위해 살아간다기보다 맞춰가기 위해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졌음을 의미한다. 새로운 것을 도전하기엔 나는 대부분 졸리거나, 깨어 있어도 일어나고 싶지 않은 상태일 때가 많아졌음을 의미한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일도 모르는 척하는 게 낫다며 획 하니 고개를 돌려버릴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것을 철이 들었다 말하기도, 또 누군가는 그것을 노화 든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답을 말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 걸 알고 있는 사람이 이 세상 사람일 리가 없지 않은가.    


 나의 그곳은 이제 예전 같지 않다. 그럼에도 털은 계속 자란다. 이런 삶이든 저런 삶이든 매일매일이 수수께끼라 생각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니까 어떤 질문들은 모르는 채로 남겨두지 않기로 하자. 우리의 그곳엔 아직 털이 자라나고 있음으로.


너무 털털했나봐....





서른 넘어 회사도 때려치우고 뉴질랜드로 워홀을 떠난 친구와 결혼을 하고 이민을 결심해 홀연 미국으로 떠난 언니. 이 글을 두 사람에게 바칩니다. 

 

더 많이 부딪히고 깨지고 깨어서 돌아오길. 

그리고 머무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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