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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타누키 차차 Oct 17. 2018

불은 꽃이 되기 위해 아름답게  일했을 뿐

 어쩌다 내가 불꽃 축제를 보러 갔을까

 남자친구가 여의도 불꽃축제를 보러 가자고 했을 때 기대나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사람이 많이 몰릴 텐데, 좋은 자리를 차지해야 할 텐데, 일교차가 심해 저녁에는 추울 텐데, 돌아올 때 지하철은 제대로 탈 수 있을까. 도시락이라도 싸가야 하나. 남자친구가 불꽃은 예쁠 텐데 하나를 생각하는 동안 나는 그것을 얻기 위해 들여야 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계산하며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수치화될 수 없는 것들을 계산할 때부터 고민은 시작되고 낭만은 사라진다.


 여의도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숨은 명당인 노량진 사육신공원으로 가기로 했다. 몇 년 전에도 가본 기억이 있다. 여의도보다는 사람도 덜하고 그래서 끝나고 돌아오는 길도 수월했었다. 그곳에서는 왠지 걱정 없이 불꽃놀이를 감상할 수 있으리라. 1인용 돗자리 두 개와 담요 하나를 챙겨 불꽃놀이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쯤 공원에 도착했다.


 기억과 기대와는 달리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었고 우리는 사람들이 지나다니기 위해 임시로 터놓은 길목 바로 뒤에 간신히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래도 앉을 자리를 확보했다는 게 어디냐. 우리 뒤로 국수 자락처럼 힘없이 늘어진 사람들의 행렬을 보며 안도했다.


 순간의 만족도 잠깐, 사람들이 정말 끝을 모르고 쏟아져 들어왔다. 더 이상 들어갈 곳도 없는 상태인 게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무작정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러다가 포화상태에 이르자 급기야 지나다는 길목에 한 두 사람씩 멈춰 그대로 서 있기 시작했다. 말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인간 장벽이 만리장성처럼 세워졌고 쭈그리처럼 앉아 있던 우리 눈앞엔 수십 개의 불꽃같은 엉덩이들이 반짝였다. 축제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눈으로도 만질 수 있을 듯 가까운 엉덩이들에 휩싸인 나는 그들의 이기심에 질식해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참다못해 앞에 서 있는 만리장성들에게 뒤에 사람들 안 보이시냐. 다들 먼저 와서 자리 잡고 앉아 기다린 사람들인데 이렇게 바로 앞에 서 계시면 어떻게 보냐. 여기는 임시로 터놓은 길이지 이렇게 서서 관람하시라고 있는 곳이 아니다. 그래도 있어야겠다면 차라리 앉아주시라. 또 굳이 나서서 일일이 설명을 해가며 총대를 맺다.   


 죄송하다며 자리를 떠나는 사람, 옆 사람 눈치를 보며 나도 앉아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 들은 채도 않고 꿋꿋이 서 있는 사람. 일사불란한 엉덩이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가운데 '피융' 불꽃 하나가 올라가 하늘에 번졌다.


 "우아 우아" 사람들의 함성과 함께 전쟁이 시작되었다. 만리장성에 가려진 사람들이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앉으세요. 안 보이니까 앉으시라고요" 목청을 높여댔고 한국에 관광을 하러 온 외국인들도 예외의 대상은 될 수 없었다.

"싯 다운 싯 다운, 유 해브 투 싯 다운"


 그러는 와중에 아까보다 더 큰 불꽃이 올라 '펑'하고 터지자 서 있던 사람들과 불꽃을 가장 앞자리에서 소유하려는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우르르 앞으로 내달려갔다. 만리장성은 허물어지고 더 큰 산이 되어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그래요 제가 드디어 물감이란 걸 사보았습니다


 우리보다 일찍 와서 신문지를 깔고 앉아 있던 왼쪽 여자가 불꽃놀이가 시작된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신문지를 남겨두고 자리를 떠났다. 오른쪽에 앉아 있던 커플도 아직 끝나지 않은 축제를 뒤로하고 돗자리를 버려둔 채 사라졌다. 불꽃이 수놓은 하늘을 담겠다고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를 외치는 길쭉한 팔들이 여기저기서 솟구쳐 시야를 가렸다. 두 눈에 담기도 힘든 커다란 불꽃들이 작디작은 휴대폰 프레임 속에 그대로 갇혀버렸다. 저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러 여기까지 온 것일까.


"불이야 불이야"

 엄마 아빠와 피크닉을 나온 한 꼬마 아이가 펑펑 터지는 불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소리쳤다. 내 마음을 어떻게 알고. 정말 불이다 불이야 내 마음속엔 열불이 났다.


 그럼에도 불꽃은 정말 아름답게 빛났다. 몇 년 전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화려한 불꽃의 향연이 펼쳐졌다. 귀여운 고양이 모양부터 눈앞까지 달려오는 휘황찬란한 불꽃송이들까지. 나는 언제 열불이 났냐는 듯 아름다움에 금세 현혹되었다. 오길 잘 한 건가 아닌 건가 또 혼자서 계산을 하고 있다가 남자친구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내년에는 차라리 조금 더 서둘러서 여의도 가서 제대로 자리 잡고 보자."

 아쉬움이 가득 담긴 내 말에 남자친구는 덤덤히 대답했다.


"내년에는 안 와도 될 거 같아. 오늘 많이 봐두자."

 역시 그렇군. 속으로 무언의 동의를 했다. 확신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우리는 안 오는 쪽을 택하게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SNS에는 어제 내가 봤던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의 주인공들이 올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불꽃놀이 인증샷과 영상들이 휴대폰 속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다. '여의도 불꽃 축제 올해도 쓰레기로 몸살'이라는 기사와 함께.


 Fireworks.

 불은 꽃이 되기 위해 아름답게 일했을 뿐이고

우리 중 몇 명이나 그걸 마주할 자격이 있었는지 나는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얼마나 제대로 해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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