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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타누키 차차 Oct 06. 2018

벗겨내지 않아도 되는 말

말로 태어나지 못한 마음들은 누구에게나 있다  

 내가 이곳에 글을 쓴다는 것을 아는 친구는 그리 많지 않다. 누군가 내 글을 읽는다는 건 내 생각을, 상태를, 마음을, 삶을 읽는다는 것이기에, 뭐랄까 그리 자랑스럽지도 않은 젖가슴을 내놓고 발가벗겨지는 기분이다.     


 구독자인 한 친구가 알림을 설정해 놓고 내 글을 기다린다 말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알아온 절친임에도 나를 더 깊게 알아가는 기분이라 좋다고 하였다. 같은 기간을 알아온 또 다른 친구는 차마 읽지 못한다고 말했다. 무언가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편히 읽히지가 않는다고. 나는 그 둘의 말이 모두 이해되어 고개를 끄덕했다. 


 추석 때 본가로 가 전을 부치고선 엄마와 목욕탕엘 갔다. 뜨끈한 온탕에 들어가 적당히 몸을 불리고 나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고 이태리타월로 때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직도 내가 아이 같은지 등을 밀어달라 내밀면 등을 밀다 말고 쭉쭉 이어나가 팔이며 엉덩이를 구석구석 이태리타월로 핥는다. 물을 끼얹길래 이제 다 됐나 싶으면 한 번 더 밀어야 한다며 이미 다 벗겨낸 몸뚱이를 처음부터 다시 밀기 시작한다. 되었다고 너무 그렇게 박박 밀어도 안 좋다고 말해봤자 소용없다. 아니나 다를까 목욕을 끝내고 나와보면 군데군데 엄마의 이태리타월이 지나간 자리는 표가 나 있다. 빨갛게 부풀어 올라 옷을 입다 스치면 따끔따끔. 고슴도치를 입는다. 


 몇 달 전, 모든 걸 솔직하게 터놓지 못하는 친구와 밤새 술을 마시며 그녀를 코너로 몰아넣고 진심을 강요한 적이 있다. 이 친구는 매번 대화할 때마다 무언가 중요한 30%를 남겨두고 말을 한다는 느낌이 들어 항상 찜찜해하고 있었는데 그날은 작정을 하고 그녀를 몰아세웠다. 그녀는 끝내 자신이 다 펼쳐내지 못했던 말들을 해주었고 그제야 나는 꽉 막혀 있던 체증들이 내려가 속이 시원해졌다. 그리곤 친구에게 말했다. 너를 더 깊게 알아가는 기분이 들어 너무 기쁘다고.


 엄마의 과한 애정이 상처로 남은 등짝을 보면서 그녀가 생각났다. 상처였을까 그날 밤은 그 친구에게. 좋아하는 사람을 더 자세히 알아가고 싶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마음이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조차 말하고 싶지 않은 말들을 우리는 누구나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 나 역시 그런 마음을 달래러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나의 친구들은 그들의 그릇에 차마 꺼내 담지 못한 내 말들을 누군가는 천천히 기다려주었고, 누군가는 끝까지 지켜주고 있었다. 나는 기다리지도 지켜주지도 못하고 진심을 강요하고 마음을 강간하고 있었다. 친구라는 이름을 하고선.   


 끝까지 때를 밀어야 속이 시원한 건 미는 당사자이지 몸뚱이를 내어준 사람이 아니다. 그것이 때인지 각질로 둔갑해 피부를 지켜주는 보호막인지는 미는 사람이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벗겨내지 않아도 되는 말들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말로 태어나지 못한 마음들을, 벗겨내지 않아도 되는 말들을 적는다

나를 기다려 주고, 지켜주고, 그럼에도 곁에 있어주는 친구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이곳에 옷고름을 풀고 헤엄친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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