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결심 전 신박한 개소리
오나시는 실성에 가까운 눈물을 흘리며 우리 집으로 왔다. 붉게 말라비틀어진 눈을 하고 나타난 그녀는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들이켜고 또 한차례 눈물을 쏟았다. 맥주로 채워진 눈물의 독기는 배가 되어 내가 내뱉는 어떠한 위로도 그 도수를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아주 오래된 연인과 결정적 순간의 헤어짐. 결혼이라는 현실적인 문제 앞에 사랑은 더 이상 사랑스럽지 않았다. 스무 살에 만난 연인과 서른이 넘어 헤어지는 일은 자신의 이십 대를 송두리째 지워야 하는 일에 가깝다며 그녀는 울고 또 울었다.
스무 살의 그녀를 안 좋아하는 남자는 남자가 아니었다. 어떤 일에도 크게 화내는 일없는, 가정의 풍요 속에서 완성된 고귀한 품위 같은 것이 스무 살 그녀에게 있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상냥함. 나는 그런 그녀를 시기하고 질투하다 지친 나머지 좋아해 버리게 되었다. 다양한 윤곽으로 친구라는 관계가 그려질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된 나이 즈음이었다.
빛났던 20대의 나날들을 모조리 잃어버린 그녀가, 내가 시기하고 질투에 마지않던 그녀가 어떤 순간에도 품위를 잃지 않던 그녀가 땅끝까지 떨어진 자신의 세상을 겨우 붙잡고 울고 있었다. 앞으로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것만 같다고 이렇게까지 되어버린 자신이 스스로도 너무나 싫은데 누가 나를 사랑해 주겠냐고.
그녀는 끊임없이 쇼핑을 했다. 매일 다른 옷을 입고 매주 다른 손톱을 내밀었다. 더 나은 자신이 되겠다며 대기업으로 이직도 했다. 그 모양새가 때론 한 편의 과한 드라마를 보는 듯해 꼴 보기가 싫다가도 그것이 그녀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다시 사랑하기 위한 발버둥이라 느껴져 짠하기도 했다. 그녀의 이 과한 자기 계발의 시작엔 ‘척추교정’이 있었다.
모든 것을 바로잡기 위해 척추교정을 받고 있어
상당히 진지하게 말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뭐 이런 신박한 개소리가 다 있나 싶었다. 껄껄 웃으며 정말 올해 들은 말 중에 가장 또라이 같은데 카피라이터로서 너무 탐다는 카피라고 말했다.
엉망진창인 이 세상, 모든 것을 바로잡기 위해 척추교정부터 시작해보세요!
나는 지하철 광고에서나 나올법한 올드한 성우 톤을 흉내 내며 검지를 들고 그 대사를 그녀 앞에서 몇 번이나 반복하며 깔깔거렸다.
척추교정이 끝나갈 때쯤 결과가 몹시도 궁금한 나머지 나는 그녀와 만나자마자 그 이야기부터 꺼냈다. 척추교정을 받고 완전히 꼿꼿해진 허리로 다시 태어난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태어나서 처음 제대로 걷는 기분이야. 사람은 원래 이렇게 걸어야 하는구나 깨달았어.
그녀의 생생한 후기는 어번에도 역시 나도 한 번 받아봐야 하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진지하고 카피적이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서른둘이 되어버린 그녀는, 바로잡은 척추를 발판 삼아 똑바로 걷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사랑에 적응하며 직립해 걷는 중이다. 그렇게 울고불고 난리를 친 주제에 요즘 내 연애에 이러쿵저러쿵 충고를 서슴지 않는 것이 꼴 보기가 싫다가도 이내 또 좋아져 버린다.
연이는 눈을 뜨면 도서관으로 가 책을 읽거나 한강으로 가 달리기를 해댔다. 다른 아이들이 토익과 자격증에 목을 매며 취업에 열을 올릴 때에도 연이는 책을 읽거나 한강을 달렸다. 어느덧 어찌어찌 모두가 직장인이 된 때에도 연이는 책을 읽거나 한강을 달렸다.
시간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속절없이 흘러가 누구는 이직을 하고 누구는 승진을 하는 서른 즈음에도 연이는 책을 읽거나 한강을 달렸다.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 뭐하고 지내냐는 안부를 묻지 못했다. 너는 너를 믿고 니가 맞다고 생각하는 걸 계속해 우리처럼 살지 말고. 함부로 위로하며 희망을 심는 일도 그만두었다.
애연가인 그와 만나면 종종 함께 담배를 피곤했는데 어느 날 내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자 그는 주머니에서 껌을 꺼내 씹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설마 네 녀석 지금 금연을 하는 것이냐 물으니 그는 그렇다고 했다. 내 담뱃갑에 코를 갖다 대고 킁킁 냄새를 맡으며 껌을 씹었다.
어디 몸에 문제가 생긴 것이냐. 싫어하는 술도 담배를 맛있게 피우기 위해 마시던 녀석이 갑자기 금연이라니. 나는 걱정과 동시에 흡연 동지를 잃은 서운함에 ‘왜’라는 물음표를 계속 던져댔지만 그에게선 ‘그냥’이라는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거의 장담컨대 흡연자 중에서 ‘그냥’ 금연을 결심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기에. 담배는 평생 참는 것이지 끊는 것이 아니기에 내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말해 달라 보채니 그가 말했다.
지금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어. 담배 끊는 거 말고는.
나는 혹여 농담이라고 해도 그 말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을 그가 감당하며 살아왔을지 그려져 마음이 울컥거렸다. 그래서 웃었다. 일부러 오버를 떨어가며. 그거 참 내가 들은 개소리 중에 가장 건강한 개소리구나. 어디 한 번 해봐라 그게 그렇게 쉽게 되겠나.
다음번에 만났을 때 그는 내 담뱃갑에 배인 티코틴 냄새를 동냥하지 않았다. 껌조차 씹지 않았다. 그는 그의 의지대로 금연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올해는 그의 건강한 개소리가 일주년이 되어가는 해. 서른두 살이라는 나이가 되어서야 그는 처음으로 우리에게 취업이라는 소식을 알려왔다. 사유하길 좋아하고 글을 곧잘 쓰던 녀석의 재능을 알기에 축하와 동시에 위로의 마음이 생겼다. 그럼에도 그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금연 말고도 아직 남아있다는 건 기쁨에 마지않는 일임엔 분명했다.
첫 출근 하기 전날까지도 함께 술을 마시며 그 회사에 진짜 갈 건지 안 갈 건지 확실히 말하라고 놀리는 우리에게 그는 다음날 새벽 6시, 출근 현장에 있는 사진을 보내왔다. 키보드 두드리는 게 더 익숙할 그의 손엔 검지만 뚫린 둔탁한 파란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하얗고 가느다란 담배에서 시작한 그의 의지는 꽤나 두껍고 거친 모양새로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작심은 삼일이 되고 그 뒤엔 불안이 된다. 작정하고 달려든 일이 무작정의 과욕으로 드러날 때 실패한 자로서 무력감에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은 감히 누가 있을까. 나를 낙오시키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끝까지 이뤄내지 못한 뒤죽박죽의 나의 결심들. 그런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새해 다짐을 하지 않게 된 것이.
실패와 낙오의 꼬리표가 붙지 않을 대안적 결심을 한 번 생각해보았는데 나는 올해 머리를 길러볼 작정이다. 무언가 지속하는 힘을 기르고 싶다가 요즘 내 안의 화두인데 글이든 그림이든 일이든 사랑이든 정말 해내고 싶은 일을 지속하기 위해 머리부터 길러보자는 마음이다. 간절함으로 기른 머리가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니.
매일매일 아주 조금씩 자라는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빗어가면서 나는 나를 다독여 본다. 내일은 꼭 글을 써보자고 그림을 그려보자고 운동을 해보자고 일을 해보자고 사랑을 해보자고 어떤 것이든 이번엔 조금 더 오래 해내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