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너나 나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타누키 차차 Jun 19. 2019

이름이 어려운 이유

이름을 바꿨습니다 

 5개월. 내가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않은 채 보낸 시간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5년 동안 사귀던 전 남자친구와 헤어졌고, 내 나이는 어느새 서른둘이 되어버렸고, 하던 사업이 마침 조금 바빠져 월세 걱정을 덜게 되었고, 와중에 새로운 연애를 하게 되었고, 심지어 상대는 나보다 2살이나 어렸고, 에너지가 넘쳤고, 그 에너지를 쫓아가느라 비싼 돈을 들여 PT를 끊고 헬스를 배우다가 지금은 수영을 두 달째 배우고 있을 뿐 정말이지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글을 쓰는 일보다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내 이름으로 된 사업체에서 돈을 벌어들이는 일과 나보다 어린 남자에게 구애를 받는 일은 둘 다 꽤나 흥미로운 일인지라 책을 읽지 않아도 모든 글을 읽는 듯한 기분이었고 글을 쓰지 않아도 모든 이야기가 쓰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방해가 되었던 것은 단지 이름, 브런치의 닉네임으로 활동하던 이름이 전 남자친구와 관련이 있어 이 이름으로는 그 어떤 글도 발행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글을 쓸까 들어왔다가도 아, 맞다. 이름부터 바꿔야 하는데... 하면서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그러면서 이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왜 나는 내 이름을 결정하는 게 어려울까.


 그건 내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름은 누군가에 의해서 붙여지는 것이지 내가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태어나자마자 우리에겐 부모에게서 부여받은 이름이 붙여진다.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학창시절에는 시답지 않은 에피소드들로 친구들에 의해 별명이 붙여진다. 내가 아무리 내 별명은 슈퍼맨이야 라고 주장해봐도 친구 집에서 똥 한 번 잘못 싸면 나는 그대로 똥사개로 불리게 되는 식인 것이다. 


 이름은 불리기 위해 필요한 것이고, 나는 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불리면 좋을지 도대체가 모르겠다는 생각에 다다르자 새삼 스스로 예명을 지어 활동하는 모든 사람들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이 지은 그 이름으로 명성을 쌓는 유명인들은 더욱더 대단한 사람들이구나 깨달았다. 자신을 스스로 정의하는 것을 넘어 타인에게 인정받는 사람들이라니.  


 어찌 되었건 나는 그런 대단한 사람이 아니기에 친한 친구들이 부르는 별명으로 작가명을 바꾸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또 너무 평범해도 문제인 것이 내 별명은 '차차'인데 예상하셨다시피 성이 차 씨인 대부분의 사람들의 닉네임은 '차차'이고 이미 브런치 작가를 쳐도 수많은 차차들이 나오고 심지어 오버워치를 할 때도 심심치 않게 전국 각지의 차차들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름이라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다른 것과 구별되어  불리기 위함인데 이 이름은 도저히 다른 차차들과 나를 구별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조금은 다른 차차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여러분이 보고 있는 상단의 저 요상한 이름이 그 결과이다. 


 발행에 게으름을 피웠음에도 떠나지 않은 902명의 구독자분들에게 소소한 감사를 드려본다. 이름이 달라졌다고 내 글의 문체가 갑자기 수려해진다거나 위대한 작가들의 그것과 같아지지는 않겠지만 어쩐지 조금은 더 나 다운 글들을 써 내려갈 수 있을 것만 같은 밤이다. 





와타누키는 일본 말로 4월 1일을 의미합니다. 4월 초하루에 날씨가 따뜻해져 이불이나 옷에서 솜(와타)을 뺀다(누쿠)는 뜻으로 봄이 왔음을 알리는 말이라고 하네요. 네, 저는 4월 1일에 태어났고요, 만우절 차차는 어쩐지 거짓말쟁이처럼 느껴질 거 같아 와타누키 차차가 되었습니다. 일본 사람 이름 같지만 한국에서 태어났고 일본어는 전혀 하지 못합니다. 누군가에게 봄처럼 따뜻한 닝겐이 되면 좋겠다는 바램은 조금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