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보내는 mz 며느리

난임을 곁들인

by chacha

나는 큰집에서 뒤에서 두 번째로 어리다. 그래서 평소 명절이나 제사가 있으면 어른들은 나보다는 내 위에 친척 언니나 오빠들에게 결혼은 언제 하냐며 묻곤 했다. 내가 결혼을 하고 나서 이제는 내가 ‘타깃’이 되었는지 아이는 언제 가질 예정인지, 몇 명을 낳을 계획인지 꼬치꼬치 묻기 시작했다.

그래도 우리 쪽이야 내가 대충 받아치면 된다 하지만 시댁 쪽은 그 물음에 답하기가 여간 쉽지 않은 것 같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어머님은 나에게 흑염소를 해주셨다. 사실 어머님의 의도를 알아차렸지만 무엇보다 손발이 찬 나의 건강을 먼저 걱정하셨으리라 생각했다.


우리가 인공수정을 두 번하고 시험관으로 넘어갔을 때, 어머님에게도 이야기를 했었다. 말을 꺼내는 게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와 남편의 상황을 아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배아 이식을 기다리는 시기에 시댁에 갔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어머님은 시험관 결과가 궁금했는지 나에게 “실패했어?”라고 했다.


이식도 하기 전에 ‘실패라니‘ 그냥 어떻게 되고 있는지 물어보셨으면 웃으며 대답했을 텐데 말이다. 게다가 매일 패배감에 살고 있던 그때 나는 ‘실패’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할 때였었다. 나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에게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어머님도 그러려 했던 말이 아닌 것도 알지만 상처가 되었다고. 그도 눈물을 글썽이는 나를 보더니 “시험관 한다고 말했으니 우리만큼 기다리셨던 거야. 내가 엄마한테 좋은 소식이 생기면 바로 말할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할게.”라며 날 다독였다.


첫 번째 이식한 배아가 착상조차 하지 못하고 없어졌던 때에 시댁 앞을 지나갈 일이 생겼었다. 남편도 없이 나 혼자였다. 갑작스럽게 방문한 나를 보고 어머님은 놀란 눈치였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나를 반겨주었다. 그리고는 시험관의 ‘시’자도 꺼내지 않고 묵묵히 밥을 차려주셨다. 나는 혼자 무슨 용기가 났던 건지 모르겠지만 우울한 마음을 위로받고 싶었던 것 같다. 이번에는 내가 어머님께 먼저 시험관 얘길 꺼냈다. 이번에 잘 안 돼서 속상하다고 말하니 어머님은 그런 날 데리고 바람 쐬러 가자며 나섰다. 나는 죄송했고 고마웠다.


명절이 되면 나와 남편은 시댁의 큰집으로 향한다. 큰집 어머님과 아버님은 전형적인 가부장적 스타일이라 나와 그에게 나라를 위해 아이는 2명 이상 낳아야 한다며 작년 설날에 훈계한 것이 아직도 귀에 맴돌 정도다. 게다가 자기 아들과 며느리에게는 하지도 못하는 말을 우리한테 서슴없이 할 때마다 ‘제 생각은 다른데요?’라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다. 간혹 ‘요즘 젊은이’라는 단어에는 참지 못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뱉을 때는 그가 옆에서 잘 포장해주기도 했었다. 어른들 앞에서 ‘당돌한’ 며느리의 본심을 숨기고 싶을 땐, ‘이건 사회생활의 연장선이지.’라고 속으로 되뇌곤 했다. 이 글의 제목을 ’mz 며느리‘라고 지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번 명절이 다가오기 전에 어른들이 어떤 말씀을 하실지 미리 생각해 봤다. 1. 아직 좋은 소식 없니? 2. 애만 낳기만 하면 나라에서 돈을 이렇게나 많이 준다며? 3. 애 낳는 게 효도하는 거야. 4. 한약을 먹어보는 게 어때?


벌써 머리가 지끈하고 아파온다. ‘현명한‘ mz 며느리라면 어떻게 대답하는 게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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