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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비어 Sep 12. 2022

이탈리아 피렌체_잊을 수 없는 노을

17년 여름 여행 3일 차

로마의 일정이 끝나고 3일 차 피렌체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로마에서 불지옥을 맛보았고, 아무리 더 해도 로마보다 더 심하겠냐는 생각이었으나,,,,

피렌체는 더 더웠다.


가장 큰 문제는 숙소에 에어컨이 없었던 것이었다. 요즘 숙소는 다 에어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게 큰 오산이었다. 에어컨을 당연히 생각도 안 하고 예약했는데, 가보니 선풍기 한대가 있었다.

샤워를 하고 나와도 오분만에 땀이 나고, 새벽에 잠도 설쳤던 그 사우나 같던 피렌체,,

사진들을 보면 아직도 식은땀이 난다.


피렌체에서의 일정을 설명하자면, 오전에 로마에서 오전 버스를 타고 피렌체로 이동했다.

이동시간은 3시간 25분 정도로 가성비가 좋았다. 우리는 로마에서 처럼 피렌체와 르네상스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엄청 보고 왔지만 관광지 티켓은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쿠폴라(두오모의 돔 꼭대기)는 이미 매진이어서 갈 수가 없었고, 두 번째 날에 두오모 앞의 조토의 종탑에 올라가서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마치 콜로세움 통합권처럼 여기도 통합권으로 판매하는데, '두오모 쿠폴라+조토의 종탑+산조바니 세례당+박물관'을 볼 수 있다. 48시간 안에 한 번씩 입장이 가능하다.


피렌체의 첫날은 시간이 애매해서 메디치 도서관과 산조바니 세례당, 미켈란젤로 언덕을 보고 내려오는 길에 시뇨리아 광장을 한 바퀴 돌고 들어갔다.

피렌체에 도착한 후 작렬하는 태양빛에 다리가 풀리고, 어떻게 견뎌야 할까 하는 공포감이 생겼지만 일단 숙소부터 갔다.  

예전 첫 유럽 여행에서 설레면서 도착했던 피렌체 기차역

버스정류장은 기차역과 거의 붙어있어서 바로 기차역으로 들어가서 숙소로 향했다.


피렌체에서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좁은 골목이 많아서 그늘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숙소 쪽으로 걷다 보니 피렌체의 두오모가 보였다.

옛날 나의 첫 유럽여행 때 이 피렌체의 두오모를 보고 넋이 나갔던 기억이 났다.

짧은 시간 두오모의 웅장한 아름다움에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

우리는 근처의 트립어드바이저 2위를 하던 샌드위치 집에서 샌드위치를 사서 숙소에서 먹고 씻고 조금 쉬다가 나갔다.


숙소에서 잠깐 쉬다가 처음으로 간 곳은 관광지가 아니라 수박 그라니따가 유명한 집이었다. 사장님이 한국어도 잘했고 한국인들에게 좀 유명세를 탄 곳이었다. 이름은 Perche no

여하튼 난 그라니따라는 단어도 몰라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따라갔다. 그라니따는 우리나라의 슬러쉬랑 비슷한 음료다.

그리고 나는 천국을 맛보았다.

기본적으로 나는 슬러쉬를 싫어했다.

하지만 단언컨대 내 인생 베스트 음료를 꼽으라면 체감온도 오십도 피렌체에서 먹었던 이 가게 수박 그라니따가 아닌가 싶다. 더위도 한몫했겠지만 진짜 수박보다 수박 같은 맛이었다. 로마에서 엄청 맛있게 먹었던 수박 젤라토 보다도 더 수박스러운(?) 맛이었다.

수박 그라니따는 먹는 동안 내 오감을 지배해서 더위마저 잊게 했다.

다음에 꼭 이 수박 그라니따를 먹으러 한번 더 가고 싶다.

(참고로 그라니따를 볼로냐와 베니스에서 한 번씩 더 먹어봤는데 베니스에서 먹었던 그라니따는 그냥 초등학생 시절 학교 앞 문방구에서 오백 원주고 사 먹는 맛과 똑았던거로 보아, 이 집이 잘하긴 잘하는 집인 것 같았다.)


그라니따에 행복해진 우리는 여기저기 걸어 다니다가 메디치 가문의 메디치 도서관에 들어가게 되었다.

르네상스는 메디치 가문에 의해 시작되었다. 도서관 중간에는 오렌지 나무가 있다.

미켈란젤로를 거두었던 로렌조 메디치의 이름이 이태리어로 오렌지와 비슷해서 오렌지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도서관은 획기적으로 시민들에게도 개방이 되었던 유서 깊은 곳이었다.

멀리 두오모 꼭대기와 조토의 종탑이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두오모 쪽으로 와서 어느덧 더위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때쯤 두오모 통합권을 샀고 두오모 앞에 있는 산조 바니 세례당에 들어가서 더위를 피했다.

산조바니 세례당에는 청동문이 하나 있는데, 이 청동문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옛날 이 산조바니 세례당에 청동문 제작을 위해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라는 사람들이 경쟁을 했고 결국 승리한 기베르티가 청동문을 만들게 되는 영광을 얻었다.

당시 아르놀포 디 캄비오라는 사람의 설계로 두오모도 만들고 있었는데, 돔을 덮을 단계가 왔을 때는 지름이 너무나 커 마무리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 이 돔을 완성한 사람이 바로 청동문 경쟁에서 졌던 브루넬레스키였다. 결국 청동문 제작은 못했지만 돔을 만들게 되었다.


두오모 옆쪽으로 건물들을 잘 보면 돔을 쳐다보는 두 개의 상이 있는데 하나는 캄비오고 하나는 브루넬레스키다. 두 명 모두 자신이 만든 부분을 응시하고 있다.

본인이 만든  두오모를 보고있는 캄비오와 두오모의 돔을 보고 있는 브루넬레스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산조바니 세례당에서 더위를 피하며 기력을 회복했다.

내부의 천장은 엄청 화려했다.

사진은 좀 칙칙한데 금색의 화려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기까지 관람을 하고 우리는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향했다.

4년 전에 왔을 때는 일정상 스킵한 곳이어서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우피치 미술관을 지나 강을 건너서 언덕 베기에 올라가면 미켈란젤로 광장이 있다.


언덕 초입

사실 더위에 지치는 것을 제외하곤 언덕으로 올라가는 건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광장에 올라가니 일몰을 보려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여러이 어우러지는 피렌체의 저녁


하루 종일 더위에 엄청 지쳤지만 노을에 어우러지는 피렌체의 모습을 보니 피로가 금방 씻겨가는  같았다.

붉은색과 주황색, 보라색이 뒤섞인 하늘과 그 빛 비친 피렌체를 보니 짧은 노을의 시간이 아까울 정도였다. 언덕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도 다들 사진을 찍는다고 정신이 없었다. 모두들 같은 심정이었겠지만 넋을 놓고 바라보니 어느새 해는 금방 져버렸다.

더웠지만 아름다웠던 노을을 보고 우리는 다시 내려왔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잠깐 시뇨리아 광장을 들렀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북적이는 분위기도 좋았다.

바쁜 강아지



광장을 살짝 돌고 우리는 피렌체의 하이라이트이자 이번 이태리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한 T본 스테이크를 먹으러 갔다.

근처에서 트립어드바이저 점수를 보고 높은 편에 속하는 곳으로 향했다.

결론적으로 별로였다. 일단 티본을 먹으러 갈 곳은 절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티본 1kg을 시켰다. 티본은 본디 T자형 뼈에 안심과 등심이 붙어있고 구조상 안심이 양이 등심에 비해 적긴 하다. 그리고 티본은 조리가 만만치 않다고 알고 있었다.

안심보다 등심이 굽히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안심보다 등심을 더 구워야 둘이 알맞게 굽히고, 그렇기에 등심에 뜨거운 기름을 계속 끼얹어서 밸런스를 맞춘다고 들었다.

결론으로 우리는 T본이 아니라 ㄱ본을 받았다. 안심 쪽이 적다 못해 맛보기였다. 안심을 따로 구워서 플레이팅을 한 것이다. 게다가 굽기도 제대로 안 하고 그냥 팬에 올려놓고 시간 맞춰서 대충 뒤집은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화려한 등심 모양에 넋이 나가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가 안심이 말도 안 되게 작아서 주인한테 이게 안심이 맞냐고 물어보니 갑자기 영어를 못 알아듣고, 영어가 되는 종업원이 오더니 아무 문제없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덥고 지치고 배도 고픈데 그래 배나 채우자라는 생각으로 됐다고 하고 그냥 먹었다.


이 집이 구글 지도에서도 점수가 높은데 내 생각엔 서비스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저렇게 컴플레인 걸 때는 주인아저씨가 좀 신경질적인 반응을 하더니 나중엔 다시 와서 사글사글 서비스도 주고 했다. 여하튼 이 집 티본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적당히 짜증 났지만 여행을 망치기 싫은 마음도 있었기에 그냥 넘어갔다.


아래 사진은 시장에서 본 티본의 모습

저 정도는 돼야 적당히 붙어있는 거지;;;

이렇게 피렌체의 첫날은,

천상의 맛 수박 그라니따와 ㄱ본의 분노를 하루에 느낀,,, 음식으로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도 저녁노을에 비친 피렌체의 모습은 인상 깊게 오랫동안 생각 날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선풍기 한대가 있는 숙소에서 뒤척이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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