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리그. 새우 등 터진 나.

2부

by 김차원

내가 근무한 곳의 업무 배치는 이 정도 연차와 직급이면 이 자리에 앉는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조직 성격상 승진 순서는 연공서열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규칙과 반대로 나와 A 선배의 업무 배치가 뒤바뀌었다.


‘뭐지?! 난 승진하려면 멀었는데?’


이번 승진 차례는 동기인 A 선배와 B 선배 중 누가 먼저 되느냐의 싸움이었다. 그 판가름은 누가 업무를 더 뛰어나게 했느냐보다는 앞서 말했듯, 1순위로 승진하던 사람들이 앉던 그 자리에 누가 앉느냐로 판가름이 났다. 근데 자리 배치의 열쇠를 쥔 부서장께 B 선배가 따로 전화하여, 1순위 자리를 꿰찼다. 그 사실을 알고 둘도 없이 친했던 A와 B는 적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A도 부서장께 따로 전화하여 얼토당토않게 A가 근무하던 그 자리에 내가 앉게 되었다. 두 선배의 싸움 속에 하루아침에 등 터진 새우 신세가 되었다. 내가 그 자리에 간다고 해서 나의 승진 순위가 2등은 아닌 게 뻔하였다. 내가 A보다 한참 후배였고, 이제야 7급을 달았기에 승진하려면 기본 몇 년은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고생한 만큼의 보상이 나에게는 안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환멸을 느꼈다.


난 소수 직렬 공무원이다. 나의 직속 선배였던 A는 입버릇처럼

"우리 직렬 선배들은 후배들을 이끌어주고 아껴준 걸 본 적이 없어~"

라며 같은 직렬 선배들을 욕하곤 했다. 그런 A의 민낯을 보게 되었다.


인사이동의 뒷이야기를 들은 나는 바로 부서장께 억울함을 표현했다. 하지만 난 실수했다. 두 선배처럼 전화로든 남들이 안 보는 곳에서 말했어야 했는데, 사무실에서 나의 억울함을 대놓고 표현해 버린 거다. 다들 뒷이야기를 알고는 있었지만 그 누구도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았는데, 내가 표면 위로 끌어내 버린 거다. 결국, 화살은 엉뚱하게 나에게로 왔다.


A가 나를 따로 불러냈다.


“넌 그게 문제야. 불같은 성격. 너 그렇게 너 할 말 다 하면 결국 넌 그런 아이가 돼”


(그런 아이? 도대체 그런 아이가 뭐지?)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이 조직은 평판 무시 못 한다. 인사이동 때마다 그게 너의 꼬리표가 돼. 네가 다른 부서 가잖아? 그럼 그 부서 직원들이 네가 어떤 아이인지 메신저로 주고받아. 그게 네 평판이 돼.

그리고 내가 가야 할 자리가 어디에 정해졌니? 그런 게 어디 있냐?

너 벌써부터 승진, 승진 거리면 안 돼. 승진이 다가 아니다~.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지금 생각해 보면 A의 말과 행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삐걱삐걱 맞지 않는 퍼즐 같았다.

그때의 나는 부당함과 이상함이 안에서 뒤섞였지만 이게 무슨 감정인지 몰랐다. 한편으론 체념했다.

‘더 이상 나의 말이 닿지 않는구나’ 싶어, 하고 싶었던 저항의 말들을 안으로 삼켰다. 그래도 나보다 몇 년 더 근무한 선배의 좋은 길라잡이라 여기며, A의 입에서 나온 나를 위한다는 그 말을 다시 따르게 됐다.




하루아침에 A는 나의 전임자가 되었다.

내가 10년간 근무하며 느낀 건 우리 회사는 인수인계라는 게 따로 없다는 것이다. 전임자의 문서와 폴더를 뒤져가며 ‘아 이때 이런 걸 했구나’를 파악해야 하며,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검색한 법이 곧 업무 매뉴얼이 된다. 만약 전임자가 아주 상세하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건 감사해야 할 일이며, ‘전임자 복(福)’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내가 겪은 기준이 이곳밖에 없어 다른 곳은 어떤지, 인수인계가 원래 이런 것인진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 나에게 A는 나의 직속 선배라는 위치에서 전임자라는 절대적인 지위까지 하나 더 생겼다. 그래서 A에게 반기를 더 못 들었다. A는 내가 부서장께 난리를 쳤으니, 직원들이 퇴근한 이후에 인수인계해 준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인수인계는커녕 훈계의 말씀을 1시간이나 늘어놓고는 저녁을 먹고 온다며, 하염없이 기다리게 했다.


난 저녁도 뭣도 아무것도 안 들어갔다.

저녁 8시가 돼서야 A의 인수인계가 시작됐다. 그로부터 2시간의 짧은 인수인계를 끝으로 A는 돌아갔다. 그것이 A와 얼굴을 보며 받은 인수인계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A에게 어디까지 일했고,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는 간략히 들었다. 2시간으로 모든 일을 배운다는 건 물리적으로 부족하다. 그러니 그것을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상세한 방법은 결국 내가 부딪쳐보며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그 후 나름 아무리 방법을 다 찾아봐도 막막할 때, A에게 몇 번 전화해서 물어봤다. 그러나 그마저도 A의 어투에 조금이라도 짜증이 묻어나면 위축이 되었다. 물어보는 것 또한 쉽진 않았다.

“저 이만큼 이리저리 찾아봤는데 이 부분이 안 풀립니다.”라는 식으로 물어보지 않는다면, 날아오는 불호령은 불 보듯 뻔했다.

“넌 찾아보지도 않고 물어보냐?”라는 말과 동시에 그동안 A가 불성실하다며 흉보았던 후배들의 리스트가 떠오르며 나도 A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갈 것 같았다. 나의 유일한 돌파구가 A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A에게 잘 보여야 했다.


그것이 내가 살 방법이라 생각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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