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몸. 전조증상의 시작

4부

by 김차원

차라리 새벽에 출근하자!


지금 떠오르는 해결책은 새벽 출근. 그러나 새벽 출근을 결심할 필요도 없이, 눈은 저절로 새벽마다 떠졌다.

온종일 머릿속엔 일, 일, 일.

밥을 먹으면서도 일, 일, 일.

일 생각은 쉬지 않고 따라붙었다. 나의 밤과 새벽은 길었고, 어차피 일 생각뿐이니 일찍 출근하면 뭐라도 나아지리라 믿었다.

몸은 피곤한데도 잠은 안 오니 수면시간은 하루 평균 4시간 남짓. 어찌어찌 버티며 한 달이 흘렀다.


그사이, 전에 없던 버릇이 하나 생겼다. 숨을 깊숙이 들이마시는 일이었다. 심호흡이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크게 혼난 뒤 서러움에 꺼이꺼이 울며 숨을 넘기듯, 나도 그렇게 숨이 쉬어졌다. 쇄골이 드러나며 상체가 들릴 만큼, ‘흐읍’ 하고 폐 속 깊이 숨을 찾았다. 스트레스를 마주할 때, 답답할 때, 막막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숨이 넘어갔다.

흐-읍




주말 아침, 어김없이 일을 하기 위해 당직실로 사무실 열쇠를 가지러 갔다. 평소 알고 지내던 옆 부서 직원이 마침 당직 근무자였다. 나를 보더니 괜찮냐며 짧은 위로를 건넸다. 그 한마디에 갑자기 와르르 눈물이 터졌다.

“눈물샘이 고장 났나 봐요~♪”라고 식상하게 들리던 노랫말이 이렇게나 내 상황에 딱 들어맞을 줄이야.

한마디의 위로가 잔잔한 물결에 던져져, 눈물샘이 흘러넘치다 못해 고장이 나버렸다. 주말이라 다행이지, 복도 한복판에서 펑펑 울다 겨우 진정하고 다시 근무하러 사무실로 들어간다.

어느새 점심시간, 근처 편의점에서 바나나우유 하나에 참치마요 삼각김밥 하나를 집어 들었다. 비닐을 뜯는 내 손이 새삼 초라하게 느껴졌다. 편의점 연두색의 작은 테이블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던, 쓸쓸한 겨울의 잔상만 남는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외투도 벗지 못한 채 거실에 벌러덩 누웠다. 눌러 두었던 설움이 한꺼번에 복받쳤다. 다시 터져 나온 눈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때마침 집에 들어온 남편은 화들짝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눈물 말곤 내놓을 말이 없었다. 내가 왜 우는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으니까. 한번 터진 눈물은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나왔다.


눈물의 주말을 보내고, 또 돌아온 월요일.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머릿속은 진짜로 파업이라도 한 듯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뭐라도 하려면 문서부터 읽어야 했지만, 글이 좀처럼 읽히지 않았다. 그 사실이 나를 낯설게 만들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읽으려 해도 집중은 흩어졌고, 하얀 바탕에 검은 뭉텅이만 눈앞에 있을 뿐이다. 모니터에 띄워진 법령들을 보고 있자니, 목 안에 무언가가 콱 막힌 채 위로 치밀어 오를 듯한 메스꺼움이 밀려왔다.


문득 작년에 공황장애로 휴직했다가 복직한 동기가 떠올랐다. 동기에게 내 몸에 나타난 증상들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이런 것도 정신과에 가 보면 괜찮을까?”

동기는 자신이 겪었던 증상과 병원에 다녔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었다.


'나도 정신과에 가면 이 괴로운 마음이 사라질까. 이 낯선 머리의 멍함도 걷힐까.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래저래 고민만 하다 말았다. 정말 나아질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고, 생소한 영역 앞에서 마음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그렇게 괴로움과 고민 속에서 전조증상은 점점 심해질 뿐,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생기를 잃은 몸은 서서히 시들어 갔다. 잠을 자고 먹어야 하는 기본적인 일부터 제대로 못하니, 체력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갑작스레 큰소리가 들려왔다. 민원인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며 한 직원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순식간에 얼어붙은 사무실 공기 속에서, 민원인은 분을 못 이긴 듯 상급자를 데려오라고 요구했다. 부서장의 호출을 받고 불려 나가는 직원과 나의 눈이 때마침 마주쳤다. 사색이 된 그 직원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내 숨이 턱 막혔다.


그 순간, 나는 이곳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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