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결심, 비닐봉지 안에서 숨을 배웠다.

5부

by 김차원

알게 모르게 서서히, 나는 떠나려 했나 보다.

마침 불려 나가는 직원이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고,

공포로 질린 그 얼굴이 거울에 비친 내 모습 같았다.

두려움은 쌓이고 쌓여 나의 시야를 좁게 만들었다. 암담하기만 한 나의 미래에 지금 당장 퇴사만이 살길이었다. 이유는 이러했다.


1. 난 더는 버틸 힘이 없다. 그러니 나중이 아닌, 지금 당장 벗어나야 한다.

2. 내가 맡은 여러 업무 중 가장 큰 부분은 사업 진행이다. 사업의 착수 시기는 3월이다. 지금은 2월, 사업 진행 도중에 빠지는 건 정말 민폐다. 그전에 그만두는 게 그나마 덜 욕을 먹는 길이다.

3. 휴직은 선택지에 없다. 난 소수 직렬이라 갈 수 있는 부서도 거기서 거기니, 복직 후 결국 이 직원들을 다시 봐야 한다. ‘도망쳤다’는 그 뒷담화와 미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이곳과 인연을 끊는 것이 최선이다.

이렇게 퇴사 말고는 이 공포의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퇴사절차 문의를 위해 인사팀 직원에게 메신저를 보냈더니, 만나자고 했다.


“너의 힘든 일은 인사팀도 알고 있었단다. 너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니, 하반기 인사 때 다른 부서로 인사이동 시켜줄게. 조금만 참아라.”


‘보통 한 근무지에서 2~3년 근무한 뒤 인사발령이 나는데, 6개월 만에 다른 곳으로 보내준다고?’


인사면담 후, 딱 6개월만 더 버텨보자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버틴다는 말과 달리, 불안과 걱정으로 밤을 꼴딱 새우는 날은 늘어갔고, 속은 늘 울렁거렸다. 제대로 먹지 못해 포카리스웨트로 끼니를 때우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겨우 점심으로 죽을 먹은 날에는, 토할 것 같은 속을 달래며 일하느라 곤혹스러웠다.

사랑하는 가족과 보내던 즐거운 주말도 서서히 사라졌다. 밖을 나가야 활기를 얻는 나인데, 밖을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저 누워만 있고 싶었다. 그렇게 내 안의 버틸 힘은 바닥을 드러내다 못해, 바싹 말라버렸다.

그리고 그 변화는 근무시간에도 드러났다. 눈물이 자꾸만 삐져나오려 했고,

복도로 나가 가까스로 참다, 결국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나 병원에 가야겠어.”


“그래 가자. 이제 데리러 갈게.”


앞뒤 안 가리고 아프다고 통보한 뒤 조퇴를 해버렸다. 더는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지나고 보니, 모든 것은 얼결에 이루어진 느낌이다.

갑자기 그만둘 결심. 갑자기 정신과에 갈 결심.

극한의 상황에 다다라서야 결정은 순식간에 내려졌다.

이날이 올 것을 알고 있었는지, 나를 데리러 온 남편은 덤덤했다. 같이 들어선 병원은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처음 본 의사가 날 구원해 줄 거라는 믿음으로 들어선 진료실의 풍경은 단출했다. 의료기기나 낯선 장비는 보이지 않았고, 책상과 컴퓨터, 의자 몇 개가 전부였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의사와 내가 마주 앉았고, 의사 선생님은 말없이 휴지를 건넸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나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보여주듯, 책상 위에 놓인 갑 티슈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동안 나에게 있었던 모든 일을 쏟아냈고,


“저 원래 안이랬어요. 예전엔 글도 잘 읽었고 일도 잘했어요. 지금은 멍청이가 된 거 같아요. 이 회사를 그만두면 다 나아질 거예요!”


라며 문제의 근원은 ‘일’이라고 스스로 결론지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선생님은 말했다.


“일은 언제든 그만둘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 그만두는 건 아니에요.”


그러며 휴직을 권했다.


“휴직은 있을 수 없어요! 그 많은 사람이 나를 씹을 텐데, 어떻게 휴직해요!!”


처절한 절규를 내뱉는 순간, 형체 없는 수많은 눈초리가 나를 감싸 안았다. 이내 가쁜 호흡이 나를 압도했고, 핑- 하고 퓨즈가 나가듯 몸이 뒤로 넘어갔다.


바삐 움직이는 의사 선생님의 눈짓에 남편은 나를 받쳐 들고 진료실 밖으로 데려갔다. 황급히 간호사가 건네준 안정제를 먹이고, 비닐봉지를 입에 씌웠다. 비닐 안에서 간신히 숨을 들이마셨다.

펄럭펄럭 가쁘게 움직이는 비닐.

쪼그라들었다 팽팽해지기를 몇 번 반복한 뒤, 겨우 비닐이 잠잠해졌다.


그제야 내가 있는 공간을 둘러보니, 진료를 받으려고 대기 중인 여러 사람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힐끔거리지도, 의식하지도 않았다. 그 사실이 얼마나 고맙고 편안했는지, 그 자체로 위로가 되었다.

‘이 안에서 나는 다르지 않아.
난 이상하지 않아.’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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