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쳤다고 생각했지만 무너진 것이었다

7부

by 김차원

이상함을 느껴 스스로 찾아간 정신과.

그곳에서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서를 받고 질병 휴직까지 했음에도, 나는 그저 스트레스로 지쳤을 뿐이라고 여겼다. 솔직히 휴직을 위해 병원을 잠시 이용했다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의사의 다음 말은 그 모든 생각을 단번에 뒤집었다.


“약 용량을 늘려야겠네요.”


이 한마디는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초진 때 받은 약조차 휴직을 위한 형식적인 과정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용량을 늘린다는 말은, 정말로 내가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는 선고처럼 다가왔다.


“약 용량을 늘려야겠네요.”라는 말은 나에게 “너 정말 아픈 거 맞아”로 들렸다.


몸과 마음은 처음부터 아프다고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난 무시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다 보니 내가 어떤 상태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꽤 충격적이었는지 과호흡이 다시 찾아왔다. 이제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단순 숨을 들이마시는 거에 그치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과호흡으로 이어졌다. 질식해 죽을 것처럼 모든 숨을 끌어와 천장을 찍은 후 서서히 진정되었다.


이런 와중에 회사에서 인수인계하러 나오라는 연락이 왔다. 후임자는 다시 A가 되었다고 한다. 전화를 끊고 나서부터 공포가 물밀듯 밀려왔다. ‘직원들은 날 보면 뭐라 할까, A는 어떻게 다시 마주해야 하나’ 등등.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꼭꼭 숨긴 채 사무실로 들어갔다.

내가 인수인계를 받았던 시간으로 되돌아가듯, 퇴근 후 저녁 이번에는 내가 A에게 업무를 넘겼다. 지난 두 달간의 진행 상황과 파일 위치를 전달했다. A는 덤덤히 사무적으로 대할 뿐, 더도 덜도 없이 필요한 말만 나누었다. 걱정과 달리 막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버려두고 왔던 나의 짐을 그제야 챙긴 뒤, 사무실과 이별했다.




‘드디어 끝났다. 더는 사무실에서 나를 다시 부를 일은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한동안은 핸드폰이 울릴까 봐 핸드폰이라는 물건 자체가 무서웠다. 밖에 나가면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 봐도 무서웠고, 두려운 것들이 하나씩 늘어나면서 방 안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특히나 나의 밤은 공포였다. 주변이 깜깜해지고 침대 위 몸져누워있자니, 그전에는 몰랐던 ‘천장과 베개 사이’를 알게 되었다. (당시 위로가 되었던 노래_파라솔의 베개와 천장을 자주 들었다.)


나의 천장과 베개 사이에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부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까지 걱정, 후회, 화남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떠다녔다. 아무리 자세를 고쳐봐도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내 귀에 대고 쉼 없이 떠드는 것처럼.


새롭게 처방받은 약을 먹고 나면 날 따라다니던 소리는 잠잠해지고 눈이 스르륵 감겼다. 멍~한 느낌 속에서 수면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억지로 잠을 청하고, 억지로라도 조금씩 음식을 입에 넣었다. 그러자 서서히 몸에 힘이 붙기 시작했다. 일어나서 스스로 밥을 챙겨 먹을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밥을 먹고 난 식기는 그대로 싱크대에 쌓아 두었다. 설거지를 할 수가 없었다. 식기 건조대에 꽂힌 접시를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압박감과 함께 구역감이 올라와 다시 침대에 누워야 했다.


함께 사는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몸은 멀쩡해 보이는데 내가 먹은 밥그릇조차 씻지도 않고 덩그러니 갖다 두니 염치가 없었다. 그렇지만 집안일을 못하겠다.


난 무능력한 사람이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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