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부
나은 듯 아닌 듯 아리송한,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아침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세상이 노랗게 변하며 어지러움과 구토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이러다 죽는 건 아닐까, 119를 불러야 하나’
몸까지 저릿해져 황급히 다시 침대에 몸을 눕혔다. 헐떡이는 거친 숨과 함께 진땀을 흘렸다. 그렇게 십 분쯤 지났을까, 거짓말처럼 괜찮아졌다. 처음 겪는 죽음의 공포였다. 그날의 강렬한 경험은, 이후의 나를 옴짝달싹 못 하게 옥죄었다. 잠에서 깨어 눈은 떴지만 ‘또 그러면 어쩌지...’라는 짐작으로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미련하게 다리를 꼰 채, 몇 시간이고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며칠을 그렇게 보내고 나서야, 그때의 증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침대 밖을 벗어나는 시간을 오후에서 오전으로 조금씩 앞당길 수 있었다.
‘혼란하다 혼란해. 무슨 병이 생긴 걸 거야’
결국, 정신과가 아닌 종합병원을 찾아 이것저것 건강검진을 받았지만, 아주 건강하다는 결과지가 되돌아왔다. 그때의 감각은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았지만, 꾀병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한 날이 찾아왔다. 모든 것이 의문스러웠다.
약을 처방받아야 해서 정신과는 이제 주기적으로 다녔다. 그간 있었던 일을 말하며
“선생님, 제 몸에 무슨 병이 걸린 거 같아요.”
“그건 아니에요. 그동안 그만큼 힘들었다는 거예요.”
그 말에 안심이 되면서도 의심은 계속되긴 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비로소 정신과를 다녀야만 하는 내 마음의 병을 인정하게 되었다.
“오빠, 나 내가 아프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어. 내가 못하던 일이었어.”
남편과 서로를 안은 채 그렇게 털어놓았다. 나의 상태를, 나의 한계를, 내가 품고 있던 욕심을…. 그동안 벌어졌던 모든 시간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마음이 편안해지며, 나를 괴롭히던 생각들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마침내, 낫기 위한 노력을 시작할 수 있었다.
제일 먼저 시도한 건 침대에서 벗어나 커튼을 모두 걷어내는 일이었다. 서서히 몸의 통증이 옅어지자, 뜻밖에 주어진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오히려 막막했다. 뭐라도 해보려 인터넷을 켰지만, 여전히 머리는 멍했고 글은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건 아직 이른가 보네. 일단 아무것도 하지 말자” 그게 내가 할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인스타나 유튜브만 보고 있다니, 난 쓸모없어”라며 자책하기도 했다.
정신과에서는 “회사 근처로는 가지 마시고, 바깥에 한번 나가보세요.”라고 권했다.
집 주변을 천천히 걸어보았다. 그때 오디오북을 들으며, 글자 하나하나에 집중해 머릿속을 떠다니던 생각들을 잠시 밀어내었다. 오디오북은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당시 우연히 추천받은 델리아 오언스의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들었다.
이야기 속 주인공의 삶은 나보다 훨씬 버거워 보였다.
‘그래, 너도 살아가고 있잖아. 나보다 더 힘든데도’
속으로 그렇게 되뇌며 나를 위로했다. 무엇보다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니, 오디오북의 속도보다 뒷이야기를 빨리 알고 싶었다. 글을 읽지 못하던 내가, 다시 글을 읽고 싶어 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이야기의 마지막 챕터는 종이책으로 알게 되었다.
생각의 고리를 끊으며 일상의 루틴을 지키려 부단히 애썼다. 아침에는 무조건 일어나기, 햇빛 맞기. 끼니 챙겨 먹기. 너무 늦지 않게 잠들기.
‘이제는 안다. 잘 먹고 잘 자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사소해 보이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깨달았다.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긴 했지만, 이 걱정과 불안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는 여전히 숙제였다. 지금까지 내가 시도한 건 괴로운 생각이 떠오르면 다른 곳으로 환기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피할 순 없었다. 정신과 전문의들의 책들을 찾아 읽어 봤다.
‘『인간실격』의 요조가 파괴적인 욕망들을 그림이나 글로 표현함으로써 방출시킬 수 있었다면, 즉 상징화하고 승화할 수 있었다면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두려움으로부터 어느 정도는 해방될 수 있었을 것이다.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김혜남 저)’
그 외 다른 책에서도 걱정과 감정을 글로 써보고 정리해 보라고 공통적으로 얘기했다.
나도 한번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