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부
병원을 나서고 엄마가 제일 먼저 생각났다. ‘엄마의 품이 그리워서, 위로받고 싶어서?’
아니다.
항상 별 탈 없이 모범생으로 자라온 자랑스러운 공무원 딸이 엄마에게 실망을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제일 잘난 줄 아는 엄마는 입버릇처럼
"우리 딸은 남들에게 지는 성격이 아니지? 그러니 우리 딸은 뭐든 잘하지~!"
그 인정이 싫진 않았다.
"응! 엄마 내가 자랑스럽지? 나 잘했지?!"
그러나 10년간 나름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한 직장에서 해낼 수 없는 일이 생기니, 사랑하는 엄마의 시선이 서서히 숨 막혔다. 내 상황을 얘기해 봤자 '다들 힘든데 어쩌겠니, 그래도 해야지' 라며 이해받지 못할 생각에, 엄마와의 통화도 자연스레 뜸해졌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하기로 해서야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실은 나 힘들었어. 나 더는 못해. 공무원 때려치울 거야”
그동안 잘 지낸 줄 알았던 딸이, 대뜸 나타나서 이렇게 통보하니 엄마도 당황했다. 같이 간 남편에게서 병원 다녀온 얘기까지 들은 엄마는 의사 선생님 말대로 휴직하자고 사정을 하며 나를 돌려보냈다.
다음날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출근했고, 곧바로 팀장에게 면담을 신청해 어려움을 토로하였다. 그러나 돌아온 팀장의 말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하였다.
“A가 너를 이 자리로 추천하길래 잘할 줄 알았는데….
그리고 네가 걱정으로 여기는 법 개정은 따르지 않아도 될 거야, 현실적으로 시행하지 못할걸~, 정 여기서 일하지 못하겠으면 바로 다른 팀으로 옮겨줄게”
지난번 인수인계에서 A는 나에게, 팀장이 나를 그 자리로 데려갔다고 말했었다.
A든 팀장이든 서로의 탓을 하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또한, 팀장은 여전히 태평천하, 일할 의지는 없어 보였다.
‘이제야 다른 팀으로 옮겨주겠다니, 이렇게 쉽게 바꿀 수 있는 거면, 애초에 데려가지나 말지. 아니면 내가 처음 억울함을 표현했을 때라도 반영해 주지…. 이제서야 참나
일단 휴직하고 천천히 생각하자’
지난번 받았던 수백 개의 질문이 담긴 검사지를 들고 병원을 다시 찾았고, 6개월의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서를 발급받았다. 휴직 처리는 일사천리였다. 1차로, 인사팀장과의 면담에서는 회유의 말 끝에 그래도 휴직할 의사가 있는지를 물었다. 이후 부서장의 확인 도장을 받은 휴직 신청서를 제출하자 곧바로 처리가 끝났다.
야반도주하듯 직원들의 눈을 피해, 짐도 안 챙기고 건물을 떠났다.
‘아이 키우느라 바쁘긴 해도, 일을 쉬면 행복하겠지?!’라는 상상으로 그려오던 육아휴직이 아닌, 갑자기 질병휴직이 내 인생에 나타나다니!
예상과 달리 휴직자의 신분은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내가 생각한 최악의 선택인 휴직을 해버렸으니, 최악의 생각들이 끊임없이 떠다녔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것이라는 확신, 세상 사람들이 다 미워하고 있다는 착각, 그리고 해내지 못했다는 패배감. 게다가 멀쩡하지 않은 몸뚱이까지.
병원에선 휴직진단서만 준 것이 아니라 약도 주었다. 그 안에는 안내문도 함께 들어 있었다. 대략 '복용 후 초반엔 이런저런 증상이 있을 수 있으나, 임의로 약을 끊지 말고 의사와 상담해 정해진 용량을 복용하라'는 내용이었다.
정말 약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나를 공포 속에 가둬 놓아서인지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몸을 일으키면 어지러웠고, 입술은 바짝바짝 말랐다. 손발에 땀이 흥건하여 신고 있는 양말이 다 젖을 정도였다. 내가 양치를 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 정신이 어디 나간 것 같았다. 엄마와 남편이 약을 먹으려면 밥을 먹어야 한다며,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사과를 갈아오기도 하고 죽을 주기도 하였지만, 구역감이 들어 겨우 뜨나 마나 했다.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 나의 몸상태를 얘기했다.
“잠은 좀 잤어요?”
“너무 졸리는데 잠이 안 와요. 생각이 끊이지 않아요.”
“약용량을 늘려야겠네요.”
“예?”
나 진짜 어디 아픈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