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안 그래도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으로 스트레스가 쌓였는데 거기다 새로운 난제까지 더해졌다.
업무 관련 법이 개정되어 곧 시행 예정이라는 문서를 보았다. 개정될 법을 보니, 기존에 하던 모든 방식을 바꿔야 했다. 그렇다면 법을 개정하기 전, 이에 대한 문의가 있었거나 세부 지침이 내려왔을 것이다. 하지만 바꾸라는 결과론적 법문만 있을 뿐 어떤 방식으로 뒤집어엎으라는 내용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법이 하루아침에 개정되진 않았을 거니 A도 팀장도 다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그러나 시행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니 A가 마침 떠난 거였다. 참 이것도 공교롭다. 어쩜 때마침 이때. 하하
‘새롭게 시행해야 하는 문제에 있어선 이제 전임자도 없다. 그래도 팀장은 새로 안 바뀌었으니, 팀장님을 믿고 같이 해보자.’
하지만 이거 웬걸. 팀장은 낙관론자인지 회피론자인지 이 문제에 대하여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설마 이걸 바꾸라 하겠어. 아무리 법이 그래도 현실적으로 못 하지 않을까? 별일 없을 거야”
‘당장에 법은 「이때부터 시행하시오」 이렇게 나왔는데 진짜 안 해도 되는 건가? 이 내용 부서장한테 보고는 된 건가? 설마 보고도 안 한 건 아니겠지?’
설마가 아니다. 부서장은 몰랐다. 법이 개정됐는데도 윗사람들에게 보고가 들어간 건 없었다. 그동안 A와 팀장은 법이 바뀌기까지 뭘 했던 걸까.
‘진짜 아무 일도 안 일어나겠지!’ 싶은 거였을까.
아니면 ‘이거 진짜 무슨 일 일어나겠는데?’ 싶어 도망간 걸까.
온갖 의심과 불만이 뒤엉켜 걱정으로 다가왔다. 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젠 내가 담당자인데.
나 혼자서 모든 무게를 짊어진 꼴이다. 혼자 바위를 낑낑 옮기는 시지프스가 된 느낌이었다.
우스갯소리로 남들에게 소위 ‘또라이’ 소리를 들으면 일은 편하다고 직원들끼리 농담한다. 무능하고 이상한 사람일수록 일을 안 시키니 말이다. 그 사람한테 일을 맡기면 엉망이 되니, 일하는 사람만 일하는 곳이 내가 다니는 직장이다.
왜 나에겐 주어진 일이 ‘문제’로 다가왔을까. 그냥 나도 그러려니 넘기면 됐을걸. 근데 내가 넘길 수 있었을까?
아니. 난 안 됐다.
일이 사람 성격 따라간다고, 나에게도 언제나 일이 따라왔다. 내가 그렇게 사명감이 있는 사람이라곤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피해 끼치는 사람이 되기 싫어 열심히 일했다.
그런 나에게 A가 남기고 간 ‘너의 평판이 꼬리표처럼 따라간다’라는 말이 뇌리에 박혀버렸다. A의 말에 따르면 이미 내 꼬리표에 ‘할 말 다 하는 욱하는 아이’라는 흠집이 생겨버린 것이다. 거기에 더해 같이 일하게 된 C에 대한 소문도 들렸다. 결과적으로 C가 나에게 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 혼자 그 소문에 두려워 나 자신을 갉아먹었다.
소문은 이러했다. C는 한 업무만 한 지 10년 이상이 된 무기계약근로자였다. C는 오래 일한 만큼 지식도 많고, 일이 바쁠 때는 공무원 못지않게 밤 11시, 12시까지 남아서 일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베테랑 C에게는 무서운 역할이 있었는데 공무원의 초과시간 감시자였다. 같이 일하는 공무원의 초과 근무시간이 C의 기준에 못 미치거나 조금이라도 불성실함을 느끼면 C는 바로 파업했다. 담당 공무원은 C의 기준에 맞춰 움직여야 했다. C의 업무보조 없이 담당자 혼자 하기엔 업무량이 많아, 결국 전임자들이 굴복해 버렸다는 이야기는 전설처럼 떠돌았다.
A조차도 2시간의 짧은 인수인계 중 남기고 간 말이 “C와 잘 지내야 한다. 그래야 너의 일이 수월할 것이야”였다.
결국, 모든 것이 혼합되어 나의 힘듦은 안으로만 파고들 뿐, 겉으론 철저히 숨겼다. 다시 성실히 일하는 모습으로 평판도 회복해야 했고, C의 기대에도 부응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렸다.
그런데도 하나 걸리는 건 야근. 야근은 날 너무 불편하게 했다.
난 지금 임신을 해야 하는 몸인데, 하…. 부부가 같이 살아도 같이 사는 게 아닌 집만 공유하는 이 상황이 맞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