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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 Aug 30. 2024

17세 마에스트라의 긍정적 변화와 성장

예술영화 <디베르티멘토>

예술영화 <디베르티멘토> 포스터와 영상물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한국은 금메달 13개, 종합 8위로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어 경기 내내 많은 이슈를 낳았다. 그런데 이번 파리올림픽 개막식에서 다문화 공연을 펼친 ‘디베르티멘토’라는 오케스트라가 있다. 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는 본래 가볍고 유쾌한 성격의 18세기 음악 양식을 뜻하는 단어로, 실화 기반의 이 영화에서는 오케스트라 이름으로 쓰인다. 이 영화는 바로 그 디베르티멘토를 만든 이들의 색다른 교향곡이다. 사회적 약자 출신의 자히아 지우아니가 모든 약점을 극복하고 꿈을 거머지는 스토리이기도 하다. 마치 메달을 목에 걸고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각국 올림픽의 선수들처럼 말이다.


이 이야기는 파리 교외 스탱에 거주하는 아랍권 이민자 가정의 자매가 파리 시내의 명문 음악학교에 진학하면서 벌어진다. 이란성 쌍둥이 중 한 명인 17세의 자히아는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볼레로’ 연주를 볼 때부터의 꿈을 간직한 열정적인 지휘자이다. 그녀의 뒤에는 훌륭한 부모님과 돈독한 자매가 있었는데, 그들이 없었더라면 꿈을 이루기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두 자매를 학교에 데려다주시며 세 시간 전이라는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지각 아니면 출석이라며 차가 막혀 늦는 것보다 낫다고 자매를 주의시킨다. 그 당시 시대적 배경은 교외의 폭동과 시위가 잦던 때로, 아버지는 자매를 염려하여 매일 바래다 줄 정도로 교육에 열의가 있었다. 또한 교외에서 자랐음에도 명문 학생들에게 지지 않고 실력을 뽐낼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천재라서라기보다는 매 순간 고민거리를 나누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지해 주었던 자매 페투마와의 우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단원들 간의 화합을 도모하고 어려운 상황을 하나둘 극복해 나가는 그녀는 마에스트로 첼리비다케의 인정과 가르침을 받으며 점차 실력을 쌓아가게 된다. 지휘에 들어가기 전 팀원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으면 지휘자의 자격조차 없다는 그는 예의를 매우 중요시하는 인물이다. “과거의 작곡가들과 소통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곡의 느낌을 읽죠?” 이와 비슷한 질문을 했고 마에스트로는 그 질문에 매우 흡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히아가 단순한 지휘가 아니라 곡 자체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흔적이기 때문이다. 이후 마에스트로의 개인 연습실에서 가르침을 받게 된 자히아는 때로는 엄격하고 때로는 누구보다 따듯한 그와 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 아랍어를 할 줄 아는 그에게 도리어 모국어를 배우기도 하면서.


그녀의 하나뿐인 오케스트라 디베르티멘토는 고전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명문고 학생들이 동굴에 자발적으로 모여 <월든>을 노래하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우선 자발적으로 모였고, 뚜렷한 꿈이 있으며, 좋은 리더가 있다. 처음 전학 왔을 때 시골 출신이라며 무시하던 동료들은 자히아가 노력하는 모습에 점차 마음의 문을 열고 그녀를 일원으로 받아주게 된다. 심지어 스탱에서 공연 연습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기꺼이 그곳에서 모여 연습하는 열정을 보인다. 영화 속에서는 비올라, 바이올린, 첼로 등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톡톡 튀는 개성의 참여자들이 부각되기도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하나둘 나타나는 동료들의 모습은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작위적인 듯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한국에 없는 프랑스의 문화가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파리는 길거리 곳곳에서 -지하철역이나 몽마르트르 등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클래식 공연을 하는 연주자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문화적 똘레랑스를 지닌 프랑스의 문화적 깊이를 느낄 수 있었던 좋은 영화이다.


이 영화는 남녀차별과 사회적 갈등이 분출되는 80년대에 여성 지휘자라는 쉽지 않은 시도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실존 인물 자히아 지오아니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실제로 여성 지휘자는 4% 정도라고 하니 그 벽을 뚫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다. 그저 운이 좋고 주변 인물을 잘 만나 성공한 케이스로 폄하될 수도 있겠지만, 결론만 보고 누군가의 성공을 부러워하는 사이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고뇌하고 힘겨워한 과정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들의 끈기와 인내, 그리고 노력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꿈을 지니고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천재 예술가들을 보면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곤 한다.


영화 리뷰를 쓰며 양궁 64강에서 본 차드 마다예 선수가 떠올랐다. 그는 독학으로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자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해 열악한 상황에서 겨우 1점을 쏘았지만 많은 응원을 받았다. 그의 귀감이 되는 도전정신에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의 성장에 기대를 해본다. 첼리비다케가 사사한 지우아니처럼 원석 같은 예체능인들이 좋은 지도자를 만나 보석처럼 빛을 내는 사례가 더욱 많이 들려오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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