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를 익히는 것은 사실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글은 배우려고만 하면 어떻게든 배울 수 있다고. 그런데 학교에서는 한글도 중요하지만 이제 영어라는 복병이 있다는 걸 간과했다. 더불어 수학이라는 거대한 쓰나미도.
한글이 안되니 파닉스부터가 문제였다. 놀이처럼 시작하는 튼튼 영어로 쉽게 시작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냥 발음은 엉터리인 동요를 흥얼거릴 뿐이고. 윤선생 영어에 보내서 파닉스를 시작했으나 그마저도 쉽지 않은 길이었다. 정철어학원과 유 앤 아이 어학원을 끝으로 길고 길었던 파닉스를 끝내는가 싶었는데 아직도 헷갈리는 발음들이 있는 거 보면 영어는 길게 보고 가야 하는 과목인가 보다. 나중에는 집에서 내가 책으로 한 장 한 장 같이 풀다가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영어 과외를 시켰는데 중간고사, 기말고사 위주의 교육을 따라갈 리 없는 내 딸은 금방 짜증을 내며 급기야 포기선언을 하게 됐다. 하지만 내가 포기하고 싶다고 포기할 수 있는 과목인가 하면 그것도 아닌 게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시작한 아이들은 대학까지 토익토플의 질척거림 속에 허우적 대는 게 작금의 영어교육의 현실이 아닌가.
수학은 그나마도 연산 위주로 꾸준히 시작한 게 도움이 되었다. 별다른 설명보다 푸는 방법을 하나하나 알려주고 그다음은 혼자서도 한 장 한 장 풀 수 있도록 해주었더니 아침에 일어나 별다른 저항(?) 없이 학교 가기 전 루틴이 되었다. 되도록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반복연산을 많이 했고 교과서 순서보다는 차근차근 본인의 속도에 맞춰 길게 보고 가기로 했다. 마음을 내려놓고 학원에 보내봤지만 일주일 만에 아이의 입에서 안 가겠다는 소리가 나왔다. 다녀온 당일에 안 가겠다 할 줄 알았더니 꽤 길게 버틴 셈. 역시 친구들이 있어서 싫어도 참고 있었던 듯. 이즈음의 친구들은 아직 친구라는 개념보다는 같이 놀 때 코드가 맞는 아이들을 친구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베프의 개념과는 조금 다른. 그래서 학년이 올라갈수록 내 딸은 베프에 대한 목마름이 깊었다. 결국 그 베프는 대학을 가서야 만나게 되었고 그 베프를 만드는 과정도 험난하기 이를 데 없었다.
과학이나 사회는 필기가 문제였다. 외우는 건 쉽게 쉽게 외워서 오히려 국영수보다 접근성이 좋았는데 이때만 해도 시청각 교육이나 태블릿이 흔치는 않아서 칠판에 쓰면서 설명하시는 선생님들이 대부분이셨다.
중학교 때 너무 감사했던 점은 역시 선생님들 이시다. 내 딸이 난독증, 그러니까 다른 말로는 학습장애를 겪고 있다는 걸 아시고 그 학습장애가 말 그대로 학습에 약간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신 각 과목 선생님들이 내 딸을 배려해 칠판수업 대신 각 교실에 있는 커다란 교육용 TV에 PPT를 띄워놓고 수업을 하셨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칠판에 판서된 내용을 적지는 않아도 나름 중요하다 생각하는 부분은 필기도 하고 형광펜 작업도 하면서 수업을 했다. 내 딸이 제일 학교 가기 좋아하던 시절이었다. 선생님들의 배려에 학습진보상은 물론 50점을 밑돌던 성적들이 7~80점 대로 진입한 것은 순전히 선생님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선생님들의 노력을 내 딸도 알고 있었는지 가장 열심히 공부하던 때였기도 하고.
학습장애 판정을 받으면 교육청에 특수반 신청을 할 수가 있다. 갈 수 있는 학교는 특수학급이 있는 곳으로만 가야 해서 한정적이지만 일단 특수학급이 있는 학교는 시설이나 선생님들이 특수학급 아이들을 우선 배려해서 학교 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다. 일반 학급의 담임선생님과 특수반 담임선생님, 그리고 상담선생님까지 아이에게 3명의 선생님이 붙게 되는데 내 딸은 모든 선생님을 좋아했다. 그리고 특수반 선생님과 상담선생님께 고민 상담을 하고 공부에 대한 어려움은 일반학급 선생님의 도움을 받는 식으로 영리하게 학교생활을 했다. 언젠가 친하다 생각한 친구에게 언어적 폭력과 소위 말하는 삥뜯김을 당해 학폭위가 열릴 뻔했을 때에도 내 딸은 선생님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 내가 봐도 현명하게 대처를 해서 이후로 선생님들께서 엄마인 나보다도 더 학교 생활에 관심을 가져주셨다. 나는 말 그대로 엄마의 역할에만 충실하면 되었다. 아이를 감싸주고 보듬어주고 사랑으로 귀 기울여 들어주면 아이는 다시 힘을 얻고 씩씩하게 학교생활을 했다.
특수학급을 신청하게 되면 학교 수업시간 중에 국영수 같은 주요 과목 시간에는 따로 특수학급 반에서 다른 수업을 듣게 되는데 이게 아이 입장에서는 퍽 자존심 상했던 것 같다. 특수학급 반에는 지체장애 학생이 더 많이 있어서 거기서 수업을 듣게 되면서 일반 학급 아이들이 색안경을 끼고 내 아이를 보게 되는 것이다. 급기야 어느 날 특수학급에서 수업받는 걸 거부하게 되었고 담입선생님께서도 학습장애라고는 하지만 성적이 크게 밑돌지 않는 내 딸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특수반 선생님과 상담선생님과 아이가 함께 상의해 일반학급에서만 수업을 받게 되었다. 일반 학급이라고 해서 멀쩡한 아이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ADHD가 너무 심해 폭력적인 성향 때문에 아이들에게 위협이 되는 아이가 있어 분리하게 되었던 사건부터 시작해서 보이스 틱이 너무 심해 수업시간마다 욕을 입에 달고 다닌 아이도 있었다. 이렇게 각양각색의 아이들 틈에서 내 딸의 난독증은 어찌 보면 미미한 학습장애로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사실 지금에서야 이야기지만 학습장애라고는 해도 좋아하는 장르의 책은 밤을 새워서라도 읽고야 마는 내 딸을 과연 난독증이라고 해야 할지 의문이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