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생활의 활력소, 비타민이라고 하면 역시 친구일 것이다. 흔히들 사회에 나와 만나는 친구들 보다는 어릴 적 만난 소위 말하는 XX친구들이 더 편하고 속엣말도 스스럼없이 한다고들 하던데
뭐, 친구를 잘 못 사귀는 극 I에 A형까지 갖춘 나에게는 조금 먼 이야기이다.
이런 나와는 반대로 어릴 적엔 친구들보다 엄마를 더 좋아하던 내 딸도 언젠가부터 친구가 더 중요해진 시기가 시작되었다. 친구들을 따라 아이돌을 좋아하기도 하고, 야구장에 우르르 몰려가 응원도 하고, 함께 모르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는 내 딸은 집안이 편한 나와는 분명 다르다.
내 딸의 친구들은 모두 대학교 때 만난 친구들이다. 초, 중, 고를 거쳐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본인만의 기준으로 만난 친구들. 먼저 다가와 준 고마운 친구들도 있고, 어쩌다 보니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손 내밀어 친구가 되기도 하고, 친구의 친구가 절친이 되기도 했다. 귀하지 않은 인연은 없으나 여자아이들 특유의 시기질투 때문에 인간관계의 바닥을 일찍 깨달은 내 딸이다.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하는 뒷담을 건너서 들었을 때의 당황스러움은 애교 수준이고, 올리X영에서 같이 아이쇼핑을 하다가 갖고 싶은 물건을 들고 당당하게 계산해 달라는 친구. 급식 줄 서는데 뒤에서 자꾸 욕하면서 툭툭 치는 아이 때문에 한동안 점심도 먹지 않던 내 딸. 학교 앞 문구점 사장님이 유독 예뻐하셔서 할인도 많이 해주시고 선물도 간혹 받아오는데 그게 눈에 가시였는지 문구점 사장님을 성추행범으로 몰아 결국 경찰까지 불러오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 때문에 내 마음은 늘 조마조마함의 연속이었다.
내 딸은 외동으로 자라 사람이 늘 그리운 아이인데 그런 딸이 아이들 틈에 끼지 못하고 늘 겉도는 걸 지켜만 봐야 하는 내 맘도 타들어갔다. 학원을 접고 소소하게 공부방을 시작했을 때는 내 딸에게도 든든한 언니, 오빠, 친구들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뿐 공부방 선생님 "딸"이 공부를 못한다는 걸 알게 된 아이들은 내 딸을 얕잡아 보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수록 다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으니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내 딸이 곱게 보일리 없었다. 늘 엄마 곁에서 맴돌며 친구들이 공부하는 걸 구경만 하던 그 시절이 그래도 내 딸에겐 좋았던 추억이었는지 가끔 누워 자다가 얘기하기도 한다. 시간이 흘러서 좋은 친구들이 생겨난 지금도 종종 스쳐 지나간 안 좋았던 기억들의 친구들을 소환하기도 하는 여유가 생겼다.
내 딸이 친구를 사귈 때 안 좋은 버릇은 물질적인 것들을 많이 베푼다는 것이다. 친구들에게 간식을 쏜다든가, 가지고 있던 예쁜 액세서리를 준다거나, 친구들이 원하는 것들을 사서 준다는 식의 전형적인 왕따의 친구 사귀기. 그렇게 사귄 친구들이 오래 갈리 없었고 먹을 때만, 선물을 줄 때만, 계산을 대신해 줄 때만 옆에 있는 친구가 되어갔다. 아무리 말리고 타일러봐도 잠깐뿐 "호구" 아닌 "호구"가 된 내 딸은 큰 사건을 계기로 "호구친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위에서 말했던 올리X영 사건이다.
여느 때와 같이 친구들을 만난다고 해서 오랜만에 시험 끝나고 노는 거라고 두둑하게 용돈도 쥐어준 참이었다. 평소 땐 돈을 거의 안 쓰는데 친구들과 한 번씩 놀 때는 5만 원에서 10만 원 정도의 용돈을 쓰는데 그래도 그 나이 때 아이들 치고는 적게 쓰는 편이라며 안일하게 생각했다.
친구들과 놀다가 우연찮게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 친구들은 미리 다 계획을 짜고 있었고 올리X영에 들어간 내 딸도 소소하게 이것저것 집어 들고 계산대 앞에 섰을 때 한 친구가 갑자기 고데기 하나를 들고 오더란다. 계산대 앞에서 자기 돈이 모자라니 빨리 계산하라는 친구와 결제 어떻게 할 거냐 재촉하는 직원, 그리고 길게 늘어선 계산 줄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하던 순진한 내 딸은 뿌리치지 못하고 그만 결제를 다 해주고 온 것이다. 금액은 크지 않지만 어쨌거나 어린 친구들이 사기엔 부담스러운 고데기 가격인데 그걸 내 딸에게 억지로 계산하게 만든 상황을 영악스럽게 만든 아이들이 어떤 의미에선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직 어린아이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심리적 압박을 적절하게 사용한 그 아이들이. 아마 그 애들도 어디선가 보고 배운 것이겠지. 물론 가까운 어른들로부터.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엄마인 내게 말하지 않고 곧장 선생님께 먼저 말씀을 드렸다고 한다. 있었던 일들을 차분하게 설명했고 선생님은 어떻게 하고 싶으냐 물으셨다고 한다. 내 딸은 사과부터 받고 싶다고 진정한 사과가 이루어지면 그 친구들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싶다고 했다. 다음 날 아이들을 부른 선생님께서 조근조근 얘기를 하면서 타일렀고 선생님 앞에서 울면서 사과하겠다고 하던 아이들이 선생님이 안 계신 자리에서 욕을 하며 내 딸에게 위협을 가했다고 했다. 결국 내 딸은 학폭위를 요청했고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 담임선생님과 양쪽 부모님들 모두 불러 사과를 하면 넘어가겠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중학교 1학년이었던 아이들은 생각보다 일이 점점 커지자 뒤늦게 사과를 했지만 결국 처분을 받고 내 딸을 더욱더 싫어하게 되었다. 이 후로 내 딸은 이유 없는 친절을 베풀지 않고 아이들도 가려서 사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마음 아픈 일인데 오히려 이런 경험들로 인해 아이의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졌다면 그것도 큰 교훈이 됐다 생각한다.
힘들고 안타까운 상황의 친구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게 됐고 자신의 상식선에서 아닌 것 같으면 거절도 할 줄 아는 아이로 크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 친구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좋아하는 친구들의 마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쓸데없는 자존심은 부리지 않아서 그런지 오히려 머리가 큰 대학생이 되어서야 좋은 친구들이 주변에 많이 생겼다. 그동안 친구로 인해 힘들었던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 좋은 사람들만 곁에 남는 행운이 다른 사람에게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딸에게는 이런 빛나는 행운이 왔다.
곧 오십을 바라보는 내게도 인간관계는 쉽지가 않다. 같이 일을 도모하거나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지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보게 되지만 모든 사람에게 같은 마음일 수는 없다. 얼마나 살아야 사람과의 사이가 물 흐르듯 편안하게 느껴질까. 섬처럼 외롭게 등대를 비추며 누군가 다가오길 기다리는 일보다 적극적으로 배 타고 나가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점점 더 힘든 요즘 내 딸과 내 딸의 친구들은 보석 같다. 알차고 영롱하다. 그 아이들의 우정이 오래오래 가기를 엄마의 마음으로 빌어본다.
조금, 여담을 덧붙여 보자면
그 아이들은 그 이후에도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잘못한 것은 아는지 내 딸 앞에서 다른 친구들에게 욕을 하고 다녔으며 또 잘지내고 있는 친구들과도 같이 놀지 못하게 어깃장을 놓고 혼자 고립이 되게 만들었다고 한다. 결국 참다 참다 이건 아니라 생각한 내 딸은 그래도 한 때나마 친한 친구들이었기에 사과만 받으면 잊어버리려고 했는데 어른들 앞에서만 눈물을 보이고 또래 아이들에겐 굉장히 악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어른인 내게도. 그런 이유로 학폭위를 열게 되었고 아이들의 이중성 때문에 엄마들만 어색한 관계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