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엄마와 하노이 3박 5일 _ 06
음식은 대부분 입에 맞으시는 것 같았다. 점심에 먹은 반쎄오도, 저녁에 먹은 분짜도 모두 마음에 들어하셨다. 또 한 번 마음이 놓이는 순간. 미련하게 구글맵을 사용하지 못하고 종이 지도를 들고 다니며 길을 좀 헤맨 아들 덕에 덩달아 필요 이상 걸으시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찾아내서 좀 더 환희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오전 내 많이 걸어서 점심 먹고는 호텔에서 잠깐 쉬었다. 더위가 한 풀 꺾이긴 했지만 그래도 돌아다니면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날씨였기에 시원한 에어컨 속에서의 낮잠은 꿀맛이었다. 아마 나랑 엄마는 깨우지 않았으면 해가 질 때까지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행까지 와서 방에서 가만히 쉬는 걸 좋아하지 않는 아빠만 아니었으면. 하지만 아빠도 아빠 나름대로 오래 기다려주셨다. 덕분에 피로를 좀 풀고 다시 길로 나섰다.
이제 첫날의 하이라이트로 기대하던 순서였다. 하노이에서 제일 크다고 하는 동쑤언 시장. 그리고 주말에는 저녁 6시부터 동쑤언 시장에서 호안끼엠 호수까지의 직선 거리에 쭈욱 들어서는 야시장. 놓칠 수 없는 포인트였다. 시장 구경을 세상 재미있어하는 아빠와의 여행인 만큼! 저렴한 물건들 구경하고 길거리 음식들 야금야금 사 먹는 게 가장 큰 재미이신 분. 오후 늦게 동쑤언 시장을 구경하다가 야시장이 열리면 길 따라 구경하면서 이것저것 좀 사 먹는 게 아빠의 가장 큰 기대였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하노이의 시장은, 그리고 야시장은 아빠의 기대와는 너무나 달랐다. 그러게 내가 기대하지 말라고 이미 다 스포해 드렸구만. 이런 표현이 왠지 현지인들에게 좀 미안하긴 하지만, 온갖 얄궂은 공산품들만 파는 시장에서 사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3층 정도 되는 커다란 건물 안에 하나 가득 그저 그런 물건들만 파는 동쑤언 시장의 첫인상에서 이미 김이 새 버렸다. 건물 뒤편의 먹거리들 파는 곳도 뭔가 집밥을 해먹어야 할 것 같은 재료들이라서 사보기가 애매했다. 마음이 떠서 그런지 동남아에서 잘 사 먹는다는 과일도 눈에 띄지 않는 것만 같았고, 야시장은 특히나 별다른 먹거리 없이 공산품들만 잔뜩이었다.
아빠 엄마는 결국 우리나라의 60~70년대를 추억하는 얘기들로 헛헛한 마음을 채우셨다. 하노이의 좁은 골목들과 가게들, 시장의 분위기와 파는 물건들이 엄마 아빠의 어렸을 때를 떠올리게 한 것 같았다. 무슨 얘기들을 하셨더라... 음... 미군 부대에서 공수한 무언가가 엄청 맛있었다는 얘기도 하셨던 것 같은데...
그렇게 하루가 마무리되어갔다. 나무가 멋지고, 우리나라 60~70년대 같은 하노이에서의 여행 첫날이. 그래도 우리나라 돈 2~3천 원으로 엄청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고, 달달하고 진한 아이스커피도 저렴하게 실컷 마실 수 있는 곳이 좋으신 것 같았다. 함께 못 온 딸에게 사진 보내줘야겠다며 나에게 이런저런 사진을 받아서 카톡하며 웃으시던 표정이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