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평화로움, 아빠의 너스레

아빠 엄마와 하노이 3박 5일 _ 07

by 별연못

하롱베이 투어의 날이 밝았다. 여행 준비하면서 미리 예약한 투어였는데, 한국인 투어를 찾을 수가 없어서 다국적 투어를 신청했다. 영어로 진행되는 투어는 늘 긴장이 되지만 이번에는 두 번째 가는 길이니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지난번 아내와 갔다 온 코스와 동일했다.) 사실 여행에서 영어를 못하는 게 제법 손해긴 하다. 이런 투어에서 정보를 잘 못 알아듣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친구가 되기 힘들다는 안타까움이 늘 존재한다. 언제나 영어공부를 시작할는지.


버스로 4시간 가서, 4시간 구경하고, 다시 버스로 4시간 돌아오는 코스였다. 사실 도로 상황 등만 더 좋다면 2시간 반에도 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 현지 사정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그러려니 하고 기분 좋게 투어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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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롱베이 투어는 만족스러워하셨다. 전날 야시장의 아쉬움을 덮을 수 있는 관광이 된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투어 상품 내에 준비된 점심 식사는 영 별로였지만 아빠는 그마저도 잘 드셨으니 별 탈 없이 좋은 날이었다. 아빠는 뭐든 잘 드시는 것 같기도 하면서 또 많이 까탈스럽기도 해서 취향을 종잡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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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2층에서 드넓은 바다 위에 섬 같은 지형들이 수없이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고요히 흘러갔다. 묵상하기 좋아하는 엄마에게 좋은 시간이 되는 것 같았다. 하염없이 바라보며 또 생각하며. 아빠는 아빠 나름대로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즐기고 계셨다. 생각해보니 여행 내내 아빠가 찍은 사진을 한 장도 본 적이 없었다. 잘 찍으셨을까? 다음에 만날 때 아빠 휴대폰 사진들을 구경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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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 중간에 작은 보트도 탔다. 개인적으로 이 시간이 제일 멋졌다. 뱀부보트라고 하는 4~5인용 보트를 타면 뒤에서 노를 저어준다. 바다 위를 천천히 떠가면서 아까 멀리서 보았던 그 봉우리 같은 것들 가까이로 다가간다. 그리고는 그 봉우리 아래 작은 구멍이 뚫린 사이로 지나가 아늑한 호수 같은 느낌의 공간 속으로 들어간다. 본디 고요했을 그 공간에 여기저기서 투어를 온 관광객들이 탄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는 활기찬 소리들이 순간순간 크게 터져 나온다. 십여 분 간 느낄 수 있는 이색적인 체험. 할 수만 있다면 조금만 더 오래 그 공간을 부유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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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마다 4명씩을 채워서 태우느라 우리 가족 외에 포르투갈 젊은 남자 한 명이 같이 타게 됐다. 어디서 왔는지도 어쩌다 혼자 오게 됐는지도 알게 된 건 아빠 덕분이었다. 일행은 좀 창피해지는 영어를 자신 있게 구사하면서 나름 대화를 이끌어내셨다. 아빠가 여행지에서 사람들과 그렇게 더풀더풀 얘기를 잘 나누실 거라고는 예상 못했었다. 아빠가 원래 사람들과 곧잘 우스갯소리 하며 잘 어울리는 분이시라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아빠하고 어딜 가 본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니까.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빠야말로 여행에 최적화되어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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