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국물이 평안을 주기까지

아빠 엄마와 하노이 3박 5일 _ 08

by 별연못

하롱베이 투어를 끝내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현지 가이드는 몇몇 사람에게 트립어드바이저 후기를 부탁했다. 조금 질척거린다 싶을 정도로. 싱글싱글 웃으면서 좋은 후기가 많이 달려야 자기 월급이 오른다면서 후기를 부탁하고는 곧 몇몇에게 직접 사이트를 접속해서 쓸 수 있도록 옆에 착 달라붙었다. 아마 앞에서 부탁만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후기를 쉽사리 남기지는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몇몇 만만해 보이는 사람들을 일대일 마크하면서 후기를 받아냈다. 그중에 나도 있었다. 휴대폰이 와이파이가 안 돼서 지금 못 쓴다고 하자 친히 자신의 핫스팟을 열어주었다. 그리고는 내게 영어로 남겨야 한다는 의심 섞인 확인도... 나도 후기 몇 문장 정도는 영어로 쓸 수 있다고! 빈정 상했지만 그래도 엄청 좋았다는 얘기를 남겨주었다. 젊은 친구가 참 열심히 산다는 생각에.


사실 난 끝까지, 끈덕지게 무언가를 해본 기억이 없다. 뭐든 쉽게 쉽게 하고 싶어 하고, 어느 정도 하다가 그만둔다. 때로는 운이 좋아서 남들 하는 만큼 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 이상 치고 올라간 적은 없었다. 엄마는 늘 내게 넘어야 할 산을 하나만 넘어보면 좋겠다며 안타깝게 말씀하셨지만 여전히 난 산 중턱에서 돌아가거나 초입만 배회하고 있다. 이렇게 이어진 인생이 제법 길어져버렸다는 게 문득 두려워졌다.


돌아오는 길이 너무 어두웠다. 그래서 이런 쓸 데 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거다. 지금은 혼자 센티멘탈해질 시간이 아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저녁식사를 할 식당을 찾아야 할 때다.


투어 버스가 우리를 호텔에 내려준 건 저녁 시간이 한참 지난 후였다. 원래대로 도착했어도 8~9시 사이였을 텐데, 돌아오는 길이 차가 막혀서 좀 더 늦었다. 호텔이 호안끼엠 호수 근처인 데다 맛집들과도 가까워서 투어를 떠날 때만 해도 크게 걱정은 안 했었다. 안일했던 게 문제였다. 하노이 구시가지가의 길이 엄청나게 복잡하다는 것과 데이터로밍을 안 해서 종이지도만 의지해야 한다는 것과 시간이 너무 늦어졌다는 것이 더할 나위 없는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엄청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잠깐 종이지도 사용에 대한 핑계를 좀 대자면... 왠지 그게 더 여행하는 맛이 난다고 느끼는 마음이 저 구석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없던 대학생 때 처음 혼자 여행을 가 본 경험의 잔재이거니와 길을 좀 잃어가면서 뜻하지 않은 장소와 가게와 풍경을 만나는 게 묘미라고 여기는 마음 때문이다. (종이지도를 사용한다고 얘기할 때마다 너무 깜짝 놀라는 지인들의 반응 때문에 굳이 이렇게 핑계를...)


묘미는 혼자 여행할 때 느끼면 될 일이었다. 부모님 모시고 하는 여행에서 길 찾기는 신속, 정확이 미덕임을 미처 알지 못했던 거다. 호텔 식당도 문을 닫았고, 원래 가려던 식당은 호텔 직원의 길 안내에도 불구하고 너무 헷갈렸다. 급한 마음에 이리저리 우왕좌왕하다가 우연찮게 유명한 쌀국수집이 눈에 들어왔다. 와오! 주황색의 크고 밝은 간판을 걸고 있는 그 가게가 엄청 감사했다. 우여곡절 끝에 들어가 보니 마감 직전이었다. 종류도 한 가지밖에 남지 않았었다. 그래도 음식이 다 떨어진 건 아니었으니 다행이었다. 하루의 끝을 진하고 뜨끈한 국물로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부모님도 베트남에 온 지 이틀 만에 접하는 쌀국수라 기대감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입에 맞으셨다. 베트남 현지에서의 쌀국수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면서 맛있게 드셨다. 베트남의 국물이 평안과 웃음을 가져다주었다. 하롱베이 투어의 날이 그렇게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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