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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연못 Aug 14. 2023

완벽하게 흘러가지는 않지만

기대 이상의 점심식사 후 택시를 잡았다. 우리만의 가우디 투어 두 번째 장소도 멀지는 않았지만, 또 많이 걸어야 할 것을 대비해서 잠시 쉬어간다는 의미로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약간의 언덕 쪽으로 올라갈 때 즈음 거의 도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구엘 공원은 바르셀로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 위쪽에 있었으니까. 


택시가 최대한 들어갈 수 있는 곳에서 내린 후 골목에 늘어선 기념품 가게들을 구경하며 또 한 번 예전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때도 이 입구로 들어갔었나?" "그때는 단체로 온 것이었어서 입구가 달랐던 것 같지 않아?" 희미해진 기억을 더듬으며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도 그때의 느낌은 오롯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일반 공원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고 생각했던 첫인상이 떠올랐다. "좋다. 여기도 여전히 좋네." 오전에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마주했던 따스한 분위기를 다시 한번 만끽하며 우린 손을 꼭 잡았다. 


기억보다 공원이 컸다. 언덕 위로 꽤 올라가는 길도 있었고, 이리저리 뻗어나간 길도 많았다. 신혼여행 때는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핵심 포인트만 짚어보느라 전체를 둘러보지 못했었나 보다 싶었다. "정말 공원에 온 것 같은데?" "이름이 구엘공원이잖아." "예전에 주택 단지로 지어졌었다는 설명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공원이라고 잘 실감을 못했던 것 같아." "그래? 아닌 게 아니라 오늘 보니 진짜 큰 공원스럽긴 하네." 언덕 위에서 바다까지 펼쳐지는 도시 전경을 바라보며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소소히 나누며 중요한 지점으로 이동해 갔다. 



나무들 사이로 산책을 하다가 드디어 광장에 들어섰다. 사실 우리에게는 구엘 공원에서 미션이 있었다. 9년 전 찍은 그 지점에서 다시 한번 사진 찍기. 같은 장소, 다른 시간의 사진을 쌓아가는 의미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광장을 둘러싼 길고 긴 벤치 중에서도 정확히 그 자리에 앉아 사진을 찍고 싶었고, 도마뱀 분수 앞에서도 꼭 비슷하게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런데 이곳이 너무너무 유명한 관광지라는 것이 문제였다. 우리가 찍었던 자리들은 모두 인기가 많은 곳이었고,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북적이고 있었다. 그때는 열댓 명 정도의 단체에 속해 있었기에 연대의 힘으로 서로 도와가며 찍어주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반대로 그런 다수의 무리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사람들이 복작복작하는 사이에서 부대끼는 것을 꽤나 싫어하는 성격이었기에 이 중요한 순간에 극심한 쭈뼛쭈뼛 모드가 작동되었다. "저기 사람들 많은 곳 말고, 옆쪽에 조금 한가한 곳에서 찍으면 안 돼?" 아내는 많이 아쉬웠지만 사진 자체를 제대로 찍을 수 없을 정도라는 것에 동의하고 벤치에서는 한 발 물러섰다. 


벤치에서 그대로 재현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도마뱀 분수에서는 꼭 만회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곳은 더 힘들었다. 일단은 간신히 셀카를 찍었는데, 아내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조금 더 제대로 찍고 싶은 마음이 컸다. 신혼여행 때와 비슷한 구도에서 분수 전경도 조금 더 나오도록. 그날따라 이상하게 한국 관광객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외국인들 사이에서 누구에게 부탁할지 한참을 망설였다. "저 사람한테 찍어달라고 할까?" "다른 사람이 낫지 않을까?" 소심병에 귀차니즘까지 발동해 이유 없이 딴지만 걸던 내가 답답해져서 결국 아내가 한 외국 아주머니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아쉽게도 사진이 어설프게 찍혔다. 다른 사람에게 한 번 더 부탁하고 싶었지만, 또다시 망설이는 시간만 길어지다가 결국 셀카만 한 번 더 시도하고 공원을 나왔다. 


왜 그렇게까지 말을 못 했을까? 10주년 기념여행이고, 우리의 추억에 덧붙여지는 소중한 순간인데, 그 한 두 마디 거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었을까? 공원을 나와 기념품 가게들을 구경하면서도, 숙소에 들렀다 나오면서도 내내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필요 이상 체면을 차리고, 고상하고 싶어 하는 걸까? 너무 남의 눈치를 살피고, 심약한 건가? 조금 뻔뻔해져도 괜찮은 것 아닐까? 스스로 살아온 날과 성격까지 되짚어가며 정말 별의별 생각을 다 했던 것 같다. 이렇게도 특별한 순간에 여기까지 와서 사진 한 장을 제대로 찍지 못해서 아내가 저렇게나 실망하는 모습을 연출했어야 했는지에 대해 자책에 또 자책을 보태고 보태었다. 


아내는 평소 나를 향해 든든한 남편이고, 우리 집 가장이라며 무한한 신뢰와 믿음을 보내준다. 그런데 그때마다 난 참 많이 부끄럽고 부담스럽다. 세상 물정도 잘 모르고, 용기도 없고, 지혜롭지도 않다. 아내의 든든한 편이 되어주기는 커녕 스스로도 휘청거리기 일쑤다. 심지어 가끔은 동굴 깊이 들어가 세상을 등지고 싶어 하기도 한다. 정말 한없이 보잘것없고 할 줄 아는 것이 없어 한심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남편을 믿어주고 세상 제일 멋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주는 아내가 놀라울 뿐이다. 


새삼 아내가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여전히 한심한 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심지어 실마리도 찾지 못했지만, 그저 아내가 한없이 고마웠다. 10여 년 만에 다시 온 바르셀로나에서 원했던 사진 한 장을 제대로 찍지 못했어도, 함께 다시 왔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아내가 참 아름다웠다. 그런 아내를 보고 있으니 내 삶에 조금 더 용기를 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도 소중한 아내와 함께 계속해서 여행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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