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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연못 Aug 14. 2023

소복이 더해지는 평화

바르셀로나에서의 일정은 '추억 만나기'가 중심이었지만, 새로운 추억도 쌓을 수 있다면 여행이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렇게 찾게 된 곳이 몬세라트였다. 평소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을 비우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아내에게 특히나 어울릴만한 곳인 것 같았다. 아내는 이번 여행 중에서도 몬세라트를 많이 기대하고 있었고, 준비도 꼼꼼하게 작은 것 하나 빠트리지 않았다. 일정은 치밀하지만 느슨하게 계획했다. 호텔에서 몬세라트까지 가기 위한 방법은 교통수단을 비롯해 갈아타야 하는 장소, 티켓 구매 위치까지 빼곡히 적어놓았지만, 언제까지 가서 무엇을 얼마나 보느냐 하는 것은 당일의 컨디션에 맡기기로 했다. 


중간에 추억의 카페에서 브런치를 경유한 뒤 우리는 몬세라트로 향한 이동을 이어갔다. 교통편에 대한 아내의 철저한 사전조사가 정말 빛을 바랐다. 마치 여러 번 다녀온 사람처럼 막힘 없이 술술 찾아가고 있자니 흥이 절로 났다. 길 찾느라 투닥거리는 장면이 한 번도 연출되지 않아 여행 내내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버스에서 열차로 갈아탈 때도 전혀 헤매는 것 없이 수월했고, 마지막 열차로 갈아탈 때도 고민 없이 전망 좋은 편에 앉아 마음 편히 연신 감탄할 수 있었다. 


몬세라트 일정은 열차가 출발하는 순간부터 점점 더 설렜다. 도시에서 멀어지면서 보이기 시작하는 시골 풍경도 그림같이 예뻤고, 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보이는 바위들로 이루어진 산도 그림같이 멋있었다. 거기에 간간이 눈에 들어오는 작은 마을들도 풍경 속에 오롯이 어우러져 평화로운 기운을 전해주는 것 같았다. 


그 모든 감상을 가득 안고 도착한 몬세라트는 이제까지의 감상 이상으로 좋았다. 개찰구를 나오자마자 보이는 풍경만으로도 이미 이곳에서 며칠 더 지내고 싶다는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들, 그와 합을 이루어 지어진 소박한 건물들, 그 모든 것을 품어주는 듯한 따스한 햇살과 넓고 푸른 하늘. 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바쁘게 걸으면 1시간도 안 되어 모두 둘러볼 만한 곳에서 우리는 한참을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몬세라트의 중심인 예배당으로 가기 전 일부러 주변을 더 둘러보았다. 되도록 아끼고 아끼며 천천히 느끼고 싶었다. 몇 걸음 가다 멈춰 산 아래 마을을 바라보고, 또 멈춰 저쪽 너머에 있는 산을 바라보고, 또 멈춰 하늘을 바라보았다. 살랑이는 바람과 부드러운 햇빛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이 길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우리 인생에 한없는 평안이 깃들 것만 같았다. 


조금 늦은 오후였기에 다소 한적한 것 같기도 했다. 보통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낮 1시에 시작되는 소년합창단 공연에 맞춰서 오기 마련인데,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 온 덕에 그렇게까지 붐비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는 오히려 좋았다. 소년합창단의 노래도 인상적이었겠지만, 여유롭게 이곳을 돌아볼 수 있는 것이 더 취향에 맞았다. 수학여행 온 것 같은 학생들 무리가 자아내는 활기참 외에는 대부분 평온한 분위기였고, 우리는 잠잠히 그 속에 젖어들었다. 


예배당 안까지 모두 둘러보는 동안 우리는 자주 멈춰 섰고,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10년 뒤 바르셀로나를 또 온다면 1~2일 정도는 꼭 이곳에서 숙박을 하며 지내자는 이야기, 언젠가 부모님 모시고 오면 정말 좋아하실 것 같다는 이야기, 심지어 바르셀로나로 이민 오면 좋겠다는 이야기 등을 나누면서 여러 꿈을 꾸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평안해지는 이런 곳에서 살면 세상 근심 걱정이 사라질 것만 같다는 이야기도 덧붙이면서. 


"정말 여기에 또 올 수 있을까?" "이렇게 결혼 10주년이라고 바르셀로나에 두 번째 왔는데, 다음에도 또 올 수 있지 않을까?" "그래, 꼭 올 수 있으면 좋겠다." 그저 돌산에 조그맣게 자리한 담백한 수도원이 왜 그렇게까지 마음에 남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몬세라트는 우리에게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감사한 안식을 선물해 준 장소가 되었다. 어쩌면 그날의 온도와 바람, 아침부터 이어진 평화로운 분위기가 이 모든 결과를 빚어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9년 전 추억의 도시에 또 하나의 따뜻한 공간이 추가되어서 참 감사했다. 우리 둘의 이야기가 조금 더 풍성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추억을 돌아보며 반가운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추억이 더해져 다음이 또 기대된다는 것도 참 좋았다. 우리 인생에 소중한 이야기가 하나하나 쌓여가면서 둘의 삶이 더 풍요로워지기를, 그래서 더 행복해지기를 소망하게 되는 소박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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