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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연못 Aug 14. 2023

예전 그 카페, 지금 그 고민

아내는 고민이 많았다. 11년 가까이 다닌 직장을 그만둔 참이었다. 아내는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1개월 이상을 쉬어본 적이 없었다. 안정적인 생활에 대한 욕구도 있었지만, 의미 있는 삶에 대한 바람이 더 컸다. 늘 가치 있다고 판단한 방향으로 직장을 옮겨왔고, 이 최근 일터에서도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결같이 자리를 지켜왔었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늘 하고 싶었지만 쉽지는 않았다. 시스템의 한계가 아쉽기도 했고,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비상식적인 순간들을 마주하며 진이 빠지기도 했다. 오랜 기간 동안 좋은 동료도 만나고 그렇지 않은 동료도 만나면서 마음이 많이 상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단단하게 중심을 붙들고 있던 아내는 어느 순간 공황장애 속으로 빠져들었다. 너무 안타깝고 왠지 모르게 억울했다. 사회의 한 분야에 대한 연민이 있으면서도 희망을 갖고 밝게 지냈던 아내의 기운이 어느새 스러져가고 있는 것 같아 참 많이 속상하기도 했다.


아내는 제법 긴 시간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잠깐씩 멈춰 일상으로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들여야 하는 힘든 때를 종종 맞이해야 했다. 직장을 옮긴 지 4~5년 정도 되는 시점에 발생한 증상은 그 뒤로도 몇 년 동안 아내를 괴롭혔는데, 함께 하는 난 아내에게 직장을 그만두고 쉬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강하게 하지 못했다. 힘들게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시간을 갖고 쉬어야 상처가 아물고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때때로 아내에게 이야기를 건네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과는 반대의 상황을 만들고 있었다. 아내에게 쉬라고 말은 하면서, 정작 남편이란 사람이 먼저 직장이 힘들다며 연거푸 휴직생활을 하고 있었고, 이 상황이 아내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일단 가계 생활을 위해서라도 자기까지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더 크게 자리하게 만든 것이다.


그 뒤로도 5~6년이 더 지나서야 아내는 간신히 쉬어가는 순간을 갖기로 결심할 수 있었다. 많은 생각들이 몰려오는 듯했다. 길었던 직장생활을 돌아보며 후회와 깨달음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과 헤어 나오지 못한 감정의 골 사이에서 알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라도 아내가 그런 시간을 갖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참 많이 미안했다. 이렇게까지 오래도록 상한 후에야 쉴 수 있도록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럽고 면목 없기도 했다. 조금 더 일찍 쉬고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이번 여행은 그런 아내가 자신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좋은 쉼과 돌아봄의 시간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여행의 타이틀이야 결혼 10주년 기념이었지만, 아내가 원하는 시간을 가득히 담을 수 있기를 바랐다. 인생에서 처음 맞이하는 기나긴 휴식에서 정말 귀중한 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무엇보다 컸다. 그래서 아내가 여행 계획을 세우며 신나 하는 모습이 좋았고, 여행지에서 아내가 원하는 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차근차근 하면서 다음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어." 9년 전의 추억이 담긴 브런치 카페에서 옛날이야기들을 어느 정도 했을 즈음 아내는 앞으로의 이야기를 꺼냈다. 퇴사한 지 2개월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도 여전히 직장을 나온 것이 잘한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연히 관심 있었던 것들을 배워보는 것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긴 할지, 경제적으로 우리 가정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등등 끝도 없는 염려와 걱정들 사이에서 끙끙대던 아내가 이제야 조금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었다. "오늘 아침 샤워하는 순간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면서 뭔가 마음이 정리되는 것 같았어." 수십일을 답도 없이 제자리걸음하는 것 같던 머릿속이 한순간에 우습게 맑아지는 느낌이. 스스로도 신기해하면서 아내는 밝게 웃었다.


바르셀로나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마음의 평안을 주는 따뜻한 햇살과 추억이 있는 공간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반복되는 일상의 공기와는 다 내음이 느껴지는 곳에 있었기에 순간순간 더 많이 웃으며 좋아할 수 있었고, 그런 가운데 놓여있는 마음이기에 골치 아픈 녀석들을 더 작고 별 것 아니게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가벼워진 기분으로 일어나고 보니 자신 앞에 놓인 미래가 불안하기보다는 기대되는 방향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9년 만에 찾아간 브런치 카페는 기억 속 맛보다 훌륭한 것 같지 않았지만, 우리 둘의 인생에 있어 또 한 번 소중한 공간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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