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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연못 Aug 14. 2023

추억을 따라서 오늘의 추억을

기분 좋게 일어난 바르셀로나에서의 둘째 날 아침, 어제부터 이어지는 설렘을 가득 안고 거리를 나섰다. 대중교통 회수권을 사는 것조차 색다른 경험처럼 느껴지는 즐거운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낯선 도시에서 이용하는 버스는 늘 기대와 긴장이 섞여있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여행의 기분을 돋우어주는 동시에 목적지에 제때 내리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도사리게 되곤 했다. 매 정거장마다 정확히 인지할 수 있는 전철보다 버스가 조금 더 자유도가 높은 편이어서 생기는 필연적 긴장일 테지만, 그래도 여행지에서 갖는 버스의 매력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버스에 대한 짧은 단상을 끝낼 즈음 목적지 주변 정류장에서 하차한 우리는 두근 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몇 발짝 떼다가 아직 예약한 시간까지 여유가 있음을 발견하고는 잠깐 두근거림을 멈춰놓은 채 커피와 추로스를 선택했다. 우연히 들른 작고 아담한 카페는 우리의 기분을 더 즐겁게 만들어주었는데, 커피와 추로스가 정말 맛있었다. 이 작은 카페 덕에 바르셀로나에서의 추로스는 어디나 이렇게 맛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다음날 다른 곳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우쳐 주기도 했다. 어쨌거나 성공적인 아침을 마치고 다시 두근거림을 가동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여기 진짜 너무 멋있다! 완공되면 또 오자!"라고 얘기하며 들떴던 그곳. 비록 아직도 공사 중이었지만 정말로 또 오게 되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벅찼다. 걸어가면서 점점 더 가까이 보이는 성당을 가리키며 헤실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세상에, 진짜 왔어!"


9년 전에는 일일투어를 통해 이곳에 왔었다. 하루 동안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구엘 공원 등을 방문하는 '가우디 투어' 일정이었다. 우연히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가이드를 만나게 되어 내적 친밀감을 느끼기도 했고, 설명을 들으며 아는 만큼 볼 수 있게 되어 유익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우리끼리 알아서 가우디 투어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때 들었던 설명이야 이미 대부분 희미해졌지만 그냥 찬찬히 바라보고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분명 멋진 일정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성당 입구에서부터 조각들을 하나하나 세세히 살펴보며 최대한 천천히 이동했다. 될수록 더 많이 눈에 담고 싶었다. 우리끼리 조각에 담긴 의미들을 유추해 보며 이야기도 만들어 보았다. 내부는 여전히 포근했다. 9년 동안 조금씩 조금씩 보태진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았지만, 따뜻하면서도 머물고 싶은 느낌은 그대로였다. 숲 속에서 자연을 만끽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나뭇가지를 닮은 기둥들이 가지런히 뻗어나간 모습과 햇살의 모든 색깔을 담아내고 있는 듯한 그 공간이 참 아름다웠다. 어느새 예배당 의자에 살며시 안착한 우리는 눈이 닿을 수 있는 모든 곳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살펴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왠지 모르게 감동적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일어나 구석구석 걸어가 달라지는 시야를 통해 또 다른 풍경을 마주하게 되는 것을 신기해하며 재미있어했다. 



천천히 보되 게으르지 않게 발품을 팔다 보니 그렇게 생각지 못한 재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번에는 가이드를 따라가느라 보지 못했던 풍경들과 감상들. 우리끼리 하는 투어에서만 경험하게 되는 것들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 두 번의 경험 모두 각각의 즐거움이 있었기에 어느 하나만 고르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다가 역시나 좋은 곳은 여러 번 와봐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뒤 이어서, 그러니 10주년 여행을 이렇게 다시 한번 그 도시로 온 것은 참 잘한 것이라는 뿌듯함도 따라왔다. 


아쉬운 마음에 마지막 코스인 기념품점까지 꼼꼼하게 살핀 뒤에야 비로소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안녕을 고할 수 있었다. 촉촉해진 감성으로 손을 꼭 잡고 걷던 우리는 "그런데 배고프다"라는 얘기에 이내 낄낄거리게 되었다. 함께 산 지 9년째인 부부는 신혼 때처럼 낯 간지러운 감성을 오래 버티기 힘들어했고, 누군가 이 말랑말랑한 분위기를 살짝 깨뜨려주어야 심신의 안정을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장난치듯 동네 밥집을 찾아 들어간 곳에서 또 한 번 기대 이상의 식사를 마주하고는 다시 두근거림을 장착한 채 우리만의 가우디 투어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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