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엄마와 하노이 3박5일 _ 03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마음의 준비가 되었건 안 되었건 상관없이. 평소에도 시간에게 그게 좀 불만이긴 했다. 그렇다고 별다른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지만. 여튼 한 편으로는 내심 설레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여행을 떠나는 거고, 이렇게 엄마 아빠와 오롯이 함께하는 시간이 흔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출발 2시간 전까지는 공항에 오시라고 신신당부 드렸다. 걱정과는 달리 제 시간에 도착하셨다. 이미 오시면서도 두 분이 투닥투닥하신 것 같긴 했지만, 그 정도는 엄마 말대로 의견을 주고받는 정도에 불과했다. 엄마 아빠가 평온무사 상태를 장시간 유지하는 게 더 신기한 일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두 분 다 표정이 좋아보였다. 외국에 여행 가는 것도 좋으신 것 같았고, 아들하고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으신 것 같았다. 아들이 뭐 잘 해드린 게 있다고.
배웅을 위해 공항에 같이 나온 아내가 옆에서 많이 챙겨줬다. 발권도 하고 저녁 식사도 하고 여유 있게 출국심사를 마쳤다. 면세점 위쪽에 난 통로에서 아내가 마지막까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엄마는 그렇게 떨어지기 힘들어서 여행 기간 동안 아내 혼자 잘 지낼 수 있겠냐며 걱정이 살짝 담긴 농담을 건넸다. 갔다 와서 아내에게 들어보니 혼자 있어서 무척 편하셨다고.
우린 셋 다 면세점에서 살 게 없었다. 엄마 아빠 모두 럭셔리한 곳에서 쇼핑하는 걸 별로 즐겨하지 않으셨고, 나도 그 점을 닮았다. 예전에는 잘 몰랐는데 이럴 때 보면 나도 모르는 새 엄마나 아빠와 닮은 구석을 갖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면세점 아이쇼핑에서 내 성향의 원류를 발견하고 있는 동안 아빠가 알로에 로션을 사고 싶어하셨다. 그런데 몇 군데 슬쩍 보시더니 그냥 가자고 하셨다. 아빠가 동네 시장에서 본 가격보다 비싼 것 같았다. 엄마나 나는 괜찮다고, 사라고 했지만 결국 돌아나오셨다. 아무래도 뭐 하나를 선뜻 못 사는 건 아빠와 닮은 거였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