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바스티안 하프너 3부작을 다 읽었다. 인간사가 다 그렇겠지만 어떤 저자는 본래의 학식과 식견보다 더 나은 평가를 받는 반면에, 어떤 저자는 그보다 박한 평가를 받기도 한다. 내가 볼 때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단연코 전자다. 나는 왜 이 저자가 국내의 식자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지 모르겠다. 문학적 소양이 있어보이기는 하지만 사료들을 읽어내는 통찰력은 많이 부족하다고 본다.
하프너의 3부작을 간략하게 되짚어 보면,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들>은 매우 실망스러웠고,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는 좋은 참고가 되었으며, <어느 독일인 이야기>는 내가 사랑하는 책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마지막에 명기한 <어느 독일인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내 마음에 쏙 드는 책은 없었던 것 같다. 그나마 이 책이 나치즘 발흥기의 붕괴하는 독일 시민사회의 정경을 '굉장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후하게 평가를 한 것이다. 다만 하프너가 반파시즘 투쟁기의 좌파들을 굉장히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존재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나는 단연코 명백한 역사 왜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프너와 계약한 출판사의 자금원이 어디였는지를 감안하면 수긍이 가지만) 2차 대전 후에 유럽 각국, 심지어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서유럽 국가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정당성을 인정받은 이유는 전전과 전쟁 중에 보인 좌파들의 헌신과 희생 덕택이다. 물론 페스트나 콜레라나 인민들에게 유해하기는 마찬가지라며 자유주의자, 사민주의자들과의 연대를 거부하거나 독,소 불가침 조약 이후에 나치를 잠시 희망적으로 바라봤던 일부 좌파들의 실책이 있기는 하지만, 당시 그들의 행동이 하프너가 마치 '인생의 노영에 쫓기는 짐승'처럼 묘사할 만한가에 대해서는 나는 단호하게 그가 틀렸다고 말하겠다. 외려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하프너의 정치적 태도이다. <히틀러에게 붙이는 주석들>을 읽었을 때, 느낀 바이지만 나는 하프너의 민족주의적 태도가 무지하게 거슬린다. 이 책을 읽어보면 하프너의 전제는 이렇다. '독일은 더 위대해질 수 있었다, 단 히틀러만 없었다면.'
- 201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