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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채원 Sep 02. 2020

행운과 불운에 대처하는 법

통근길 독서일기 14.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행운과 불운에 대처하는 법>


교과서에나 이름을 접했음직한 이 이탈리아 인문주의자의 책을 집어 든 가장 큰 이유는 책의 제목 때문이다. PD라는 직업은 행운과 불운이 교차하는 직업이다. 프로그램이 조금만 잘 되면 자만하기 쉽고 조금만 촬영이 마음대로 되지 않거나 시청률이 낮게 나와도 좌절하기 십상이다. 그런 감정적 동요를 조금이나마 줄여보려는 심산에서 집어 든 책이다. 


14세기에 나온 책이라 그런지 책의 구성은 우의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인간의 감정을 의인화해서 고통이나 기쁨 같은 감성이 저마다의 문제를 토로하면 이성이 답해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도덕극에서 우의를 주로 쓰는 이유는 대립하는 주장을 의인화하여 문답의 형식을 취하는 이런 방식을 사용해야 당대의 독자들이 더 이해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14세기의 사람들이 현대인들과 비슷한 고민을 토로하는 것도 놀랍고 이에 대한 해답이 오랜 세월을 거치도록 옷만 갈아입을 뿐, 실체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도 놀랍다. 고전으로서 의의도 별로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안을 얻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별로 없다. 내가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한 문장으로 요약한 가르침이란 창작 행위로부터 오는 불안감은 오로지 창작을 계속해나감으로써 상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작하지 않았기에 불안하고, 잘 되어가지 않는 곳 때문에 잘 되어가는 곳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이 가중된다. 경험상 이런 종류의 불안감은 오히려 불안을 말하는 책보다는 정신을 빼놓는 서스펜스 스릴러 소설 등이 더 도움이 된다. 이 책이 반복해서 안겨주는 교훈은 잘 될 때 자만하지 말고, 잘 안 될 때 좌절하지 말라는 것. 


잘 될 때(행운)와 잘 안될 때(불운)는 모두 운의 영역이다. 이 운은 내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다. 그렇다면 풍랑이나 폭우 같은 자연력의 일부라고 봐야 한다. 물론 수많은 인간 행동이 일으킨 미시적 효과들의 총합이라 해도 그렇다. 그렇기 위해서는 풍랑이 거세든, 그렇지 않든 풍랑의 힘을 이용할 수 있도록 바람의 길을 읽어야 하며, 정 안 되면 노라도 저어야 한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그게 내게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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