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입문기 6.
티저 예고가 나왔다. 티저를 만들기 전에 조연출에게 주문한 것은 '범죄는 시대를 반영한다'는 주제의식을 살려줄 것, 그리고 70년대 크라임 쇼(그리고 리처드 플레이셔의 <보스턴 교살자>)에서 자주 쓰던 분할화면이 들어가되, 분할방식은 창조적이었으면 좋겠다는 것. 팔불출 후배 사랑 때문이어서인지는 몰라도 내가 주문한 것보다 훨씬 더 잘한 것 같다. 언젠가 창작 과정은 비대화된 자의식을 치료하는 데 특효라고 쓴 적이 있다. 창작은 창작자를 왜소화하는 것 같지만 그가 가진 사고와 세계관, 역량을 처절할 정도의 객관성으로 반영한다. 그 누가 제 아무리 잘 나도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에 승복할 수밖에 없다. 이게 우리가 처한 엄연한 현실인 것이다. 그리고 그 현실을 냉철하게 해부할수록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도약대가 된다. 조연출이지만 코-피디 못지않게 해 줬던 우리 후배가 내가 제작 과정 내내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던 '힘들다, 쉬고 싶다, 집에 가고 싶다'는 엄살보다 실천으로서 이런 교훈을 체득했기를 바란다. 만날 칭얼대고 장난만 치지만 하나라도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 티저는 시리즈의 주제의식을 정확하게 담고 있다. 8,90년대 신군부의 등장과 함께 격렬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그 결과, 경찰 병력은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는 데 쏠렸고, 치안 공백이 생겨났다. 이 치안 공백의 가장 큰 희생자는 여성, 아이, 빈민 같은 사회적 약자이다. 부정하게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권의 모토는 역설적으로 '정의사회구현'이었고, 그 표리부동함을 시정하려고 했던 시도는 또한 역설적으로 대도 조세형의 '의적 놀이'였다. 뒤를 이어 노태우 정권은 '범죄와의 전쟁'을 표방했지만 한낱 제스처에 불과할 뿐, 이미 삐뚤어진 세상을 바로잡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묻고 싶었다. 누가 범죄자인가? 그리고 무엇이 범죄를 낳는가?
창작자의 손을 떠난 작품을 해석하는 것은 수용자의 몫이다.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의견으로 창작자를 깎아내리기 바쁜 사람들이 많다. 굳이 티저 예고의 의미를 설명하려는 까닭은 '저것 봐라, 데모꾼도 다 범죄자다.'라든가, '아니 신성한 민주화운동이 범죄란 말이냐.'와 같은 극우 신화와 진보 신화, 둘 다 거리를 두기 위함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데올로기라는 색안경을 통해 창작물을 왜곡한다. 이것은 창작물 고유의 숙명이지만 억측을 미리 경계해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