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들
옛날 일본에 오키쿠라는 이름의 하녀가 있었다. 누군가 오키쿠의 미모를 시기해 접시를 훔친 뒤, 누명을 씌웠다. 주인으로부터 추궁을 받은 하녀는 억울함에 자결하고, 결국 원귀가 되어 우물가에서 항상 접시를 센다고 한다. "접시가 한 개, 두 개, 세 개...... 계속 접시가 비네. 접시가 비네." 하면서. 사람들은 이 하녀의 원혼을 '사라야시키'라 불렀다고 한다.
지금 나의 처지가 이 사라야시키와 다를 바가 없다. 누군가의 시기나 누명 때문이 아니고 전반적으로 어려워진 방송 환경 탓이다. 출연료, 인건비, 장비 임차료 등 비용 상승 요인은 많은데, 예산은 한정적이다. 아무리 예산안을 짜 맞춰봐도 넘치고 또 넘쳐 협소한 예산안 틀에 들어갈 줄을 모른다. 계속 접시가 빈다. 세어봐도 또 세워봐도. PD의 욕심은 무한정이지만 결국 자원은 한정적이고, 어떻게든 없는 살림에서 해나가려니 막막한 마음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 막막한 마음으로 고민하고 걱정하는 게 원래 내 일이려니 받아들이기로 했다. 레너드 코펫의 명저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마음에 남아 외워두다시피 하는 문장이 있어 이럴 때마다 떠올린다.
"그렇다면 감독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근심걱정하는 일이다. 끊임없이. 목구멍이 포도청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