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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채원 Nov 22. 2019

읽거나 말거나

통근길 독서일기 1.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읽거나 말거나>


일과 육아에 정신없이 살다 보면, 출퇴근 시간이 유용한 독서 시간이다. 특히 경의 중앙선을 주로 이용하다 보면 책 읽을 시간이 많이 늘어난다. 때로는 특정 주제에 꽂혀 관련 서적을 읽는 경우도 있고, 또한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는 기담집을 읽기도 한다. 다만 독서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다 보니, 책을 읽고도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소득 없이 읽다가는 소중한 독서의 시간이 그저 시간의 여백을 채워 넣는 무용한 일상으로 전락하겠다 싶었다. 관건은 의지의 문제. SNS에라도 짤막하게 서평을 남기려는 노력은 있어왔지만 계속 실패했다. 원인은 의지의 부족이 컸지만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부담감 때문이었다. 내가 잘 읽었을까? 내용이 머릿속에 남아있을까? 잘 모르면서 떠드는 게 아닐까? 무식이 탄로 나면 어쩌지? 온갖 걱정들이 발목을 잡았다. 내가 쉼보르스카라는 생소한 폴란드 작가의 책을 집어 든 이유는 이런 걱정 때문이었다. 어깨에 힘을 빼고 써보자. 안 되면 트위터에 한, 두줄이라도 써보자 이런 심산에 가장 걸맞은 책이 바로 <읽거나 말거나>였다.


읽은들 어떻고, 안 읽은들 어떤가, 쓴들 어떻고 안 쓴들 어떤가, 일단 부담감을 떨쳐내야 한 걸음 더 디딜 수 있다는 마음. 쉼보르스카도 같은 생각이었을까? 남들이 읽던지 말던지, 책이 중요하던지 말던지 쉼보르스카는 일단 쓰고 있다. 그것도 꾸준히.


<읽거나 말거나>는 '비필독도서'라는 이름의 문예지 칼럼을 모아놓은 책이다. 책의 원제는 <비필독도서>. 원래는 정전화된 고전들을 엄숙하게 다루는 '필독도서'라는 칼럼이 있었는데, 그와 대쌍을 이루기 위해 이런 제목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난 감상은 먼저 어깨에 힘을 빼고 써서인지, 남는 게 별달리 없다는 점. 특히 내 인생과 무관한 책들에 대한 서평이 지나치게 많았다는 점, 그러나 너무나 유머러스하고 사랑스러운 소품이기도 하다는 점, 그다음은 나와 지구 정반대에 서 있는 인물 (유럽인/여성/노인) 임에도 불구하고 나와 많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쉼보르스카는 나처럼 토마스 만을 숭배하고 그의 사생활에 큰 관심이 있으며, 재즈를 좋아하고, 달리보다는 마그리트를 더 좋아한다. 이런 공통점을 발견하고 책에 읽은 내용을 나누는 재미가 과연 서평을 읽는 참맛이 아닐까?


쉼보르스카의 책을 읽고 난 뒤부터, 브런치나 트위터를 이용해 하다못해 서너 줄이라도 통 근간에 읽은 책들에 대한 감상을 남겨보려 한다. 감상이어도 좋고 수다여도 좋다. 방송사 특유의 과중 노동에 치여 나는 아무 생각이 없이 사는 줄로만 알았다. 방금 이 글을 쓰면서 내 머릿속에서 이렇게 많은 활자들이 숨 쉬고 있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개개인의 글은 소중하다. 저마다의 고유성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서평을 쓰기가 부담스러운 이유는 그 글을 통해 타인에게 영향력을 미치려는 욕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 없이 몸을 푸는 김연아처럼 일단 써보자. 남들이 '읽거나 말거나' (2019/11/22, 다음 취재를 고민하던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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