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는 나이 순이 아니잖아요

꼰대가 꼭 나쁜 건 아닌데

by Lagom



'이번 주 목요일 쯤 회식할까 하는데, 선약 있으신 분들 알려주세요~'

팀 단톡방에 팀장님이 보낸 메세지다. 메세지의 숫자가 사라지는 속도와 답장의 속도는 늘 반비례다.

나는 휴대폰을 손 위에 얹은 채 속으로 잠시 고민했다. 목요일은 정희를 만나기로 했는데...나는 며칠 전 큰 이별의 상처를 겪은 그녀에게 기분전환을 시켜주기로 했다. 하지만 팀 회식 때문에 일정을 조정해야 할 것 같다고 하면 (직장인인 그녀도) 분명 이해를 하리라.


"저는 목요일 괜찮습니다" 하고 오늘도 어김없이 나는 선두에 나서 답변을 했다.

내 메세지에 이어 김과장도, 박차장도 이대리도 줄줄이 답변을 달았다. 가장 막내인 사원 한 명 빼고는 말이다. 아직 그녀가 읽지 못했나 싶어 단톡방을 다시 보니 숫자 1이 다 사라진 상태였다. 어쩐다... 대답을 얼른 하라고 알려줘야 할까. 아니면 그냥 모른 척 있어야 할까. 그러다 김과장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내게 눈빛으로 '내가 알려줄게'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단어는 없었지만 그녀의 의도가 이해가 된 나는 웃음으로 답했다.


그리고 나서 몇 분 후 쯤일까, 단톡방 알림이 울렸다.

" 저는 목요일에 선약이 있습니다. 요가 수업이 있어요~ 다른 날도 가능할까요? 아니면 저는 이번 회식은 참석이 어려울 같습니다!" 입사 1년 차 신은수 사원의 메시지였다. 그 순간 우리 파티션에 있던 김과장, 박차장이 모두 고개를 들어 서로를 쳐다보며 당혹스러워했다. 사실 은수씨가 선약이 있다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각자 개인의 삶이 있고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를 포함한 80년대생 라인들) 당혹스러워한 지점은 첫째로 그녀의 솔직함이었고 둘째는 우리는 그러지 못했었는데 하는 자조감 때문이었으리라.




어디서나 핫한 그 이름, 꼰대


라떼는 말이야 하는 광고가 유행하면서 어딜가나 '꼰대'가 화두다. 심지어 꼰대 테스트까지 등장했다. 내가 기억하는 꼰대는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 시켜 타인도 그러하리라, 혹은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앞뒤가 막힌 보수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요즘은 훨씬 더 광범위하게 '꼰대'라는 말을 사용하는 같다. 일단 본인보다 나이가 많고, 자신과 뜻이 다른 사람 혹은 자신에게 어떤 충고나 지적을 하는 사람들을 뭉뚱그려 '꼰대'라고 비아냥거린다. 그러니까 누가 됐든 자신보다 앞선 세대라면 요즘은 '꼰대'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꼰대는 나이순이 아니라, 나와의 다름을 인정하는 능력의 부재로 나타난다.


김과장은 은수씨에게 출퇴근할 때 팀원들에게 인사를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가 꼰대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먼저들 해주셔도 되지 않나요? 하며 말이다. 김과장은 인사 예의 말하는데 이게 지금 꼰대 소리 들을 일이냐며 길길이 화를 냈었다.

'우리 때는 민주화를 위해 부당함에 대해 저항했어!' '개인 발전보단 회사 성장이 우선이지!' 하는 외침으로 자신들과 똑같은 라이프 패턴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분명 '꼰대'다. 세대마다 겪어온 시대 상황이 다르고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치 수학보다 미술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왜 너는 수학을 잘하려고 하지 않는거야?' 하고 강요하는 것과 같다. 부당함에 저항하는 것보다 현재 시스템에 편입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고, 회사는 급여를 위해 다닐 개인 발전이 중요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기본 예의나 업무 문제에 대한 조언은 '꼰대의 소리' 아니다. 인생에 등장하는 보편적인 문제들을 나보다 먼저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충고일 수도 있다.

김과장에게 꼰대라는 소리를 들은 이후로 그녀에게 업무적 조언을 하기가 꺼려진다고 했다. 조직 전체로 보면 손실이 나는 일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김과장에게 꼰대를 논했던 은수씨가 가장 최근 입사한 막내가 자기에게 아는 척도 안한다며 나에게 투덜거렸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내로남불인가. 이렇게 또 '젊은 꼰대'라는 새로운 꼰대 유형이 탄생한다.





70년대와 90년대 사이에 낀 세대 80년대생


위계적인 조직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지금의 꼰대라 불리는 세대들 조차도 애초에 그런 문화를 좋아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그 시대에는 상하질서나 사회적 규범에 순응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80년대생인 내 또래들은 97년도 IMF 위기를 겪으며 부모님들의 사업이 망하고, 실직하는 모습을 숱하게 보며 자랐다. 급격하게 부는 세계화 바람에 '영어'는 필수가 되었고 우리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곳에 취직하는 삶이 '성공'하는 삶이라고 굳게 믿었다. 자소서 수십개 또는 수백개를 쓰고 압박면접을 뚫고 입사한 회사에서는 또 다시 생존 싸움의 연속이었다. 우리 시대에 사회 생활은 '생존'과 연결되어 있었고 소위 '하라면 해' 가 당연시 되던 문화 속에서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조직에 순응했다. 윗세대들이 우리에게 그러했듯, 우리도 아랫세대에게 우리가 겪었던 문화를 함께 공감해주길 바라는지도 모른다.

나도 사회생활 초년 시절엔 상사가 퇴근하지 않으면 나도 쉽게 퇴근을 하지 못했고 도대체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일이지만 해야 한다고 하면 '해야하는구나'하고 했다. 팀장이 저녁 회식 날짜를 잡으면 '선약이 있습니다' 하는 말 대신 친구에게 연락해 선약을 조정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꼭 옳다고 생각하진 않았으나 조직에 남기 위해선 으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대는 또 한 번 바뀌었고, 90년대생 이후의 친구들은 우리 세대와는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솔직히 나는 그들이 부럽다. 퇴근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퇴근을 한다. 팀장이 회식을 잡으면 선약이 있다고 말한다. 일정이 빡빡한 업무가 주어지면 그 일정에 맞춰 야근을 하기보단 일정을 재조정해달라고 요구한다. 임원들의 성과급은 왜 그렇게 직원들과 차이가 나는지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가 하지 못했던, 아니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에 대해서도 그들은 거침없이 생각을 드러낸다. 어떤 면에서는 그들 덕분에 우리도 억눌렸던 것들이 조금씩 해제되어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직 위계는 있어야 하지만 인간 위계는 없어야 한다. 회식 약속은 당일이나 그 주에 갑자기 잡기보단 미리 이야기를 하고 가능한 날짜에 투표하는 것이 좋다. 우리 모두 성인이기에 자신이 맡은 업무에 지장이 없다면 휴가를 쓰고 싶을 때 쓰면 된다. 일이 끝났다면 눈치 볼 것 없이 퇴근해도 된다. 다만, 자신보다 윗 세대라고 해서 모조리 다 꼰대라 규정짓지는 말자. 꼰대는 비단 나이의 문제는 아니니까 말이다.


은수씨의 답변을 본 나는 단톡방에 메시지를 썼다.

"그럼 투표로 회식 날짜를 다시 정해볼까요? 저도 생각해보니 목요일에 선약이 있었네요"

의외로 팀장님은 흔쾌히 답하며 카카오톡에 투표 기능을 만들어 직접 올리셨다. 벽을 허무는 방법은 의외로 가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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