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전전긍긍하는 그대에게

by Lagom



연애는 사랑 앞에 설치된 회전문이다 열정으로 붉어진 볼에 입 맞추는 순간에도 머릿속의 회전문은 몇바퀴씩 돌아간다. 지금 눈 앞에 있는 여자의 외모와 지적 수준 을. 남자의 성격과 경제력을 체크하면서, 이 사랑 안으로 완전히 들어갈 것인가 아니 면 사랑이라는 감정만 스치고 다시 친밀한 타인의 위치로 돌아 나올 것인가 계산하는 것이다.

- 2006, 소울메이트



2006년에 엄청난 마니아 층을 형성했던 드라마 '소울메이트' 조진국 작가가 써낸 책에 있던 글귀다. 20대였던 나는 이 문구가 꽤나 인상깊었는지 일기장 한편에 구구절절 써 놓았다. 글귀에 밑줄도 긋고 동그라미도 친 흔적이 얼마나 이 글귀에 내가 격하게 공감 했는지를 떠올리게 한다.


나는 스무살에 첫 연애를 했다. 그리 길게 만난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처음은 처음이니까. 지금은 스마트폰이 있어 실시간으로 연락하고 SNS로 상대방의 취향, 활동반경, 취미 등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엔 그렇지 않았다.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다가 전화를 하고, 만나서 대화를 하며 상대방을 찬찬히 알아갔다. 요즘처럼 '언제든지 응답 가능한 상태'는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설레임이 있었던 것 같다.


3-4개월을 만나다 나는 그 연애를 그만두었다. 나를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도무지 그의 행동은 내가 생각하는 '사랑'과는 거리가 멀어보였기 때문이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어떤 벽이 우리 사이에 있었다. 20대 풋내기 연애가 얼마나 깊고 진지했겠냐마는 그래도 사람에 대한 마음은 나이 불문하고 진실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는 마치 어린아이가 사탕이나 새로 나온 장난감을 좋아하는 것처럼 나를 '좋아하는'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아마 그 감정이 '사랑'이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호기심으로 벅차오르는 그 감정을 어찌하지 못해, 성적인 호기심을 참을 수 없어 툭 튀어나오는 '사랑해'는 분명 진정한 사랑과는 차이가 있다.


좋아함과 사랑함의 차이


굳이 공식을 따져보자면(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좋아함 = 연애 < 사랑 이지 않을까 싶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랑한다, 와 좋아한다의 표현을 구분해서 사용한다. 이쯤되면 뭘 그렇게까지... 하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랑한다는 말 속에는, 그 사람이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그 모든 것들 (외모, 돈, 명예 그리고 그가 갖고 있는 부수적인 것들 모든 것)을 제외한 오직 그 한 사람의 영혼을 지켜본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사랑의 시작엔 이유가 없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맛있는 음식은 맛있으니까 좋아하고, 좋은 차는 연비도 브랜드도 좋기에 좋아한다. 하지만 사람은? 정말 괜찮은 사람이지만 끌리지 않는 사람도 있고 아무리 봐도 괜찮지 않은데 사랑하는 마음을 멈출 수가 없는 사람이 있다. 이런 모순들은 사랑이 더욱 특별하고, 낭만적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그런데 또 희한한 것은 이별엔 이유가 꼭 있다는 것이다. 하나도 아니고 여러가지일 경우도 많다(웃음)


첫 연애와 첫 이별 후에 몇 번 더 짧고 긴 연애를 반복하다가 한 남자를 만났고 그와 10년을 사랑했었다. 그와 만난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변곡점을 겪었고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배웠다. 비록 지금 우리는 각자 갈길을 가게 되었지만. 그와의 만남을 떠올려보면,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조금만 내놓기 위해 애쓰는 행동들은 하지 않았다. 서로에게 믿음과 신뢰를 주기 위해 노력했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했다. 이 남자가 정말 나를 사랑할까? 왠지 밑지는 기분이 드는데? 하는 '밀당'은 나에게 해당되지 않았다. 그렇게 10년을 사랑했기 때문에 우리의 헤어짐은 더욱 담백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 남녀간의 사랑은 가고 서로에 대한 인간애가 우리 사이의 시간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게 사랑일까?


사람의 마음은 항상 궁금하다. 특히, 내가 호감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에게 마음은 있는 걸까? 혹은 나같은 사람이 그의 어장 안에 열심히 수영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스마트폰을 들었다 놨다, 카톡의 1을 확인했다가 그의 SNS 팔로워들을 하나씩 훑어보기도 하는 등 밤새 전전긍긍하며 사랑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나도 많은 경험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우린 모두 진실해진다. 그 진실함은 어떤식으로든 상대방에게 혹은 나에게 전달된다. 정말 나의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 하기는 싫고 남주기는 아까운 마음으로 나를 요리조리 찔러보는 사람이라면 당장 그 관계를 그만두어야 한다. 이런 관계를 지속하면 결국 좀 먹는건 내 마음과 정신 뿐이다.

사람의 마음은 신기하게도 계절을 탄다. 봄을 타거나, 여름을 타거나, 가을을 타거나 혹은 겨울을 타기도 한다. 옷과 낮밤의 길이가 바뀌는 시간을 얼마나 같이 보냈는지, 계절마다 변하는 변덕스러운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같이 맞출 수 있었는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깊이를 가늠하는데 꽤 괜찮은 기준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면 덜컥 발부터 담그기 전에 그 사람의 우주와 세계를 먼저 찬찬히 알아가는 것도 방법이다. 누군가 그 사이 채가면 어떡하냐고? 어쩔 수 없다.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어있으니, 누군가 채간다면 그건 당신과의 인연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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