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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 Jan 08. 2023

두줄이면 다인 줄 알았지

테스트기 두 줄이면 임신 끝인 줄 알았던 때 

 


나는 언제 꼭 결혼해야지! 하는 계획은 없었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나타나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동생이 먼저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다들 나에게 '괜찮냐'라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 질문에 나는 속으로 '괜찮지 않을 건 뭐가 있지?' 하는 의아함을 가졌다. 내 인생에 결혼은 그리 큰 비중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소개로 만난 남자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극강의 '티키타카' 즐거움을 경험하며 무엇에 홀린 듯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게 되었다. 첫 만남부터 결혼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6개월. 그렇게 내 인생에 첫 번째 전환점이 시작되었다. 


 연애 기간이 짧았던 탓에 신혼 2년은 '연애하듯' 보냈다. 함께 여행하고 맛집을 찾아다니며 말 그대로 신나게 놀았다. 결혼 다음은 자연스레 2세 계획이 된다는 보통의 공식을 우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나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좋았고, 인정받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하며 자리를 지켜내고 있었기에 출산과 육아로 인한 단절이 두려웠다. 나의 능력과 사회생활에 대한 의지를 남편 또한 응원해주었기에 2세 계획은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펼쳐 봐야겠다고 생각만 해 놓은 책과 같았다. 


 그렇게 결혼 생활 3년 차에 들어서던 21년 봄날에 우리에게 아기천사가 찾아왔다. 임신 테스트기 두 줄을 처음 봤을 때 묘한 기분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신기하면서도 떨떠름했던 그 순간. 그 당시 나는 이직이 결정되어 있었고 입사 3주를 남겨놓은 시기였다. 생명이 찾아왔다는 사실은 좋았으나, 한편으론 '아, 어떡하지'하는 걱정이 든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옮겨가기로 한 회사는 나의 임신에 크게 개의치 않는 듯했다(실제론 인력 배분에 걱정을 하셨을 것 같지만 말이다) 그렇게 나는 임신을 한 상태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임신 확인한 게 5주. 병원에선 새까만 점 같은 게 아기집이라고 했다. 나는 임테기 두줄이면 바로 아기가 뿅 하고 보이는 줄 알았더니 그것도 단계가 다 있더라. 먼저 아기집이 지어지고 그다음엔 아기 도시락인 '난황'이 생기고 그리고 아기가 보이는 순서였다. 초음파 사진에 점을 가리키며 남편에게 '오빠 이게 아기집이래'하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작은 점이 아기가 된다니, 우리는 설렘과 걱정을 동시에 느꼈다. 


임신을 알게 된 이후 나는 평소처럼 생활했다. 매일 아침 하던 웨이트를 계속했고, 등산도 다녔고 주말에 날 좋을 때면 1-2시간씩 산책도 했다. 그게 문제였던 걸까. 6주에 들어서자 선홍색 피가 비쳤다. 불안한 마음에 원래 예약보다 조금 일찍 병원을 방문했다. 의사는 가끔 초기엔 피가 보일 수도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난황이 생겼네요' 하고 이야기했다. 아기도 아주 쪼끄맣게 보였고 다음 주엔 심장 소리를 들으러 오라고 했다. 다행히 피는 더 이상 비치지 않았고 그렇게 1주일이 지났다. 하지만 지난번보단 조금 더 많은 피가 비쳤고 이번에도 놀란 가슴에 일찍 퇴근하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때 처음 심장소리를 들었다. 아직 형체도 잘 보이지 않는 작은 생명체의 심장소리. 쿠슈쿠슈 하는 소리를 내며 나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아기도 잘 있고 심장소리도 들었으니 크게 걱정하지 말라던 의사 선생님. 크게 해 줄 것은 없으니 무리하지 말고 쉬라고만 하셨다. 그리고 2주 뒤 예약을 잡아놓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은 유난히 피곤했다. 너무 긴장한 탓일까, 약간의 식은땀이 났고 나는 저녁 일찍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지난번과 달리 피는 계속 보였다. 조금 더 붉고 많은 양. 병원을 가야 하나 싶었지만, 어제 다녀왔고 의사 선생님이 착상혈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 했으니 그런가 보다 하고 업무를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가 되면서 배 통증이 시작되었다. 뭉근하고 뻐근한 그런 기분 나쁜 통증이었다. 앉아 있는 것이 힘들어 휴게실에서 잠깐 누워있었지만 배가 찢어질 듯 아팠다. 그리고 다시 간 화장실에서 생리처럼 붉은 혈이 변기를 가득 적셨다. 물컹한 덩어리도 보이는 것이 '아 이건 무언가 잘못되었다' 싶은 생각이 들었고 남편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도착 후 초음파를 보았던 때가 생각난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던 작디작은 아가가 아기집과 함께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었다. 초음파를 보시던 선생님께서 '아기집이 흘러내린 것 같아요' 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때부터 나는 울음을 토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임신을 간절하게 원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에겐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자만했던 일이 닥치자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 내가 너무 무리해서 그런 걸까, 이직하는 이 시기에 찾아오다니 조금만 더 있다 찾아오지 하는 생각을 한 탓일까, 어제 너무 많이 걸어서 그런 걸까 등등 모든 것이 내 탓처럼 느껴졌다. 초기 유산은 흔하고 대부분 염색체 이상이라 산모 탓은 아니라고 선생님은 위로를 건네셨지만 나는 모든 게 내 잘못같이 느껴졌다. 


 다음날 나는 소파술을 했고,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고통을 경험했다. 마취가 빨리 풀려 통증도 심했는 데다가 부종도 찾아와 몸이 많이 힘들었다. 밥 먹다가도 울었고 자다가도 울었고 양치하다가도 울었다. 내 몸도 아팠지만 지키지 못했다는 아기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마음이 많이 힘들었던 시기였다. 크게 계획이 없었던 나도 이렇게 힘든데, 임신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 슬플까 싶었다. 


 다행히 우리 부부는 그 힘든 시기를 서로 다독이며 그 해 여름과 가을을 보냈다. 그리고 그 해 겨울 다시 우리에겐 아기 천사가 찾아왔다. 한 번 유산했던 경험 때문에 병원 가기까지 또 정말 많이 초조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선홍색 피가 비쳤고, 병원에서 아기집을 확인하기도 전에 생리 같은 붉은 혈이 시작되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런 경우를 화학적 유산, 화유라고 부른단다. 수정란이 어딘가 착상을 하긴 했지만 아기집까지 발전하지 못하고 중단된 상태였다. 이렇게 두 번을 겪고 나니 나는 임신이 두려워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임테기 두줄만 보면 아이를 낳는 그 순간까진 그냥 시간이 저절로 흘러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 두 번의 경험을 통해 한 생명을 품는다는 것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스스로도 '부모가 될 자격이 있을까' 내가 정말 '잘 키울 수 있을까'하는 여러 가지 질문을 깊이 있게 던지게 되었다. 


이 시간을 지나며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것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대화를 통해 둘 다 모두 조금 더 성숙해졌던 것 같다. 22년을 맞이하며 우리는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하며 즐겁게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두 번의 유산으로 내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었기에 당분간 2세 계획은 잊고 지내기로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좋아하는 운동도 함께 하고 여행을 다니며 22년 봄, 여름 그리고 가을의 계절을 보냈다. 


 그리고 그 해 가을 끝자락에, 우리에겐 다시 아기천사가 찾아왔다. 이번엔 그것도 두 명이나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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