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이구나! 하고 알았던 건 임신테스트기를 하기도 전이었다. 생리 예정일이 다가올 때쯤부터 속이 안좋고 체한 느낌이 계속 있었다. 하루는 친한 학교 선배가 소고기를 사주겠다고 해서 신나게 나갔는데, 몇 점 먹지도 못하고 화장실로 가서 모두 토해냈다. 이 때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간 생각은 아 - 임신인가? 였다.
임신을 확인한 5주부터는 속이 더부룩한 불쾌한 기분이 시작되었는데, 이 느낌은 6주 7주 들어서며 더욱 심해졌다. 입덧은 여러 종류가 있다. 토덧, 양치덧, 침덧, 먹덧 등등. 나는 전형적인 '토덧'이었다.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반사작용으로 5분 이내에 화장실로 달려가 모두 게워냈다. 심지어 아무것도 안먹은 날에도 토를 했다. 인간의 위액은 이런 색이구나 하는걸 알게 된 시간이었다.
내가 먹은 음식물을 다시 확인하는 그 과정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우웩, 우웩'하며 토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뿜는다'가 더 맞는 표현일 것 같다. 우스갯소리로 친구들에게 나는 요즘 '용가리 분수토'를 한다고 했는데, 정말 그냥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한번에 쏟아지는데 이 때 눈물 콧물까지 다 빠진다. 토하는게 무서워서 음식을 먹지 않게 되었고, 입맛도 점점 없어져가며 나는 임신을 했음에도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기에 이 과정들이 더욱 힘들었다. 후각도 예민해져 사람들이 사온 샌드위치나, 그들이 쓰는 향수에도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식당에 가서 밥먹는 것도 힘들어 (한숟갈 뜨자마자 달려가다보니) 혼자 먹거나, 같이 먹을 땐 먼저 일어나기도 했다. 먹은게 없으니 기력이 없어 퇴근하고 집에 오면 쇼파에 누워있는게 일쑤였다. 너무 힘든 나머지 수액을 두어번 맞기도 했다.
물론 입덧 없이 지나가는 임산부들도 많다. 정말 그건 축복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주차가 지날수록 나의 입덧은 점점 심해졌고, 10주부터 피크를 찍기 시작해 16주까지 지속되었다. 21주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나는 토덧을 한다. 그나마 다행인건, 16주까지는 하루에 서너번씩 토했다면 요즘은 일주일에 서너번만 토한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
임산부 단축근로는 12주 이내, 36주 이후에 하루 2시간씩 근무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제도이다. 나도 심장소리를 듣고 임신확인서를 받은 6주부터 단축근로를 신청했다. 하지만 이 혜택을 온전히 누리진 못했다. 시스템상으로 근로시간을 막은 것도 아니었기에 정상근무는 얼마든지 가능했고, 업무는 줄어들지 않으니 단축근로로 퇴근해야 하는 시간에 회의가 잡히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나는 아침 8시에 출근했으니 원래라면 3시에 퇴근할 수 있어야 했지만 빨리 퇴근해봐야 5시 혹은 6시에 가는 일도 많았다. 여기에 입덧까지 계속되니 삶의 질이 급격히 저하되었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견딜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은 한번 씩 병원가면 들리는 우리 쌍둥이들의 심장소리였다. 이렇게 작은 생명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걸 보면 내가 이렇게 고통스러운건 참을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모성본능이 생기는 것일까...?
한 인간을 만들어내는데 이렇게 많은 고통과 시간 그리고 인내가 필요하다는걸 처음 깨달았다. 뱃속에 품고 있는 280일 이후엔 또 성인이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보내야 할까. 변기통을 붙잡고 토하며 나는 문득 엄마가 많이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