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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 Oct 02. 2023

누구에게나 산후우울증은 있다


Image by Eugenia Remark




산후우울증은 호르몬 문제로 산모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평소 우울감과는 거리가 멀었던 성격인지라,

나는 산후우울증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만만했던 내게도 산후 우울증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조리원 입소 다음날 남편이 출근을 위해 집으로 돌아가고 난 후

TV를 보며 앉아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 뒤로 눈물은 시도 때도 없이 흘렀다.

밥 먹다가도 눈물이 났고, 유축기를 가슴에 대고 있을 때도 눈물이 났다.

내 의지대로 감정을 조절할 수가 없었다.

이런 감정은 처음이라 너무 당혹스러웠다.

그래, 이건 다 호르몬 때문이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했지만

마음속 울적함은 점점 커져만 갔다.



얼굴은 수술 후 맞은 각종 수액들로 퉁퉁 부어있었고

둥이들이 방을 뺀 내 배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늘어져 있었다.

임신 기간 중 착색됐던 목, 겨드랑이, 배 피부는 유난히 더 까매 보였고

수술 부위는 걸을 때마다 기분 나쁜 뻐근함이 느껴졌다.

임신 내내 나를 괴롭혔던 손 저림, 손가락 강직, 손붓기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올지,

돌아오기는 할지 나는 모든 게 불안하기만 했다.


조리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온 후, 나의 우울증은 조금 더 심해졌다.

쌍둥이를 혼자 케어한다는 것은 정말 상상 이상의 일이었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고 낮에도 둥이들이 번갈아 깨거나 동시에 우는 일이 잦아

쪽잠을 자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그렇게 수면 부족이 쌓이면서 점점 더 예민해졌고

주위의 별거 아닌 한마디에도 크게 서운함을 느꼈고 남편과도 사소한 일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새벽 수유를 하며 졸다가 젖병을 아기 볼에 한참 갖다 대거나 젖병을 놓치기 일쑤였고

잠결에 젖병 조립을 잘못해 분유가 질질 새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기저귀를 갈며 울부짖기도 하고

동시에 둥이들이 울어댈 땐 알아듣지도 못하는 아가들에게 하소연을 해가며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지냈다.


SNS를 보면 다들 아가들을 예쁘게 놓고 깔끔한 배경에

사진도 잘 찍어 주는 것 같은데, 그 시기 나는 아가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정말 본능적으로- 엄마라는 이유로 책임감과 의무감에 때가 되면 맘마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울음을 달래며 하루를 보냈다.


이 시기를 겪고 보니, 이때 주위 사람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때 나를

응원해 주고 붙잡아준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를 새삼 깨닫는다.

모두가 '아가들은 잘 있니?' 하는 안부를 물을 때

'너는 어때? 몸은 괜찮아?' 하고 나를 걱정해 주는 물음을 던져주는 고마운 이들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하루는 보건소에 돌봄 서비스 신청을 위해 전화를 했는데,

나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직원이 전화기 너머로 '선생님, 괜찮으세요?' 하고 물었다.

이 물음에 나는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설움과 울음이 한 번에 터져 나오고 말았다.

이렇게 위로는 내가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들에서 시작되었다.


스스로 우울증이라는 걸 인정한 후,

산후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해 내가 했던 작은 노력들은

남편이 퇴근 후 돌아오면 아이들을 맡기고

아주 길게- 꽤 오랫동안 샤워를 하는 것이었다.

뜨거운 물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흐르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두 번째는 둥이들이 밤잠에 들면 30분이라도 밤산책을 했다.

좋아하는 음악도 듣고, 신간이 어떤 게 나왔나 온라인 서점도 들락거리며

온전히 '나'를 위한 것들을 짧게나마 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매일같이 반복하며 어느덧 백일이 찾아왔고

그쯤 되어서야 나는 아가들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울증 증세도

여전히 나는 복직 후 나의 모습이 어떨지

나의 개인적인 목표를 앞으로 이루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선 두려움과 의문이 쌓여있다.


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기보단

지금 이 순간, 아가들의 성장과정을 눈에 담고

나를 보며 까르르 웃는 웃음을 마음에 담아 두기로 했다.


인생의 지금 이 시기에, 내게 주어진 역할과 의무를

충실히 하다 보면 다시 또 기회는 찾아오겠지 - 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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