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안녕하세요, 채다은 변호사입니다.
며칠 전, 전화상담을 받았던 일이 생각나서 포스팅합니다.
참고로 저희 사무실은 대표변호사인 제가 직접 전화상담을 합니다. 저희 사무실은 사무장이 없거든요.
상담내용은 '제가 술에 취해서 걸어가다 벌어진 일이라,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변호사를 선임해야 할까요?'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일로 조사를 한다는 것인지 내용을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손에 쥐고 있던 물건으로 지나가던 여성을 툭 쳤다는 내용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지요.
"그래서 혐의가 뭔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모른다"고 하더군요.
제가 다시 설명드렸습니다. "말씀해주신 내용으로는 폭행이나 강제추행이 가능할 거 같습니다. 그런데
그걸 정확히 모르신다고 하니, 지금 바로 담당 수사관에게 전화를 해서 '내 혐의가 뭐냐'고 물어보세요.
그래서 '폭행'이라고 하면 변호사 선임하지 말고, 변호사 선임할 돈으로 차라리 피해자랑 합의를 하세요.
그런데 만약 '강제추행'이라고 한다면, 변호사를 선임해서 대응하셔야 합니다. 그 이유는 폭행은 반의사불벌죄이기 때문에 합의를 하면 사건이 '공소권없음'으로 불기소처분으로 끝나버리지만, 강제추행은 합의를 해도 사건이 끝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전과가 남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 지금 바로 경찰에게 전화해서 혐의부터 뭔지 물어보세요."
몇 분 뒤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변호사님, 강제추행이라고 합니다." 그 말을 시작으로 그 분은 저를 바로 선임하였습니다.
아마도 '폭행이든 강제추행이든 뭐든 당신은 지금 큰일났으니 당장 변호사를 선임해라, 내가 훌륭한 변호사이니, 당장 만나서 얘기하자.' 그런 취지였다면 그 분은 저와의 통화를 마치고, 다른 사무실에 전화를 더 돌렸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때는 '되든 안 되는 사건은 문의오는 거 다 수임해서 돈을 벌려고 노력하는 게 대표변호사로서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싶을 때도 많습니다.
굳이 나에게 전화를 준 분들에게, 되지도 않을 사건은 '변호사 선임 하셔도 달라질 게 없으니, 그냥 혼자 하셔도 될 거 같다.'고 하거나 너무 돈이 없는 분들에게는 '변호사 선임할 돈 아껴서 피해자랑 합의하고, 정 상황이 안 좋아지면, 국선의 도움을 받으시라'고 하는 경우, 솔직한 이야기로, 돌아서서 스스로에게 답답해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어차피 다른데서 안되는 건이어도 된다고 말하면 선임할 텐데, 그냥 내가 한다고 할 걸 그랬나'
생각이 들 때도 많아요. 그렇지만 저는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늘 그래도 스스로에게 당당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했는데 사건이 잘 안 되는 경우도 있지요. 그런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특히 합의 같은 경우,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피해자가 합의해주지 않겠다고 하면 방법이 없는 것이니까요.
그러한 경우를 제외하고, 사건에 대해 제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말을 하면서 의뢰인의 인생이 달린 일을 맡아 헛된 기대를 안게 해서 수임을 한다는 건 너무 무책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 때면 곧장 생각을 고쳐서 '당장 지갑이 가볍더라도 맞는 일을 했다'며 스스로 칭찬해 주게 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