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남성 A씨(31)가 여성 역무원 X씨(28)을 살해했다는 기사가 세상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피해자 X는 지난해 10월 성폭법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 촬영물등이용협박) 혐의로 가해자 A를 경찰에 고소하였고, 이후 3개월이 지나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한 차례 더 A를 고소했습니다.
A는 X에 대한 위와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고, 선고 하루 전 날에 피해자의 근무지를 찾아가 1시간 넘게 피해자가 지하철역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피해자를 살해하였습니다.
처음 사건이 알려지면서는 강남역 살인사건처럼 공중장소에서 묻지마 살인이 벌어진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이후 형사재판 진행 중에 가해자인 피고인이 해당 사건의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는 것이 알려지며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더욱이 이 사건은 선고기일 바로 전날 벌어진 일이었으며, 피고인이 오전에 법원에 반성문을 제출하고 오후에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많은 사람들을 경악스럽게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시민들은 피고인이 불법촬영 등 죄를 저지르고 이후 스토킹처벌법을 위반하는 범죄를 계속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왜 피고인에 대한 구속을 하지 않았던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실 피고인은 작년 10월 9일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가 기각된 사실이 있었습니다. 당시 혐의는 카메라등이용촬영, 촬영물등이용협박 등 성폭력처벌법위반이었는데, 법원은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형사소송법은 제70조 제1항에서 피의자나 피고인을 구속할 수 있는 요건으로 ①피고인에게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②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거나, ③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법원은 이 내용을 이유로 피고인 A를 구속하지 않고 수사와 재판을 진행하도록 결정한 것이었지요.
그러나 이 사건에서 A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은 다수의 형사사건을 맡아온 저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결과입니다.
피의자/피고인 구속의 사유는 위에서 이야기한 3가지 중 하나의 요건이 충족되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다시 말해,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거나, 피고인이 도망할 염려가 있다면 구속 수사를 하고, 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도록 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법원이 놓친 게 있는 것 아니냐 싶은 것이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70조 제2항의 내용인데요, 법원은 위 구속사유를 심사하면서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우려를 고려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형사소송법
제70조(구속의 사유) ① 법원은 피고인이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피고인을 구속할 수 있다.
1. 피고인이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2. 피고인이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3. 피고인이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
② 법원은 제1항의 구속사유를 심사함에 있어서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
이 사건에서 가해자는 피해자와 같은 직장을 다니고 있는 자로서 피해자에 대한 개인정보를 충분히 알고 있는 사이였습니다. 한번도 만나지 않은 사람이 피해자여서 가해자가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는 경우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죠.
실제로 저희 사무실에서 진행했던 사건 중에서 피의자와 피해자가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는 점을 들어 경찰 수사관이 영장을 청구하지 않기도 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속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우려가 없기 때문이지요.
실무에서는 이런 부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나하나 따져볼까요? 요즘 일정한 주거가 없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증거를 인멸할 증거요? 휴대전화 사용 범죄는 사실 휴대전화만 압수하면 더이상 피의자가 인멸할 증거가 없거나 인멸이 가능하지 않은 게 현실이고요. 통상의 경우 도망할 염려가 있는지 여부는 여러 정황을 통해 피의자나 피고인의 심정을 유추할 수밖에 없는 추상적인 표현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중한 범죄가 선고되어 실형을 면하기 어려운 사건(범죄의 중대성)이거나 피해자의 집이나 연락처를 알고 있어서 자칫 피해자에게 보복을 할 수 있지 않나(피해자에 대한 위해 우려) 등을 살피는 것이 해당 피의자나 피고인을 구속시킬지 여부를 판단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합의를 요구한 것으로 보아 무죄 주장을 한 것으로 보이지 않으므로, 수사 당시 범죄의 혐의점이 소명되었다고 볼 여지가 다분합니다.
징역 9년을 구형했다는 건 가해자에게 전과가 있거나 초범인 경우 죄질이 상당히 좋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구속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통상의 경우와는 조금 다르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저 역시 형이 확정되기 전에 구속을 시키는 것을 최대한 지양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사람이며, 불구속수사 및 불구속 상태로 재판받을 권리에 대해 깊은 동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대법원 예규 중 법정구속 부분이 개정되어 웬만해서는 형이 확정되지 않은 피고인에게 법원이 법정구속을 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으며, 이 역시 바람직한 내용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과 추세를 반영한다 하더라도, 이 사건은 검사가 9년을 구형할 정도로 중대범죄에 해당하고, 피해자에 대한 보복이 얼마든지 가능한 사이라는 점을 따져본다면 당시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 사건은 수사단계에서 충분히 구속이 되었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의견입니다. 장기 징역형을 면하기 어려운 경우 피의자로서 혹은 피고인으로서 구속된 기간은 형기에 산입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또한 구속상태의 수사나 재판 진행은 기간에 있어서 제한이 있습니다. 따라서 소송경제의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이 사건은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우려를 너무 가볍게 보았다는 점이 너무나도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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