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 해당 여부
A는 여자친구인 X의 휴대전화에서 X가 이전 남자친구와 주고받은 카카오톡 대화방에 올린 X의 나체 사진 등을 발견하고 카카오톡 전달기능을 이용하여 A와 X의 카카오톡 대화방으로 이를 전송하여 보관함으로써 X가 자신의 신체를 직접 촬영한 촬영물을 X의 의사에 반하여 소지하였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일단 판결문에 나와있는 공소사실을 적어보긴 하였는데 쉽게 이해가 안 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쉽게 한 번 다시 이야기해 보자면, 피고인이 자신의 여자친구의 휴대폰 카카오톡 대화를 살펴보던 중, 여자친구가 전 남자친구에게 자신의 나체 사진 등을 보낸 걸 알게 된 겁니다.
그래서 피고인은 그냥 넘기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여자친구의 나체 사진을 자신과 여자친구의 대화방으로 '전달'했던 것입니다.
판결문에 나와있진 않지만, 아마도 행위 이후에는 '너 전남친이랑 이런 거 주고받았냐?'며 다툼이 있었을 거 같죠?
위 피고인의 행위에 대해 검사는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제4항의 '소지'죄에 해당한다며 사건을 재판으로 넘긴 것입니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①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제1항에 따른 촬영물 또는 복제물(복제물의 복제물을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을 반포ㆍ판매ㆍ임대ㆍ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ㆍ상영한 자 또는 제1항의 촬영이 촬영 당시에는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지 아니한 경우(자신의 신체를 직접 촬영한 경우를 포함한다)에도 사후에 그 촬영물 또는 복제물을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반포등을 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④ 제1항 또는 제2항의 촬영물 또는 복제물을 소지ㆍ구입ㆍ저장 또는 시청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판결문을 읽으면서 참 흥미로운 내용이다 싶어서 소개하게 되었는데요.
검사가 주장하는 혐의인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제4항의 소지는 제14조 제1항 및 제2항의 촬영물 또는 복제물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우선, X의 나체 사진은 X가 자발적으로 촬영하여 전 남자친구에게 보낸 것이기 때문에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제1항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해당 사진이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제2항의 촬영물 또는 복제물에 해당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습니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제4항에서 정한 소지·구입·저장 또는 시청의 대상은 같은 조 제1항 또는 제2항의 행위에 의하여 생성된 촬영물 등에 한정되고, 그중 같은 조 제2항의 각 행위에 의하여 생성된 촬영물 등은 모두 반포·판매·임대·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의 행위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법규정의 문언과 체계상 자연스러운 해석인 점,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제2항에서 '반포'와 별도로 열거된 '제공'은 반포에 이르지 않는 무상 교부행위로서 반포할 의사 없이 특정한 1인 또는 소수의 사람에게 무상으로 교부하는 것을 의미하고, 법령에서 쓰인 용어에 관해 정의규정이 없는 경우 원칙적으로 사전적인 정의 등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의미에 따라야 하는데, 위 조항에 열거된 '제공'을 비롯한 '반포', '판매', '임대', '전시', '상영'은 모두 국어학적 의미에서 대상물을 타인의 접근이 가능한 상태로 제시하는 개념을 내포하고 있고, 그중 '제공'만을 사전적 정의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하였다고 볼 만한 자료는 찾을 수 없는 점, 디지털 성폭력 범죄에 대하여 성폭력처벌법이 촬영물을 제작하는 행위(제14조 제1항), 촬영물 또는 복제물을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유포하는 행위(제14조 제2항), 제작행위 또는 유포행위를 통해 촬영물 또는 복제물에 대한 접근을 실현하는 행위(제14조 제4항)으로 단계적으로 구분하여 규율하고 있는 법규정의 체계에 비추어 보더라도, 같은 법 제14조 제2항에서 말하는 '제공'이란 촬영물 등에 대한 점유 내지 지배를 자신이 아닌 특정한 1인 또는 소수의 사람에게 이전하는 행위로 해석함이 타당한 점, 설령 타인의 휴대전화를 열람하여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진 등을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자신의 휴대전화로 전송한 행위에 대한 가벌성이 크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자신에게 촬영물 등에 대한 점유 내지 지배를 이전한 행위까지 '제공'에 해당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법률에 사용된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를 벗어나 피고인에게 불리한 확장해석에 해당하여 허용될 수 없는 점 등을 종합하면, 위 촬영물은 X가 자신의 신체를 직접 촬영하여 이전 남자친구와의 카카오톡 대화방에 업로드한 것으로 촬영 및 최초 업로드가 X의 의사에 반하였다고 보이지 않고, 이후 피고인이 이를 피고인과 X의 카카오톡 대화방으로 전송한 행위는 '반포'나 '제공' 어느 행위에도 해당하지 않으므로, 위 촬영물이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제1항 또는 제2항의 행위에 의하여 생성된 것으로볼 수 없어 같은 조 제4항에서 정한 소지 등의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서울고등법원 2023. 4. 13. 선고 2022노3389 판결 참조
결국 법원은 X가 사진을 스스로 촬영하여 전 남자친구에게 전송하였고(제14조 제1항에 해당하지 않음), 이 사진을 피고인이 자기 자신과 X 단 둘이 대화하는 카카오톡 대화방에 전달한 것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접근가능한 상태에 두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제14조 제2항의 반포, 전시, 상영 등에도 해당하지 않음) 해당 사진은 제14조 제4항의 대상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무죄라고 판시한 것입니다.
조문을 체계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이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사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