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괜스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워킹홀리데이는 못 가니까, 대신 어학연수라도 다녀올 수 있지 않을까?'
한국에 돌아온 뒤, 영어 공부를 나의 일정 중 하나로 추가해 보며,
하루하루를 차곡차곡 쌓아가려고 했다.
현실적인 여건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 그리고 10년째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나의 주인님, 고양이.
그 존재들을 두고 떠나기엔, 책임과 의무를 다한 뒤에 가고 싶었다.
어쩌면 실제로 가지 않더라도,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나 자신에게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줄곧 들어주시던 심리상담사 선생님께서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는, 해외를 가도
누구를 만나도, 분명 만족하지 못하고 똑같을 거예요."
그 말이 너무 뼈 깊이 박혔다.
사실 나는 늘,
더 이상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남은 가족도 없고, 장밋빛 미래도 없다.
지금의 삶에서는 희망조차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생각들은 아마도 아주 오래전, 어린 시절부터 내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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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님의 말은 내가 제일 두려워했던 부분을 건드렸다.
평소엔 무심한 듯 감춰두고 살아왔던 그 감정들.
‘만약 해외에서 살아보더라도 한국에 대한 향수를 못 이긴다면?’
‘인종차별, 언어 장벽… 말 통하는 사람 하나 없어 외로움에 지친다면?’
‘결국 그곳에서도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또 스스로를 괴롭힌다면?’
그리고 마지막엔,
‘해외도 안 된다면... 그럼 내 삶의 해답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정말로 나는 그 끝에서 삶을 끝내는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몰라.’
내 안에 있었던, 가장 깊고 날카로운 두려움들이
그 말 한마디에 무방비하게 드러났다.
나는 안다.
내 괴로움의 근원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것을.
장소가 어디든, 상황이 어떻든
내가 나를 이기지 못하면 그 어떤 삶도 버거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렇게 한동안 꿈꿨던 어학연수,
잠시나마의 해외살이에 대한 설렘은
바사삭, 잿더미처럼 흩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마음속에 다시 울려오는 질문들.
나는 왜 나의 삶에 만족하지 못할까?
왜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하며, 완벽하려 애쓸까?
왜 스스로에게 이토록 가혹할까?
나에게 묻고싶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걸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일까?
이런 질문들을 해도, 아직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