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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은 Nov 09. 2020

한참을 앞서가던 두 명의 K에게

나의 사랑 나의 친구#2

<나의 사랑 나의 친구 >

#한참을 앞서가던 두 명의 K에게



나에게 애정이란 늘 결핍되어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프롤로그에서도 말했다시피 애정을 주는 이가 없었다기 보다는 스스로 그 애정을 받아먹고 잘 소화해내는 법을 몰랐던 것이다. 물론 이렇게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인정하는 것도 이제와서의 일이며 어린 시절엔 그게 잘못인지 알지 못했다.


두 명의 K는 그런 나에게 소속감이라는 걸 알려줬다. 건강하고 밝은 관계를 만들어줬다. 매일 함께 등하교를 하고 당연스럽게 같이 급식을 먹고, 사소한 고민들을 나누는. 다툴 일도 없고 눈물 흘릴만 한 일도 없는.


그들과 넓은 집 거실에서 <가십걸>을 볼 때는 나도 학교의 페이머스 걸이 되었다고 느꼈고, 그들과 그때 막 유행하기 시작한 아이돌 노래를 들을 때면 어쩐지 우리가 아주 사랑스러운 청춘 영화를 찍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들과 함께일 때면 나는 꼭 주인공인 것처럼 느껴졌다는 말이다. 그렇게 2년을 평온하게, 마치 아무 상처도 걱정도 없는 사람처럼 지냈다.


그게 참 별 게 아니어도 그때의 나에게는 아주 낯선 것이었다. (고작 중학생이면서) 초등학생 때의 관계들을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아주 정글이 따로 없었다. 어린 아이들은 순수한 만큼 모질고 잔인하기도 하다. 성숙하지 못해 타인을 헤아리지 못했다. 서로 상처주는 일이 어린나이에는 너무 잦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도 그 안에서 무고했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꼭 무슨 짓을 한 것은 아니어도 관계에 대한 도덕적인 기준이 미비한 곳이 바로 교실이었다. 


중학교에 와서 두 명의 K를 만났는데 관계에 대한 불신만 가득했던 나와는 달리 둘은 또래에 비해 성숙한 아이들이었다. 관계에서 상처를 주거나 받지 않는 방법들을 꽤나 잘 알았다. 영리했다. 교실 안에서의 관계들이 절대적이지 않고, 세상은 학교보다 넓다는 걸 잘 알았다. 그들이 아는 것을 나에게도 가르쳐주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의 부족함을 직접 마주봤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말을 밉게 하는 것, 자기주장이 강한 것, 방어기재라는 핑계로 때때로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는 것도. 그래서 누군가가 주는 애정이 나에게 가까이 닿지 못했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따끔한 진실들이 그때의 나에게는 참 불편했다. 한창 미래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는 시기였기도 했고, 내 인생에 아주 커다란 불행이 막 닥쳤을 즈음이었다. 나는 복잡한 생각을 하기보다 떼를 쓰는 쪽을 택했다. 내가 이렇게 힘드니 우쭈쭈해달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바보 같지만. 결국 나는 나의 단점을 들추어 더 나은 길을 제시하는 둘을 떠나 나는 다른 친구를 찾았다. 


시간이 한참 지나 벌써 그 일들도 10년이 넘었다. 기억은 참 쉽게 미화되서 그때의 일들이 나에게는 예쁜 사진처럼 남아있다. 하지만 명백한 사실은 내가 그들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참 애처럼 굴었다.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으면서 이해와 위로를 바랐다. 둘이 너무 성숙했기에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둘은 오래오래 좋은 친구로 지냈다.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 슬퍼지기도 했지만, 그 사이에 한 때 내가 있었음이 그들에게 너무 큰 상처가 되지 않기만을 바란다. 그냥 어리석고 못난 애 하나가 굴러들어온 복을 걷어찬 거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그때는 왜 나를 이해하지 못하냐며 책임을 그들에게 돌렸지만, 사실 모든 건 내 잘못이고 내가 끝까지 나빴다고 기억해준다면 좋을 것 같다.


끝으로 그때 나에게 닥쳤던 그 힘들었던 일들이 이제는 나에게도 다 지난 일이 되어 기억조차 없는 것처럼 아주 잘 살고 있어. 그러니 혹여나 그때 나를 위로해주지 못했던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마음 아파하지 않기를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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