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해서 직접 쓰는 ADHD 뇌 과학

답답해서 공부한 ADHD의 뇌과학 #프롤로그

by 책판다

지금까지 연재하던 ADHD 지각생의 브레인 튜닝 로그를 읽어주신 여러분께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글에 대한 방향을 논의하고 고민한 결과, 에세이와 뇌 과학을 함께 풀어내는 데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 들어 기존 브런치북을 다소 급하게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답답해서 공부한 ADHD의 뇌 과학 이란 새 시리즈로 매주 일요일에 다시 뵙겠습니다. 다시 한번 글을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생은 망한 것 같아.”

20~30대 사이에서 이런 자조가 번진 시절이 있었다. 취업은 어렵고 취업을 해도 어려운 젊은이들은 농담과 한탄 섞인 자조와 함께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ADHD인들은 이 이야기를 쉽사리 넘길 수 없었을 것이다. ADHD인 내 경우엔 이 생각이 떠오른 횟수를 손가락을 평생 접었다 펴더라도 다 셀 수 없을 지경인데, 다른 ADHD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다. ADHD인들은 대개 실수가 잦고, 업무 효율이 매우 낮으며, 늘 부정적인 피드백에 시달려왔기 때문이다(물론 세상 일이 그렇듯 예외도 많다). ADHD 진단을 받기 전에는 ‘능력이 없어서’, ‘노력이 부족해서’ 외에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었으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항상 ‘뭔가 잘못한 것 같은’ 느낌에 시달리는데, 스스로에 대한 긍정 감정이 형성될 리가 있을까?



진단과 함께 찾아온 반전

이야기가 방향이 달라진 것은 약 2년 전 ADHD 진단 이후부터였다. 나의 비효율이 내 능력이나 노력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때까지 ADHD를 ‘학습이 더디고 실수가 많은 질환’ 정도로 알고 있었던 나는, 이 친구가 대체 뭐하는 녀석인지 알아보고 싶어졌다. 40년 넘게 나를 괴롭혀 온 이 망할 녀석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마침 나는 책에 대한 열정만큼은 넘쳐 흘렀고, 그중에서도 요즘 심리학과 뇌 과학에 푹 빠져 살던 중이었다. 그리고 통념과 다르게 사람은 스스로 생각한 대로 행동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깨달은 차였다. ADHD 진단 이후 성인 ADHD 서적과 (읽을 일 없을 줄 알았던) 영문 논문을 내려 받아 끙끙 읽으며 나는 ‘실행 기능’ ‘작업기억’ 같은 낯선 용어와 마주했고 그동안 나를 괴롭혀 왔던 학습 부진, 잦은 딴생각, 늘 어려웠던 정리 정돈과 시간 관리, 충동성 같은 문제들이 뇌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읽고 쓰며 뇌 과학 속으로!

기존에 출간된 성인 ADHD 책들이 ADHD인들의 특성과 개선에 초점을 맞춰왔다면, 나는 긴 글을 통해 ADHD인들의 두뇌가 어떻게 ‘다른지’ 특성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굳이 이런 어려운 일을 하기로 마음 먹은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 우리의 뇌 역시 ‘다양한’ 것들 중 하나이며, 그 다양성 속에 ‘장점’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장점이 될만한 특성이 무엇이며, 또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지 이곳저곳을 뜯어보고 싶었다. 내가 읽어본 많은 성인 ADHD 관련 서적들은 매우 훌륭했지만, 극복 방안들이 대체로 정형화되어 있다는 게 다소 아쉬웠다. 나는 내가 공부한 뇌의 특성을 기반으로 나만의 고유한 솔루션을 찾고, 또 실행하는 방법을 기록한다면, 이 기록을 힌트 삼아 ADHD인들이 자기 뇌의 특성을 이해하고 자기만의 극복 방법을 찾아간다면,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모두에게 작지 않은 성취일 것이다.

둘, 뇌의 다양성을 ADHD인이 아닌 독자에게도 알리고 싶었다.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책을 쓴 심리학자이자 정신의학과 의사인 리사 펠드먼 배럿은 사람의 뇌가 감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만든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두꺼운 책 내내 이 메시지를 반복한다. “다양성이 표준이다.” ADHD인이 아닌 독자들은 이 글을 읽을수록 그 점을 또렷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리즈를 다 읽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실패한 사람들이 아니다!’

셋,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이지만, 긴 글을 통해 ‘효능감’을 얻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글은 좀 쓰네’ 이야기를 들어왔던 나는, 이제는 그 칭찬을 결과물로 내어놓고 싶었다.

이 일을 해낼 수 있을지 프롤로그를 다 쓴 지금까지도 ‘반신’과 ‘반의’ 사이를 수백 번 오가느라 이제 뇌가 함께 빙글 도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도 기왕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과잉 행동을 꽁꽁 묶어 두었던 끈을 과감하게 풀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