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봄에 여름 오사카 여행을 계획했다. “이번 여름 휴가로 오사카에 10일 동안 가기로 했어~”라고 말하면, 다들 반응이 놀라우리만큼 똑같았다. “거기 여름에 많이 더운데!” 친구는 “엄청 싸우겠네!”라는 말을 모두에게 들었다고 한다. 아무튼 비행기 표는 구매해놓았고, 오사카에 도착했다. 예상만큼 덥지 않았지만, 서울만큼 더웠다. 더위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왜 갔는가? 오꼬노미야끼 때문이다. (참고로 본인은 여행에서 음식이 가장 중요하다. 여행을 끝내고 나면 남은 기억이 식당 풍경과 음식의 맛이 대부분이다. 지인의 증언에 따르면 아름다운 건축물이나 거리를 보는 표정은 담담한 데에 비해, 요리를 바라보는 표정은 사뭇 열정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오꼬노미야끼는 철판요리라는 것이다. 식당 내부에 들어가니 에어컨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지만, 철판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름의 일본 남부, 그것도 일본 남부의 철판 앞 열기는 대단했다. “이열~ 치열~”을 건주사로 친구와 맥주잔을 부딪히며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점원분이 스테인리스 재질의 국 그릇에 양배추와 새우, 베이컨을 담아오셨다. 철판 위에 새우와 베이컨을 아름답게 정렬하시고는 현란한 손놀림으로 양배추만 담긴 그릇을 휙휙휙휙 저으셨다. 숨어있던 계란 물이 양배추를 감쌌다. 그릇은 작고 양배추는 많아서 철판에 툭툭 흘렀다. 불쌍한 양배추들이 새까매지면 어쩌나 걱정하면서도, 그분의 손길이 너무나도 전문적이어서 멍하니 바라보게 되었다. 다 섞으셨는지 새우와 베이컨 위에 잘 섞인 양배추와 계란을 동그란 모양으로 얹으셨다. 그리고 떨어진 양배추들도 잘 챙겨서 동그란 모양 위에 뿌려주셨다.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익어가는 오꼬노미야끼를 바라보고 있는데, 곧 야끼소바가 철판 위에 놓였다. 세상에 가장 맛있게 달고 짠 면 요리가 있다면 바로 이 음식이 아닐까? 철판의 열이 꾸준히 면의 수분을 날려 꼬들꼬들하면서, 딱 알맞게 짭조름하고 달달한 간장이 면에 딱 붙어있었다. 간장계란밥에 들어가는 간장에 감칠맛이 추가되고 응축된 맛이랄까. 감탄하며 맛을 음미하다 야끼소바 리필을 위해 고개를 들었더니 철판이 나의 최애 일본 음식을 태우고 있었다. 이젠 속도전이다. 남은 야끼소바를 접시 위로 구출하고 후루룩 먹어주었다. 살짝 타서 눌러붙으니 고소함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오꼬노미야끼! 양배추가 양배추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양배추와 다른 재료들이 만나 전혀 새로운 음식이 되었다. 타꼬야끼의 풍성한 확장판 같았다. 마요네즈의 부드러움과 자극적이지 않은 간장 양념, 그리고 향긋한 향을 더해주는 파래 가루가 잘 어울렸다. 그리고 철판 위에서 철판용 뒤지개로 척척 잘라먹으니 재미까지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야끼소바에 별 5개를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일본에 온 최종 목표를 이루고 편안하게 여행을 즐기다가, 친구의 목표 역시 이루어야 했기 때문에 함께 지하에 있는 한 식당으로 향했다. 친구가 여행 내내 노래를 부르던 음식의 이름은 ‘로바타야끼’다. 이름도 낯선 ‘로바타야끼’는 일본의 전통적인 방식의 구이 요리라고 한다. 설명만 들어서는 알 수가 없었는데, 들어가보니 친구의 설명이 이해가 되었다. 식당 내부에는 반원 두 개가 보였다. 반원의 중심에는 요리사님이 계시고, 요리사님 주변에는 재료들이, 반원 바깥쪽에는 바 형태로 동그랗게 테이블이 이어져 있었다. 요리사님이 쉬지 않고 재료를 뒤집으며 화로 위에 온갖 재료를 얹어 익힌다. 베이컨 토마토말이부터 연어, 오니기리에 이르기까지 온 재료가 화로 위에서 노릇노릇한 모습으로 재탄생한다. 꼭 처음 주문할 때 1인당 3가지 메뉴씩은 시키기를 바란다. 화로 열기가 약한 편이고, 재료도 천천히 길게 굽는 편이라 ‘빨리빨리’가 익숙한 본인은 조급한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른 손님들에게 완성 작품을 전달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기다리는 시간이 심심하지는 않았다. 요리사님이 음식을 전달하는 모습을 어떤 사람들은 동영상으로 담아갈 정도로 신기했는데, 화덕피자 꺼낼 듯한 거대한 주걱 위에 음식이 담긴 접시를 올리고, 거대한 주걱을 길게 뻗어 손님에게 전달했다. 재료 너머 멀리에 손님들이 앉아있다보니 이런 주걱이 필요했나보다. 드디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그중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베이컨 양배추말이이다. 베이컨으로 양배추를 동그랗게 감싼 모양인 꼬치이다. 생양배추처럼 아삭하지 않고, 약한 불로 구워서 양배추 찜처럼 흐물거리지 않으며, 씹으면 양배추의 단 물이 아주 적당한 식감과 함께 입안으로 흘러들어온다. 겉에 있는 베이컨이 양배추 특유의 비린 맛을 잡아준다. 양배추를 좋아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양배추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도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음식이다. 그리고 가장 신기했던 음식은 오니기리 구이이다. 한국에서는 밥을 얇게 펴서 아예 누룽지를 만든다면, 일본에서는 삼각김밥 모양인 오니기리를 그대로 불 위에 얹어 노릇노릇 구웠다. 노릇하게 구웠을 때 맛볼 수 있는 특유의 고소함과 겉면의 바삭함, 그리고 밥의 부드러움이 섞여 겉바속촉을 잘 이뤄낸 삼각김밥이었다. ‘이런 음식은 한국에서도 꽤 인기가 있을 것 같은데, 식당을 내야 하나?’라는 심심한 생각을 하며 먹었다. 서양식 식당에 가면 식전 메뉴로 나오는 아란치니와 비슷한 느낌인데 더 담백하다. 편의점에 가면 삼각김밥 종류가 정말 많은데, 그 옆에 구운 삼각밥 코너가 생겨도 좋겠다. 기름에 튀기면 뭐든 맛있다는데, 기름에 구운 것이라고 뭐가 다르겠는가. 한국에서도 다양한 구운 음식을 먹어봤는데, 일본의 구운 음식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달고 짠 맛을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구워 먹어본 적이 있나 싶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만큼 접근성이 뛰어난 곳인데, 아직 다양한 음식을 충분히 접하지 못한 듯해 아쉬운 마음이다. 찾아보니 한국에도 로바타야끼 식당이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 돈까스, 스시 빼고는 일식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찾아볼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한국에도 도전 의식을 일으킬만한 일식당이 있는지 찾아보아야겠다.